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와 빨간 열대어
미영이네는 강아지나 고양이나 물고기나 하는 것 중에 어느 하나도 키우지 않는다. 엄마도 아빠도 강아지는 씻기기 귀찮고 벼룩도 있고 배변 문제, 냄새 등등 이유가 여러 가지여서 키우지 않겠다고 강력 다짐을 한다. 고양이는 눈이 무서워서 그렇다고 하고, 물고기 같은 것은 그래 보겠다고 마음을 먹어 본 적도 없다.
가족의 모양새가 그런 가운데 미영이에게는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강원도에 놀러 갔다가 온 힘을 다해 잡아온 산천어 몇 마리가 있었다. 물론 그 애에게는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릇도 옹색하고 준비되지 않은 미영이의 집에서 산천어는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물이 흐릿한 상태로 더 이상 헤엄치지 않게 되었다.
그렇듯 동물을 키우는 일에 미영이네 가족은 실력이 모자란다. 실력이라기보다는 관심과 사랑의 부족이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미영이 엄마는 사주를 보는 한 친구를 만나 생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본인의 것과 남편의 태어난 시를 말하면서 사주풀이를 해 달라고 한다. 이러고 저러고는 다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남편에게 물이 부족하다면서 집안에 어항을 두거나 물에 관한 것을 비치해 두면 좋겠다고 하는 말만 뚜렷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귀가 얇기도 하고 거기다 실천파인 미영이 엄마는 남편에게 "당신은 물이 필요하다네요. 그러니 어항을 하나 사다 놓으면 어떨까요?" 하고 묻는다. 미영이 아빠는 " 어, 그래. 내가 그렇대? 그럼. 사와 봐." 그런다.
휴일에 미영이는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집에서 쉰다. 지난 달에는 미영이랑 아빠랑 엄마랑 동생이랑 어항을 사러 나갔다. 별반 지식도 없는데 어항도 사고 수초, 자갈, 물갈이하는 약, 산소 넣는 것, 물 거르는 채, 먹이, 물고기 쉬는 곳~~~ 살림살이가 그렇게 많은 줄은 정말 몰랐다. 어항에 물을 넣을 때는 수돗물을 받아서 24시간 이상 놔뒀다가 사용해야 하고, 물은 한꺼번에 다 갈면 위험하니 삼분의 일은 남겨 놓고 섞어야 하고, 지켜야할 규칙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미영이에게는 휴일만 되면 할 일이 생겼다. 엄마 아빠는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일 말고는 가끔 쳐다보는 것 밖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영이는 다르다. 여기저기서 물고기를 잘 키우는 법을 알아보고 주말이면 와서 물도 갈아주고 어항도 닦아주고 나름대로 분주하다. 심지어 어제는 엄마 말고 물고기가 궁금해서 집에 들렀다고 엄마한테 서운해 말라고 그런다.
더운 여름을 지내느라 몇 마리의 물고기는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 점이 마음 상하긴 하지만 미영이 집에 살고 있는 물고기는 구피와 빨간 열대어이다.
이번 주에는 어항이 두 개째 되었다. 왜였을까. 이유인즉슨 물고기가 새끼를 낳으려는지 바닥에서만 논다고 하면서 미영이는 엄마에게 "어항 하나 더 살까요." 그런다. 엄마는 속으로 살림만 늘리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 그래. 그러렴." 한다. ' 작은 어항 하나 더 샀겠지.' 했다. 그런데 이거야 원 집에 있는 어항보다 더 큰 것을 사와 버렸다. 미영 엄마는 속으로 생각한다.
다 커버린 아이가 아직 결혼도 전이고 몸과 마음에 사랑이 가득할 터 그것을 물고기의 집을 사고, 새끼를 낳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생산 욕구를 발산하는 것은 아닐까.
미영이 엄마도 젊어서는 화초를 키우고 새끼에 새끼를 치게 해서 베란다를 온통 꽃밭으로 채운 때가 있었다. 모름지기 그때의 미영 엄마에게도 끊임없는 생산 욕구가 있어서 그것이 그런 식으로 분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타령을 한다. 그러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는 새로이 태어나게 하고 싶은 저 깊은 곳의 무엇이 계속적으로 꿈틀거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기 위해 머리에 벼슬을 달고 예쁜 옷을 갖추고 멋진 몸매를 가꾸고 하면서 세상것들에게 구애를 하는 것 그것이 사랑 행위요, 궁극적으로는 그런 행위들이 생산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어떤 방법들 중의 하나이지는 않을까.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없다면, 그 가정은 늘 팍팍하고 삶 자체가 고행이기만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뭔가를 길러보고 키워도 보고 그러다 보면 나도 평온해지고 너도 그리고 세상이 덜 황량하겠다 싶은 마음이다. 그저 집안이 더럽혀지고 어쩌고 하면서 나만 세상의 독불장군이라는 불량한 생각은 태평양에나 내다 버렸으면 좋겠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자연의 일부분이었으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그야말로 제대로된 삶이려나.
어찌 보면, 물고기는 미영이네 가족에게 새로운 산소 공급원이요, 곧 태어날 구피의 새끼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짝 술렁임을 주고 있는 상태이다. 요즘 구피는 임신 중인 것 같아 격리 중이고, 미영이 아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물고기의 등장은 집안의 큰 뉴스거리이다. 지금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