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 멍-, 자각?

by 이안


약속이 취소되었다.

준비를 다 한 상태여서 아쉽기는 했으나, 나와의 약속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몸은 나갈지 말지 갈팡질팡. 원래 계획대로 디저트 가게에 가서 찜해두었던 쿠키 몇 개를 샀다. 근처 역까지 걸어간 다음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그냥 바로 집에 갈까 망설이다가 집에 가면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굴복당할 것이 뻔해 자주 가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엔 사람이 많았고 혼자 앉기 좋은 바 자리에는 이미 온 손님이 있었다. 그리고 내 뒤로 온 커플이 나와 같이 주변을 살피며 자리를 찾다가 나는 옆 방 낮은 테이블에 앉았을 때 바 자리의 손님이 나가셨다. 불과 1분 차이로 좋아하는 자리가 사라졌다. 불편하게 허리를 숙여 카페에 오면 늘 하는 다이어리 기록을 하고, 창 밖 풍경도 보다가 아까 그 커플들이 1층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틀어지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다행히 자리를 바꿔 편안하게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무작정 온 카페에서 '뭘 해야 하지?' 궁금증으로 30분을 보냈다. 휴대폰을 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다가 다른 게시글들을 아무런 뜻 없이 방랑하다가 집에 가고 싶단 생각도 조금씩 들었다. 그냥 가만히 도로 위에 움푹 파인 웅덩이에 내린 비를 바라봤다. 휴대폰도 잠시 끄고, 다이어리도 옆으로 미룬 채. 이곳에 음악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원목에 벽돌색 페인트를 칠했다는 사실도, 보헤미안 스타일의 태피스트리도, 고소한 플랫화이트의 맛도 연노랑 트레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도. '가만히' 오랜만에 존재했다.


나는 드디어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하고 싶던 일들을 적을 힘과 용기가 생겼고, 글에는 과거의 아픔을 뒤로하고 내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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