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엄의 집

- 캐나다, 톰슨

by Annie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해 톰슨 행 비행기를 탔다. 더불어 내 무릎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톰슨 공항은 정말 작았다. 물론 비행기도 깜짝 놀랄 만큼 작았고 덜컹대는 소음도 심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바깥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캐나다와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산이나 나무들이 더 크다는 것밖에, 그냥 우리나라 시골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미리엄이 살게 될 마을도 아름다운 전원 마을을 상상했던 내겐, 너무 초라했고 건물들도 볼품이 없었다.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진짜 시골도 아닌 것이, 뭔가 도시라 할 수도 없어서 어정쩡했다. 아파트인지 3,4층 정도 되는 똑같은 건물들이 볼품없이 흩어져 있었는데, 나는 미리엄이 살 곳은 그중 하나가 아니길 바랬다.


그러나 바람은 여지없이 빗나가 택시기사는 우리를 그 볼품없이 초라한 건물 앞에 내려놓았다. 미리엄이 이 아파트에서, 이 마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속상했다. 더불어 내가 기대했던 캐나다의 예쁜 전원 풍경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허름하고 볼품없는 건물 외부에 비해, 내부는 그런대로 탄탄하고 나쁘지 않았다. 반 지하여서 위로 너른 잔디밭의 푸르름이 다 보여 좋았고, 탄탄한 거실 바닥 마루며 널찍한 부엌도 나름 괜찮았다.


짐을 부려놓고 미리엄은 바로 학교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녀는 내게 함께 가자고 했고,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 따라나섰다. 학교의 겉모습은 기다란 컨테이너 박스 같아 보였지만, 내부는 꽤 넓고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처음 사무실 같은 데를 빼꼼히 들여다보니, 한 여직원이 우리를 보고 응대한다. 그녀가 누군가를 불러서 미리엄이 왔다고 하니까,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한 젊은 남자가 나와 인사했다.


사무실은 비좁고 사무용 책상 두 개와 의자 몇 개가 놓여있고, 벽면을 빙 둘러서 서류며 가족사진을 포함한 개인적인 스냅사진들이 정신없이 붙어 있었다. 그는 미리엄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보여주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온 김에, 한 시간 정도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미리엄은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한국에서 함께 온 친구라며 나를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젊은 남자가 교장이었고, 그 정신없는 사무실이 교장실이었다. 문화충격이었다.


학생들은 수업 과목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녔다. 교장이 안내한 교실로 들어가니 한 선생님이 있었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앉았다.

교실은 교사의 책상과 의자, 학습 자료들이 있는 공간이 절반쯤 되고, 학생들이 둘러앉는 곳이 절반 좀 못되게 분할되어 있었다.


교실에 있던 선생님이 미리엄에게 무언가 한참 설명을 하더니, 미리엄에게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며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미리엄은 불어로 인사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도록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불어로 진행이 되었다. 이 학교는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불어 집중교육 학교(French Immersion School)였다.


학생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미리엄을 바라봤고, 처음에는 좀 쭈뼛거리더니 이내 손을 번쩍 들면서 서로 자기 얘기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게 맞다. 수업이란 항상 이렇게 학생들이 무언가를 생각해서 말하고, 어떤 과제를 함께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교사 혼자서 강의하고, 학생들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저마다 복도에 있는 책상, 또는 도서실 책상 위에다 도시락을 펼쳐 놓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 도우미인지 교사인지 모를 두 여자가 학생들의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기도 하고, 뭔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여긴 교사와 학교 청소직원, 행정실 직원을 구분할 수가 없다. 그들 모두 섞여서 함께 일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장이 커다란 절단기를 들고, 잠겨서 열리지 않는 사물함의 열쇠들을 끊고 다녔다.


두 시간 정도 학교에 머물렀을까, 드디어 미리엄을 이 학교에 소개한 미셸린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여장부 같았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나와 미리엄을 열심히 소개했다. 그녀는 두 시간 후쯤 학교가 끝나면, 그때 다시 만나서 미리엄이 필요한 가구며 물품들을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미리엄과 나는 미셸린이 가르쳐준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썩 훌륭한 식당은 아니었지만 손님들도 많았고,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가 아니어서 15%에 달하는 팁을 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음식뿐 아니라 모든 것의 가격표에 세금을 추가해야 하고, 모든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팁을 주어야 해서 대체로 비싸다. 팁 포함 각각 15,000원 정도의 식사를 했지만, 맛은 제 값을 하지 못했다.


