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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세진 씨의 주기율표


심술 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 세진은 아빠와 함께 ‘빙빙 바’를 먹고 있었다. 포장지를 뜯어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자 하얀 연유가 흘러나왔다. “아빠, 난 위에 있는 연유가 너무 좋아. 어떻게 이렇게 달아?” 아빠는 세진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곧장 맞받아쳤다. “아빠는 밑이 더 좋은데?” ‘밑?’ 아빠가 말하는 밑은 한입거리의 연유를 먹고 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얼음 조각이라고 부르기엔 달고 팥이라고 부르기엔 밍밍한 이름 모를 구성물이었다.  세진은 아빠가 그것의 이름을 불렀으면 했다. 아이스크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밑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모순적이라 생각했다. 세진은 그것에 ‘빙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아빠의 말에 대답했다. “빙빙도 맛있지.”      


세진이네 학급 교탁 위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은 좌석표가 붙어있었다. 학기가 시작했을 무렵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이 학생의 이름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좌석표의 3분의 1만, 정확히는 앞에서 두 번째 줄까지만 사용하시고 계셨다. 앞에서 두 번째 줄까지 앉은 친구를 부를 때는 ‘김종효, 조해윤, 곽재림, 홤석근’이라고 친히 이름을 불러 주셨지만 뒤편에 앉은 친구를 부를 때는 ‘맨 뒤’부터 시작해서 ‘뒤에서 두 번째’ ‘뒤에서 세 번째’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문득 교탁 위의 좌석표가 과학 시간에 외운 주기율표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필수 요소인 첫 두줄만 이름을 외우고 나머지는 그냥 표를 채우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교실은 몇 명의 아이들 그러니까 앞에서 두 번째 줄까지 앉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자리는 성적순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앞줄에 앉은 친구들은 수업시간 중 행여 자신의 이름이 불릴까 미리 문제를 풀어놓았다. 반면 잘 불리지도 않지만 행여 불리더라도 이름이 아닌 좌석으로 불리는 뒤편의 친구들은 조용히 자리를 바꿔 앉기 시작했다. 같은 부류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제는 항상 예외에서 발생한다. 끝말잇기를 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주기율표 속 단어 ‘카드뮴’처럼 뒤편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불리는 아이가 있었다. 체대 입시 준비생으로 선생님이 가끔 족구가 하고 싶을 때 부르는 친구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인범이 나와봐라.”라고 하셨을 때, 그가 복도 쪽 뒷자리가 아닌 창가 편에서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뒤쪽 아이들이 자리를 바꿔 앉는다는 것을 눈치채셨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 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곤 선생님의 훈육 시간이 이어졌다. “분명 선생님이 자리를 정해 줬는데 왜 너희 마음대로 바꾸죠? 창밖에서 들리는 우렁찬 매미소리를 따라 선생님의 목청도 높아져만 갔다. 자리를 바꿔 앉은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수업 첫날 정해준 자리를 함부로 바꿔 앉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던 터라 선생님의 역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단단히 화가 나신 선생님이 말했다. “맨 뒤에! 가서 선풍기 끄세요” 이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까지 끄고 벌을 받다니. 세진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선생님이 다시 소리쳤다. “맨 뒤에! 가서 선풍기 끄라니까요!” 세진이 선생님의 호통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진이가 바로 ‘맨 뒤’였던 것이다. 세진은 당황스러움과 억울함이 몰려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세진이 매미 소리보다 조금 작게 “선생님, 저는 맨 뒤가 아니라 ‘오세진’인데요…?”라고 말했다. 세진은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 앞에서 벌을 섰다. 도대체 어떤 용기로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다리에 피가 안 통해 마취가 된 것 마냥 얼얼했다. 하지만 그는 ‘맨 뒤’가 아니라 ‘오세진’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선생님께 알려드렸다고 생각하니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이름이 듣고 싶었다. 비록 뒤편에 앉아 있는 아이였지만 자리 말고 이름이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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