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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6. 2021

플라멩코와 스페인 광장

- 세비야, 스페인



  푸짐한 호텔 조식을 먹은 후에 세비야행 버스를 탔는데, 길이 뻥뻥 뚫려서 30분 만에 도착했다. 내일 리스본으로 갈 버스표를 예약하고, 먼저 플라멩코 극장의 위치를 확인해 두려고 다리를 건너 그곳으로 갔다. 

  극장은 쇼핑상가 건물 안에 있었다. 그 건물 안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시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싱싱하고 값싼 과일과 채소들로 넘쳐났고 각종 육류와 음식들도 팔고 있었다. 씻을 곳만 있다면 저 싱싱한 과일들을 양껏 사서 먹고 싶었다.


  극장은 정말 작았다. 무대도 저기서 어떻게 춤을 출수는 있을까 싶을 만큼 작았다. 친구가 말했던 동굴 플라멩코를 봤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4배나 비싼 데다 공연시간이 저녁이어서, 나 혼자라면 모를까 재스민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었다.    

 

  처음에는 기타를 든 남자가 그 작은 무대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러더니 중년을 넘긴 검은 머리의 여자가 등장했다. 저 나이 든 여자가 전통적인 플라멩코를 추는 것인가 했더니 역시 의자를 놓고 앉는 것이다. 그녀는 손뼉과 발바닥을 치면서 기타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예상했던 신나는 곡이 아니라, 애끊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의 슬픈 노래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플라멩코에는 세 가지 음조가 있다고 한다. 가장 심오하고 비장한 형태는 죽음과 종교, 번뇌 등과 관련이 있고, 중간 조는 이보다 밝은데 동양적 색조가 가미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가장 경쾌한 플라멩코는 사랑의 감정이나 즐거움, 목가적인 것 등을 소재로 다룬다고 한다. 


  이 공연을 보던 당시에는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몰랐던 터라 조금 의외였다. 내가 아는 플라멩코는 세 번째의 경쾌한 춤곡뿐이었던 것이다.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는 길지 않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퍽 근사했다. 저렇게 수염이 어울리는 남자는 처음 본 것 같다. 기타 연주를 하는 그의 팔과 손의 움직임이 마치 춤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1차 공연이 끝나자 드디어 댄서가 나왔다. 그녀는 젊고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했다. 초록색 드레스에 꽃무늬 바탕의 주홍색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예쁜 것 같기도 한데 입술이 너무 얇은 데다 그 모양이 특이해서 조금 무서운 상이었다. 나중에 재스민은 그 댄서의 얼굴이 사람 잡게 생겼더라고 했다. 


  좁은 극장과 무대를 꽉 채우는 그녀의 춤과 가끔씩 질러대는 추임새, 그리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두드려대는 소리가 그 작은 극장을 터뜨릴 것 같았다. 교대로 이어지는 노래와 기타 연주만 들을 때는 조금 졸리기도 했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린 좀 멍했다. 


   우린 스페인 광장까지 걸어갔다. 재스민이 어제 가봤는데 근처에 앉거나 누워서 쉬기에 좋은 공원도 있어서, 오후를 그곳에서 그냥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스페인 광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연못도 아주 예뻤다. 기다란 개울처럼 물길을 낸 연못 위로는 오리들이 떠다니고, 몇몇 사람들이 작은 보트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 





  우린 모처럼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거기서 재스민이 찍어준 내 사진들은 근래 찍은 것들 중 가장 멋진 것들이었다. 광장 옆으로 난 공원 벤치에 앉아서 오래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공원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었고 나는 재스민에게 틴토 베라노를 한 잔 사주었다. 

  내일 재스민은 마드리드로 돌아가고 난 리스본으로, 각자의 길을 떠난다. 리스본과 포르투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는 것이 내 일정이다. 



세 도시를 함께한 재스민


  마드리드에서 만나 함께 미술관도 가고 저녁도 먹자는 기약을 하고 우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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