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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un 09. 2017

믹서기 뚜껑

내게도 할 일이



 오랜만에 튼실한 완숙 토마토를 만났다.  야영장에서 휴일을 보내고 와서 그런지 아침이 무겁다.

 잠결에 아침은 무얼 해 먹을지를 고민한다.  미역국을 데우고 어제 해 둔 밥에 간단히 먹을까,  아님 토마토로 아침 식사를  갈음할까,  뒤척이고  있는데 문득 석 달 전부터 눈에 띄지 않던 믹서기 뚜껑이 생각났다.  그동안 찾아볼 데는 다 찾아봤으니 이번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사이를 한 번 봐야겠다 하고 잠에서 깼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밤새도록 내렸는지 창밖은 촉촉하다.  베란다의 화초들에게 인사를 하고 넓은 냄비에 물을 받아 불에 올렸다.  토마토를  꺼내서 씻다가 물끄러미 보다 보니 쟁반을 세워두는 곳에 까만 무엇인가가 눈에 띈다.

그 애가  바로 3개월간 잠적했던  믹서기 뚜껑이었다.



 앗싸!!!



 요즘 친구네가 아주 큰 땅을  사서 기쁘다던데  그 만은 못해도  어찌나 반가운지 이거야  원.



 뽀글뽀글 끓는 물에 소금을  좀 넣고  꼭지를 따내고 씻은 토마토를 데쳤다.  껍질이  말려들만했을 때 건져 내서 한소끔 식힌 다음  솔솔 벗겼다.   모처럼 짝 맞는 믹서기를 장착하고 6개의 토마토  중 2개만 먼저 휙 간다.   얼추 갈아지고 난 후 나머지도 다 보태서 한꺼번에  암팡지게 갈아 버렸다.


 그 옹골진  기분을  3개월 간 집 나갔던  믹서기 뚜껑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알기 어렵다.


 그간의 설움은 이렇다.

김치 담글 고추를 갈 때도 그랬고,

미숫가루를 우유와 탈 때도  그랬고,

키위를 갈 때도 뚜껑 대신 접시를 얹고 갈아야 했다.   접시를 얹고 갈자면 내용물이 이리저리 솟구치는 것도 그렇고, 거기다 접시의 달가닥거리는 소리는 내 마음을 가난하게 했다.   


' 아무래도 그게 어딘가에는 있겠지.  분리수거 때 찌그러진 냄비 뚜껑님을 따라갔나.  그것도 아니면 얘가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이야. '


 그러던 내게 오늘 아침엔 믹서기 뚜껑도 나타나고 비님도 오시어 뭔지 모르게 촉촉한 기분이 들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비록 작은 존재이고, 세상에  별반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때로는 믹서기 뚜껑처럼 꼭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고, 석 달 열흘 동안의 기다림의 대상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달달달거리는 접시 뚜껑보다는 제 뚜껑이 좋고 편하고 그런 것 말이다.


 하하!!


 나도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게  이 아침을 달달하게 한다.


 

반갑다 ᆞ

뚜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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