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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an 12. 2018

진로 변경

눈 내린 안면도 솔밭

 잘 익은 김장김치가 맛 날 때쯤이면 자칫 겨울이 길다 싶고 지루하다고 느낄 수가 있다. 그렇기도 해서 친구들과 콧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그중에는 직장에서 연차를 써야 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이 입원해 계신 집도 있고, 일주일이면 세 번씩이나 지방 출장을 가는 사람도 있어 뜻을 맞추기가 녹록지 않다. 그런데도 어쩌다 의기투합하여 평소 애용하던 여행사를 통해 겨울여행을 계획했다.


 추운 날 여행에 어울릴만한 곳으로 우리는 담양 죽녹원을 택했다. 겨울 대나무~~~ 눈이 소복한 키가 큰 대나무~~ 상상만 해도 겨울스럽지 않은가.


 새벽에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찾아 떠나면 겨울이 더 실감 날 것 같은 예감에 그날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모객이 되지 않아 갈 수 없다는 통보가 왔다. 다른 몇 곳 추천이 왔는데 친구들은 영하 10도~15도를 오가는 한파 속이라 그런지 한 두 명은 가자커니 다른 사람은 4월  따뜻한 봄날에나 가자고 하고  나머지는 춥고 어설프다 보니 조용하다. 연락 온 것을 여러 번 들여다보다가 궁여지책으로 "새조개 먹으러 가고 싶어요."라고 글을 올렸다. 한참 동안 소식이 없더니 이 사람 저 사람이 수락을 해서 출발을 하게 되었다.


 새벽바람은 매서웠다. 어제 빌려 챙겨둔 남편의 등산 내의를 입었더니 빈틈이 없어선지 놀랍게도 추운 줄은 몰랐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세상은 모두 까맣다. 겨울 새벽은 이런 모습이라니~~. 어리둥절 찾아가 버스에 올랐다. 나름 부지런을 피운다고 했는데 일행은 벌써 다 와 있었다.


 차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동트는 아침을 보기도 하고 졸기도 하다 보니 어느덧 충청도에 이르렀다. 눈발이 끝발인지 심심하게 날린다. 가이드의 말로는 어제는 눈이 펑펑 쏟아져 고객들이 강아지처럼 뛰고 난리였단다. 생각지도 않게 버스는 안면도 솔밭 산책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눈은 어릴 때 봤던 그 눈이었다. 집 앞 신우대 위에 턱턱 걸터앉아 있던 그 눈.  보기만 해도 좋아 죽겠는데 소나무 위에도 들풀 위에서 바닷가 백사장 위에도 온통 하얗게  퍼질러져 있잖은가. 멀리 바다에서 넘실대는 파도는 여기가 강원도인지 충청도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했다. 군데군데서 예쁜 표정. 재미난 몸짓을 보이며 사진을 찍는 얼굴들에는 그저 티끌 없는 동심이 있을 뿐이다.

 행복한 시간이었긴 했지만, 옥에 티는 있었다. 모처럼 집 밖을 나온 우리는 기대를 하고 새조개. 굴찜. 주꾸미 등등를 맛나게 먹고 싶어 예약을 했는데 폭설로 인해 모든 게  마비된 까닭인지 식당의 음식들은 신선도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이 우리를 실망시켰다. 먹거리  때문에 입이 댓 발 나온 우리는 그랬다. 외식의 즐거움은 맛있을 때는 그래서 좋고 그렇지 않을 때는 실컷 남의 탓을 하고 궁시렁거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그래도 먼 훗날 눈 덮인 안면도 솔밭길을 걸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푸대접받은 일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나마 식사 전에 금방 깐 굴이며 새조개 말린 것. 굴젓 등등  가족들 반찬거리를 포구에서 사둔 게 다행이었다. 그것이 든든해서인지 자연에서 흠뻑 들이마신 기운 때문인지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옥에 티만 빼면 겨울여행으로 이만한 게 없다 싶게 꽉 찬 하루였다.


 서울에 도착하니 네온사인이 대낮처럼 세상을 밝히고 있다.


 안면도에 그토록 소복하게 눈이 내렸다고 누구에게 말해본들 그 느낌이 바로 전달되기나 할까. 내 속에 숨은 어릴 때의 것들이 욕지기가 나게 슴슴 터져 나오게 하는 하얗게 덮인 안면도의 숨소리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나.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얻은 게 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닌 그 어떤 일 앞에서도 때 아닌 기쁨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

그저 앞으로만,

그저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만이 꼭 최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로변경을 앞둔 그 누군가에게는 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간혹 내가 전부가 아닐 수도,

나의 생각이 꼭 맞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수 있으니

가끔은 융통성을 발휘해 볼  필요도 있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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