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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민 Oct 23. 2022

다른 길을 걸을 때 가장 필요한 것

, 기준

0. 세상엔 돈이 많은 사람보다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나는 처음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다. 20살 때 대학에 처음 가서 했던 것도 나만의 아이템을 구상해서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디어를 아이템으로 그리고 아이템을 사업을 바꾸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책에서 하는 방법을 찾지 않고 직접 경험해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15명 규모의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을 배웠다. 6개월 정도 일하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울 게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하나의 구성원이 아니라 더 높은 사람의 관점에서 산업과 회사를 보는 방법을 알고 싶었고, 투자회사로 들어갔다.


 일이 손에 익을 때쯤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일하고 투자를 집행해 온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 기준을 알고 있으면 내가 직접 사업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힐 거라 믿었다. 그래서 회사의 모든 직원들과 학교의 모든 재무 교수님들(산업계의 관점과 학계의 관점을 비교해보고 싶었다)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들이 회사에 투자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계시는지.


 놀랍게도 회사에 있는 열 분 남짓한 심사역 분들과 열 분이 넘는 (열 세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들 중 그 누구도 성공할 회사를 보는 기준을 가지신 분은 없었다.


 그때, 명확한 기준만 가지고 있어도, 그 기준이 경험을 통해 세워진 확실한 것이라면 독보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만의 기준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1. 자신의 기준이 아닌 들어 본 말들을 조언하는 사람들


 코로나로 인해 계획보다 훨씬 일찍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했던 그리고 앞으로 할 그 어떤 실수보다도 큰 실수였다.


 이 년간 사업을 하면서 수십 명의 멘토를 만났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마다 꼭 멘토라는 사람들을 붙여줬다. 그 사람들에게 나의 사업에 대한 평가를 받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취지에서다. 처음엔 이런 활동들이 고마웠다. 사업에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의 사업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해준다는 것이 우리에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 사람들이 주는 조언들을 모두 반영해 바꾸고자 했다. 내가 가진 기준이 없었고, 들려주는 말들이 그럴듯하게 여겨져서 그대로 따라가고자 했다.

하지만 내 사업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멘토라는 사람들이 해주는 말들이 한없이 얕게 느껴졌다. 그 사람들이 조언이라고 해주는 내용들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고민했던 경우의 수 중 하나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때부터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나에게 멘토링을 해줄 자격이 있을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투자해주는 투자회사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멘토라고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전문적인 용어를 쓰면서 나를 현혹시켰다. 린스타트업이니, Vertical 한 영역을 공략하라느니, unit economics를 고려해야 한다느니 하는 것들은 스타트업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 없는 나에겐 생소한 단어들이었고 이는 그들의 위치(우리 회사에 돈을 주는 사람)와 결부되어 그들을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그들의 한계 역시 드러났다. 사업 경험조차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멘토들보다 실제 사업에 대한 감각은 더 떨어졌고, 이는 내가 투자회사에서 일하다가 사업을 해 본 입장에서 그들의 한계는 더 명확했다. 이 사람들 중 내 아이템의 성공 가능성을 평가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할까?


 정말 오랜 시간 그들의 말을 떠받들고, 그들의 말에 휘둘리고, 그것 때문에 방황하던 과정을 거쳐 깨닫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내 사업 아이템을 단 하루도 진심으로 고민해보지 않았구나! 그냥 자기들이 늘 봐 오던 것들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감정을 이야기를 할 뿐이구나! 

수개월을 고민해오던 아이템에 대해서 3분 설명을 듣고 피봇을 하라던 멘토, 5분 발표를 듣고 지금 아이템은 가망이 없으니 지금 가진 팀의 역량을 살려서 아이템을 피봇 해보라던 투자사. 5분 발표도 많이 들어서 듣기가 싫으니 첫 장표에서 우리를 한 번에 이해시키고 이목 또한 집중시켜보라던 심사위원.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의 성공이 그들에겐 주 관심사가 아니다. 평균적으로 펀드의 청산까지 3~5년이 걸릴 텐데 경영진 급이 아니면 그 기간 동안 내가 투자한 회사에서 회수한 돈을 내가 받아가리란 보장도 매우 낮다. 그럴 거면 내가 여기에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아주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포트폴리오를 담는 게 중요할 테다. 내가 그 포트폴리오를 끝까지 들고 간다고 한들 매 순간마다 투자의 이유를 LP에게 설명해야 하는 머리 아픈 일을 하느니 조금 수익 기대치가 낮더라도 확실한 곳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다.

