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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Dec 29. 2021

우리의 Present

소소한 백수 이야기

나와 백군은 둘 다 디자이너다. 백군은 '성실하지 않은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확고한 기준을 적용하던 인물이라 아무리 회사를 그만두고 놀자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반면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라는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라 10여 년 전부터 디자인 회사를 차려 맘 내키는 대로 일을 해왔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굶어 죽지 않길래 일이 없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나의 회사는 돈 되는 건 다 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재밌는 건 다 하는 회사라, 사진, 광고, 편집, BI, 전시, 일러스트, 인테리어, 공예까지 안 하는 걸 찾기가 더 어려운 회사다. 나는 도전하는걸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 잘 저지르고, 도전하는 것만 좋아해서 잘 수습하진 못한다. 


이렇게 다른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하면서 나름 빡쎄게 지내고 있었다. 4월 어느 날 새로운 디자인을 뽑아야 하는데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2년째 계속해서 작업을 해주고 있던 클라이언트였기에 더 이상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잘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많이 작용했던 듯했다.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어떻게든 해내야 했고, 짜내듯이 작업하면서 공황장애가 왔다. 그런 건 처음 경험해봤다. '이렇게 죽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디자인을 끝으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다른 디자인 관련 일들도 모두 정리했다. 

나는 늘 '을'이면서도 '갑'처럼 일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아쉬울 게 없어서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경제력을 합치면서, 성실한 백군한테 미안해서 더 이상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졌다. 조금 하기 싫어도 돈을 벌 수 있으니까 했고, 많이 하기 싫어도 돈을 많이 벌면 좋아해 주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려 했다. 나답지 않게 애를 쓴 것이 결국 탈이 났던 모양이다.


두 달 동안 혼자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옆에서 내내 고생하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백군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평화로움과 행복함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더 맘 편하게 놀고 싶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라고 끊임없이 백군을 설득했고, 나의 끈질긴 설득과 남편 회사 대표의 협공으로 백군은 결국 사표를 냈다. 그렇게 우리는 둘 다 백수가 되었고, 절대로 돈 벌지 말고 1년을 버텨보자고 약속했다. 이것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1년의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백군이 회사를 그만둔 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물론 돈을 버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렇다고 돈을 아예 못 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친구가 이사를 해서 방충망을 새로 해야 하고, 페인트칠과 조명 달기, 인필붙이기 등이 필요하다고 하면 놀고 있던 우리는 기꺼이 도와주러 출동한다. 백군은 전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일과 3D 디자인에 능하다. 나도 회사에서 인테리어일을 꽤 했었기 때문에 저 정도 일은 놀이에 가까웠다. 근질근질하던 참에 며칠 재밌게 일하면서 밥도 얻어먹고, 커피도 얻어먹고, 나중엔 너무 미안하다며 일당도 주어서 용돈벌이도 했다. 이런 식으로 집을 크게는 두 번, 자잘하겐 서너 번 고쳤다. 이 외에도 이런 식의 일들은 꽤 많이 이어졌다.


양손 가득 먹을 것과 와인을 사들고 온 오늘의 손님

오늘의 일은 우리 앞집에 살았던 레나타와 폴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레나타는 샹송 가수고 폴은 피아니스트로 둘은 부부다. 우리가 이사온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앞마당에서 콩국수를 먹고 있던 레나타에게 인사를 했다가 같이 콩국수를 먹게 되었고, 우리를 위한 갑작스러운 레나타의 공연을 보게 되었고, 그 후로도 많은 작당들을 함께하게 되었다. 폴은 나에게 한국어를 배웠고, 나는 폴에게 영어를 배웠다. 

크리스마스날 갑자기 레나타에게 전화가 왔다. 폴이 2집 앨범을 내는데 앨범 재킷에 쓸 사진이 필요하다고, 타이틀이 One look인데 흘리듯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흘리듯 찍은 사진이라는 말에 갑자기 내 생각이 났는데 내 사진 중에 그런 느낌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찾아보겠다고 말하고 하루 종일 4 테라 분량의 사진을 뒤져 몇 장을 보내주었다. 둘은 그중에 사진 한 장을 골랐고,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폴한테 메시지가 왔다. 음반사에서 디자인을 해서 보내줬는데 자기가 보기엔 아쉽다. 내가 가편집한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드는데 디자인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고민도 없이 "sure"라고 답장했고, 둘은 곧 먹을 것을 바리바리 사들고 집으로 왔다. 


오래간만에 앨범 재킷 작업 중


점심을 먹고 5시가 될 때까지 우리는 같이 작업했고, 결과물에 만족했다. 그리고는 적어도 마음은 표현해야 한다며 굳이 돈을 보내주었다. 사실 좋은 음악을 하는 폴 앨범에 내 사진이 쓰인다는 것도 즐거웠고, 작업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기뻤다. 애초에 돈을 받을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부담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요즘의 일은 늘 이런식이었다. 마치 생각지도 못한 용돈을 받아 드는 기분이었다. 

나의 인건비를 시간에 대입해 계산해야 할 때는 나의 시간이 모두 돈으로만 환산되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의 시간이 즐거운 경험과 새로운 도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되고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기는 용돈들 만으로도 통장에 돈을 크게 줄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7개월을 살아보니 이게 단지 운이 좋거나, 능력이 좋아서 벌어진 일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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