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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벗고

0110 pm 02:26

by appie


"6분 후 눈이 내릴 예정"




눈이다.

그것도 바람이 함께하는 눈보라.

도서관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로 가려하려던 찰나 예정된 눈이 내렸다.

헬싱키의 눈은 차갑고... 바람이 거세며... 사람들이...


아무도 우산을 안 쓰잖아?


가져온 우산을 펼치기 민망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은 눈을

그냥... 맞고... 다닌다.

눈에 띄기 싫은 나는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우산을 쓸까? 말까?

대신 모자를 꺼냈다.


직선이 아닌 사선을 그리는 눈은 나를 걸어 다니는 눈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겉옷과 모자, 얼굴이 점차 축축해진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신이 난다.

멋진 어른 따라 하는 어린이마냥, 현지인스러워지는 것 같아서.

꿈에 그리던 나라에, 동경하던 공간 속에 녹아든 것 같았다.

어제의 내 모습을 떠나 다른 공간, 다른 모습이 되는 신나는 경험.

여행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은 전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일단 트램을 타자 싶어 정류장에 선다.

들었던 대로 멀찍이 서있던 사람들.

너무 흡족하던 순간.

서로 부딪힐 없는 서로 간의 거리.



첫 트램.



우선 간 곳은 깜삐역.

유명한 깜삐예배당으로 들어간다.

휘몰아치는 눈에 정신을 못 차리던 바깥과 달리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따뜻한 색감의 내부.

조용히 타고 있는 촛불 소리가 타닥타닥 들릴 뿐이다.

타원의 공간 안에 홀로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깜삐 예배당에서 나와 보인 건, MUJI였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나라에서 만나는 일.

가보지 아니할 수 없다.

익숙하다. 뽐내지 않으며 모나지 않은 물건들. 그 사이 핀란드 예술가들과 협업한 물건들이 눈에 띈다.

북유럽 디자인스럽게 너무 화려하지 않은 자연의 패턴들. 그것들을 활용한 패브릭과 액세서리.

하나 사 올걸... 그랬다...



가격에 겁나 구경만 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지하 마트로 향했다.

독사과는 실존했구나!

반딱반딱하고 건강한 어금니처럼 생긴 사과가 눈앞에.

흥미로운 식료품들과 현지인들의 장바구니 구경.

여러 먹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던 음식들이 있다.

그러나 아직 체크인도 안 한상태.

꾹 참고 체크인하러 짐보관소로 향했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의 첫 헬싱키 보금자리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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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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