우리에겐 사업이 인생이지만, 그들에게는 업이다. 우린 모든 책임과 보상을 받아가지만, 그들은 책임과 보상의 일부를 받아 운용할 뿐이다. 그땐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멘토들의 피드백 수준이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특별히 분노하거나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2. 내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시작을 했음에도 난 정말 많이 흔들렸다. 내가 첫 단계에 있었기에, 아직 성공을 해본 경험이 없어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 몰랐기에, 무엇 하나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보다 많이 이룬 혹은 돈을 쥐고 있는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사람들의 말에 맞추려고 했었다. 기준도 없었고 자신감도 없었기에 그들이 주는 말에 맞추다 보면 언젠가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완벽한 사업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업을 시험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으려면 모두의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으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피드백을 반영하면 할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들의 말을 어떻게 반영하든 간에 그들은 새로운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문제점들은 가면 갈수록 추상적이고, 원론적으로 변했다.


 결국에 우리 사업은 어떠한 단점도 없지만, 어떠한 장점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말했던 모든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정답에 도달하지 못한 나는 좌절했다. 그 마지막에서 무엇하나 내 것이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자신감 하나로 이어오던 사업이 그들의 생각으로 뒤덮이자 더 이상 내가 설 자리조차 사라졌다.


  처음 시작할 때의 날카로움은 무뎌졌고, 경쟁력은 없어졌다



3. 드디어, 우리의 기준

 모든 것을 다 잃은 바닥에 와서야 하나씩 내가 잘못했던 것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들, 미리 준비하겠다고 정리해둔 것들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처리하기 급급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투자회사를 들어가서 나만의 명확한 기준만 있으면 엄청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걸 알았고, 그러자고 다짐했음에도 결국 경쟁력이 없는 채로,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채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반년도 더 전에,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한 교수님의 사업 이야기를 들었었다. 교수님께서는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UX 관련 강의를 하셨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할 때, 아이템을 기획할 때 해야 하는 일들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렇게 오랜 경험과 지식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처참하게 망했다. 망한 시점에 돌아보니 자신이 늘 가르치던 것들을 자신의 사업에서는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다 망한 다음에야 깨달았다고 하셨다. 저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내 일을 할 때는 모두가 근시안이 되는구나' 생각하고 나는 그러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누구보다 근시안적으로 일하며, 내가 했던 다짐들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이야기를 웃으면서 들었다.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 확신하며


 교수님도 첫 실패를 복기하며 두 번째 사업에서는 성공을 거두셨다. 나도 또다시 실패는 하기 싫었다. 실패 자체보다 수렁에 빠진 기분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명확한 우리의 기준을 세웠다.

1. 우리의 사업에 대해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느껴져도 실제 적용하기 전까지 최소 2주는 고민한다

2. 모든 고민의 최종 결정자는 소비자다. 그다음은 데이터다.

3. 소셜 활동으로 취미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방향성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적어두면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성공에 대한 압박감, 팀원에 대한 책임감,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담감 속에서 당연한 것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하지만 이젠 안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 가장 어려웠다는 것을.



4. 맺으며

 이곳에 적힐 모든 글은 나를 위한 글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또 처음에 다짐했던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기 급급할 언젠가의 나를 위해 써두는 이정표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기에 나와 같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뿐만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일일 것이라 믿는다. 많은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이기에 사회에서 세워 둔 기준이 없고, 충분히 많은 사례가 없기 때문에 기준 없이 운에 얻어맞아 성공한 사람들이 어쭙잖은 조언을 주는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는 곳들. 그리고 아무리 자신감 넘치던 사람들이라도 그런 어쭙잖은 이야기들에 방향을 잃고 좌절할 수 있는 곳들. 그래서 내가 기준을 세워야만 하는 분야.




깨달음은 의지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지하지 않는 그대는 모든 것을 환히 알고 모자람이 없다

타인에게 배워 미혹되지 말고

내면에서나 밖에서나 만나기만 하면 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가까운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래야 비로소 해탈을 얻어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깨달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임제 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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