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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Sep 20. 2022

단호박만 맘껏 살 수 있어도 행복

거실 가득  가을

 하늘이 바다색을 해서 사람들은 제각기 맘이  고무줄을 탄다고 말한다.


 치과에  가서 치료받느라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고 오후엔 숲 속 활력소에 놀러 갔다. 사는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놀이를 하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  내려오는데 저쪽에  분홍색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낮동안 집살림에 손을 놓은 터라 캐리어를 가지고 시장에 갔다. 추석 땐 걷기조차 어렵던 인파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초저녁인데도 상점들이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산책 겸 나온 거니까 하고 시장 끝까지 가서 돌아오면서 맘에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샀다. 처음엔 세탁세제만 사려고 나간 건데 어느새 수북하게 사고 말았다. 고춧잎 한 봉지를 샀고, 그리고 단호박을 다섯 개나 샀다.

가져올 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한 광주리는 샀을 것 같다. 그나마 캐리어가 어느 정도 장보는 내 마음을 제어하는데 도움을 준 셈이다.


 여름 끝과 초가을 사이에 하는 행사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묵직하고 잘생긴 단호박 사모으기다. 적어도 두세 차례 사다가 광주리에 가득해지면  그때  그 일을 멈춘다.  나의 가을은 단호박을 사모으면서 다홍으로 물든다. 풍성해진다는 의미다.



아침햇살과 단호박



 거실 한켠에 두면 시골 광에 쌓아두던 가을걷이의  느낌이 들고, 양배추 채 썬 샐러드에 버터와 치즈를 잔뜩 넣고 끓인 단호박 수프를 먹으면 가을 아침이 따사롭다. 접시에 남은 것은 빵조각으로 훑어서 입안에 넣으면 그 풍미가 혀를 즐겁게 해주기도 하고 말이다.


 어제 장 볼 때 산 고춧잎도 간장, 맛술  이렇게만 넣고 밤새 두었다가 아침상에 참기름과 참깨를 얹었더니 그 안에 가을이 담뿍 든 맛이 들어있다.

추천 메뉴다. 단호박 얘기하다 딴 데로 잠깐 흐르긴 했지만, 빠뜨리지 않고 고춧잎장아찌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에 ~~~



하룻밤 지난 고춧잎장아찌



 예쁜 하늘과 들녘의 갖가지 꽃들도 볼거리지만, 단호박이 집안을 묵지근하게 지켜 주니까 한 해동안 별로 이룬 게  없는데도 가을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저 단호박 한광주리만 맘껏 살 수 있어도 그만하면 되었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주말엔 강낭콩 하고

밤을 넣고 호박죽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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