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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Jan 31. 2022

볼 수 있어도, 못 보던 것들

백군의 감나무

백군이 좋아하는 감이 있다. 늦은 가을에 시댁 쪽에서 얻어오는 대봉감인데 나뭇가지채로 책상에 두었다가 물렁해지면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 6개를 얻어오면 나는 1개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전부 백군이 먹는다. 나도 감을 좋아하지만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먹는 게으름 탓에 한 개 정도밖에 못 얻어먹는다.


구례에 가면 우리도 마당에 감나무를 심자고 노래를 부르던 백군이 그 바람을 실행에 옮겼다. 마지막 먹은 대봉감의 씨를 추출해, 휴지를 축축하게 적시고 그 안에 씨앗 4개를 숨긴 후 지퍼팩에 넣어 어두운 서랍 속에 한참을 두었다.

나는 완전히 잊고 있을 즈음 감 씨앗이 조금 벌어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긴가민가 할 정도로 씨앗 끝이 벌어져 있었다.

이제 심어야 한다며, 어디서 얻어 온 플라스틱 통에 구멍을 뚫고, 흙을 담고, 감을 심었다.

또 나는 한참 잊고 있는데 씨가 흙 위로 올라왔다고, 신기하다며 하루에 열두 번 정도를 들여다봤다. 내가 보기엔 그저 물을 세게 틀어서 흙이 씻겨나간 것처럼 보였는데, 뿌리가 나와서 씨가 올라온 거라며 알은척을 했다.

그래도 그 상태로 너무 오래 있으니 자기도 의심스러웠는지 흙을 살살 파보곤, 이 보라고 뿌리가 나오지 않았냐며 눈앞에 들이밀었다. 어 그러네! 하고 잠깐 동조했을 뿐, 그때까지도 감씨가 감나무가 될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그저 40이 넘은 나이에 감씨에 열정을 부리고 있는 백군이 조금 귀여워 보였다.


며칠 후 정말 감의 뿌리인지 줄기인지가 가느다란 몸으로 큰 대가리를 들어 올리느라 애쓰고 있었다. '이거 정말 무겁겠는데' 하며 나도 감나무에 자꾸 눈이 갔다. 그리곤 감 화분을 햇빛이 가장 많이 드는 창가 자리로 옮겨주었다. 키가 커가는 감나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던 어느 날, 백군이 신기한 것을 알아냈다며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그거 알아? 감나무가 햇빛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엥?"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다 그러고 있었는데?"

"그래? 그래서 아침에 반대쪽으로 돌려줘야 돼."

"그것도 지금까지 내가 하던 일이야."


백군은 조금 김이 빠진 얼굴이 되었지만, 여전히 상기된 채로 자신이 알아낸 과학적 사실을 확인했다.

/

글을  쓰고 나니 글쓰는동안 듣지 못했던 참새 종알대는 소리가 들린다.

매일 햇빛 쪽으로 돌려준 덕분에 꼿꼿하게 자라는 감나무들. 한개는 아직 흙 위에서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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