미셸린이 와서 함께 가구점에 갔다. 미리엄과 미셸린이 꼼꼼하게 가구를 돌아보는 동안, 난 지루한 데다 졸음이 쏟아져서 정신이 없었다. 한국 출발 후 거의 이틀을 뜬 눈으로 보내다시피 했고, 위니펙의 호텔에서도 잠을 거의 못 잤다.

그저 어디고 쓰러져서 자고 싶었다. 가구점 두 군데를 거쳐 침대, 소파, 식탁, 이불 등을 주문했고, 이것들은 오늘이 금요일이니 내가 탐슨을 떠나기 전 날인 월요일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럼 그때까지 우린 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자야 하나?


식료품점에 들러 간단히 먹을 것을 좀 사고, 저녁을 먹으러 미셸린이 자주 가는 중국 식당에 갔다. 양이 너무 많아서 우린 절반 정도밖에 못 먹었고 남은 음식은 싸왔다. 미셸린이 6만 원 상당의 음식 값을 지불했다. 그녀는 우리를 집에 내려주고, 가서 당장 필요한 이불이며 물품들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미리엄은 1인용 에어 메트를 샀고, 미셸린이 1인용 에어메트를 하나 더 가져왔다. 미셸린은 대걸레와 통, 얇은 이불과 담요, 커튼, 그릇, 도마, 심지어 행주까지 자기 집 살림을 거의 들어오다시피 했다.


간혹 사람을 도울 때면 미적대고 주춤거리곤 하는 나는 이런 미셸린을 보면서 놀라웠다. 이것은 단순히 친구를 돕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가족을 책임지는 수준이었다. 우린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었고, 방법을 배운 나는 미리엄과 나머지 하나에도 바람을 넣었다.

미리엄은 큰소리로 노래하듯이 숫자를 헤아렸고, 우린 춤을 추듯이 발로 펌핑을 했다. 그것이 단순하고 힘든 노동을 재미있고 덜 힘들게 하는 요령이기도 했다.


미리엄이 코를 심하게 골아서 우리는 서로 다른 방에 에어매트를 하나씩 깔고 잤다. 오늘은 내가 침실에서, 미리엄은 거실에서.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자고 싶어서 염치 불고하고 미리엄이 제안한 대로 침실을 차지했다. 그러나 미리엄의 코 고는 소리는 방벽과 관계없이 들려왔고 위층에서 들리는 소음들도 가세해서, 숙면을 취할 수는 없었다.


아침에 깨어 거실로 나가보니 미리엄의 에어매트 위에 친구랑 미스티도 함께 누워 자고 있다. 가까이서 본 미리엄은 말간 얼굴로 아기처럼 곤히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서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아침에 미셸린이 데리러 와서 우린 또 어느 대형 마트로 향했다. 그곳에서 난 만 원 정도 하는 어린이용 회색 집업 점퍼를 하나 샀다. 안에 따뜻한 융이 덧대져 있고 크기도 적당해서 잘 입을 것 같았다.



냥이들.JPG 잠에서 깬 친구와 미스티



그리고는 또 다른 마트에 갔는데 그곳은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과일과 야채, 빵과 코타즈 치즈, 호두와 말린 살구, 바닐라 스트로베리 파이 등을 샀고, 어쩌다 보니 7만 원 상당의 계산서가 나와서 내가 사겠다고 했다.

그다음엔 주류 판매점으로 갔다. 캐나다의 마트에서는 알코올을 팔지 않는다. 맥주든 와인이든 알코올은 모두 주류 판매점에서만 판다. 우린 거기서 와인 한 병을 샀고 저녁에 미셸린을 초대해서 함께 마시기로 했다. 다음엔 철물 마트로 가서 미리엄의 소소한 가정용품들을 샀고, 난 캐나다에서 사용할 100 볼트 어댑터와 휴대폰 충전기를 샀다.


두 번째 날엔 내가 거실에서 잤다. 미셸린이 커튼과 커튼봉을 가져와 설치해 주었다. 뭐든지 한 번 해 보이고 나더러 해보라고 하는데 나는 매번 실패한다. 어떻게 미셸린은 이런 것도 잘하지?

정우에게 사진을 보내고 미셸린의 도움, 미리엄과 함께 하는 좋은 시간에 대해 말했더니, 내가 너무 예쁘다고, 내가 예쁜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했다.

나를 웃게 만드는 그의 말,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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