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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Dec 14. 2017

군자란

일찍 피었네

 집을 따뜻하게 하고 살다 보니 벌써 군자란이 소복이  피었다. 우리 집  살림 중에서 제일  화려한 축에 속한다.  다 겨울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그 애만  씩씩한  대공에 환한 주황빛으로 피어나서 무료한 겨울을 달래준다.


 남편은 그런다.  "일찍 피었네. 봄에 군자란이 필 쯤이면 아버지가 다녀 가셨는데....."



'그리움이겠지'


 아버님도 오시고 해서 하나 사다 놓았는데  아버님은 " 군자란이 참 이쁘다. " 하며 좋아하셨다.  마치 "너 참 예쁘다 " 하고 나를 칭찬해 주시는 것처럼 말이다.  


 기분 좋은 군자란은 그래서  점점 나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때로는 무심하게  어떤 때는  정성으로 돌보다 보니  봄이면  맑은 빛깔로 훅 피어나서 병원을 다니러 오신 아버님을 반갑게 맞곤 했다. 


 튼실한  군자란이 새끼가 쳐서  이웃집에도 나눠주고 그간에 이사도 한 번 했다.  화분이 두세 개로 늘었다. 씩씩하게 자라는 만큼 나의 집안 살림도 융성해졌다.   그 친구가 복을 부르는 것이었을까.


 그렇듯 아끼고 바라보고 사랑을 주어서인지 군자란은 잘도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다니시느라  이때쯤이면 오실 때가 되었을 텐데 하고 있을 때 아버님은 이번에는 우리 집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로 병원차를 타고 오셨다.  그러면서 몇 번씩이나 병원신세를 지시더니 조용히 우리곁을 떠나셨다.


 평소 따습기만 하던 분이 가시니까 애잔하기만 했다.   베란다의 화초들에게 물을 주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시댁 식구가 6남매니까 군자란을 여섯 포기로 나눠 심어서 하나씩 드려야겠다고.   그리움을 그런 식으로라도 남기고 싶어 각각을  잘 다듬어  여섯 개의  화분을 만들었다.   정성이  너무 과했나?  애석하게도  군자란은  하나씩 하나씩 시들어갔다.  결국에는  한 개의 화분만 남아 몇 년 만에 겨우 회생했다.  작년까지만도 부실하더니  올해는 건강하게 피어났다.   


 "오직 너만 바라봐줘야 하는 거니?"

 


 우리 집에는  군자란이   하나면  족한가 보다.   그동안 오지랖 넓게 잘 키우려다가 그만 역량 부족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군자란도 저를 아껴주시던 할아버지를 그리면서 시름시름했었을까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좀 엉뚱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전혀 아니라고 말하기엔 그 애들의 몇 년간의  행적을 보면 의심스러운 데가 없지 않다.


 오늘따라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그 애를 비추는데 곱고 예쁘기만 하다.

일찍 피었네



                      아버님은 잘 계신 거죠?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던

                           군자란 좀 보셔요.

                              참 예쁘게도

                                 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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