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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미정 Jan 03. 2023

종로구 여행

관찰과 나무



오늘은 종로를 여행했다. 부산 여행에서 배운 것은 일상에서도 여행하듯 늘 새롭고 낯섦을 주며 살아가자는 것이었고, 그 깨달음을 머릿속에만 존재하게 할 수 없어 오늘 행동했다.


등교하는 길과 놀러 가는 길

어쩌다 보니, 등교 시간과 겹쳤다. 학교 가는 버스와 비슷한 길로 가는 버스여서 등교하던 그날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둘 사이의 이질적임을 느꼈다. 등굣길에 탄 버스에서는 어딘가 끌려가는 사람처럼 시무룩했고, 꽉 밀집된 버스 안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놀러 가는 꽉 찬 버스 안에서는 부정적인 감정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에 새로움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똑같은 시간과 장소이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나를 웃게 할 수도, 나를 슬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작은방 밖의 세상

첫 도착지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이다. 거의 오픈 시간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많고 하루의 시작이 느껴졌다. 많이 놀랐다. 이른 아침부터 책을 열심히 고르거나, 문구용품을 구매하거나, 바삐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독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집 안에만 있을 땐 모를 장면이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자신의 하루를 의미 있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리고 그들로 인해 영감을 얻고 힘을 얻는 나를 볼 수 있는지.


우연히 펼쳐 본 책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 책을 펼쳤다가 나와 생각이 똑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이런 경험은 늘 새롭고 재밌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나의 오두막에 온 기분이다. 요즘에 내가 느끼는 행복의 정의란, 지금에 오롯이 존재함이다. 가만히 서있는 그 상태에서 아무런 조건 달지 않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그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니, 행복하지 않은 날을 꼽기가 어려워졌다.


"오두막은 작지만 우리에겐 충분해요."

이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다. '오두막은 작지만 나에겐 충분해요.' 오두막의 크기나 외양의 아름다움이나, 위치나, 기능적 장점들이나 그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오두막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충분히 만족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최고일 것이다. 외부의 기준과 평가는 진정한 오늘을 살아가기에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즐겁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갤러리

새로 생겼더라. 그중에 기억에 남는 위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왼쪽은 자세히 보면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 시간에 자주 사용했던 모눈종이 위에 그려졌다. 오랜만에 본 모눈종이라서 반가웠다. 수학시간에는 불친절해보였던 모눈종이가 작가님 덕에 작품이 되었다.


오른쪽 그림은 눈사람을 그린 것일까? 당근과 흰 얼굴이 눈사람을 연상시킨다. 미술알못인 나는 늘 저런 표현주의 같은 작품들을 보면 막 그린 것 같은 데 왜 나와는 다르게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도 그림 잘 그리고 싶다. 머릿속 생각과 감정들을 그림으로 온전히 표현해 보고 싶다. 그러한 능력을 갖고 싶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작가분들이 존경스럽다.





낯섦을 주는 것, 파적

서점에 가면 늘 인문학이나 에세이 코너만 갔었다. 교보문고를 쓱 돌아보고 아쉬워서 외국서적 코너를 처음 가봤다. 그리고 개안의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책들과 확연히 그 느낌과 구성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일본 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을 열어젖히며, 글이 세로방향으로 되어있는 것. 늘 경험해 왔던 방식과 다른 방식을 겪어보니 전구에 불이 들어온 듯 새롭고 신났다. 펼치면 팝업 그림이 나와서 동심을 주거나, 일본 특유의 감성으로 귀여움을 주거나, 프랑스만의 고급 짐을 느끼거나, 다양한 영어 원서들을 통해 자유분방한 내용들과 구성들을 느끼거나. 외국 서적들을 계속 보니 여행을 가고 싶고, 나를 어서 빨리 울타리 밖으로, comfortable zone 밖으로 내보내고 싶다.


요즘 장자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어제 그 강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고정된 일상에 파적을 내야 한다고 했다. 파적이란 네이버 사전에서 정의하기로, '심심함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함. 또는 그런 일'이라고 한다. 일상이 지루하다면, 파적을 내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기쁨을 느끼거나 나아가는 것을 느끼기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파적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내야겠다.


이방인

다음가고 싶었던 서순라길로 향하기 위해 걸어서 종로구를 걸었다. 이때가 점심시간이어서 내가 있던 광화문에서는 회사원분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무채색의 옷들 사이 여행객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임에도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은. 그런데 이런 느낌이 좋다. 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 같아서.


한 발짝의 차이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종로구

서순라길에서 가보고 싶던 카페 리뷰를 찾아보다가 어떤 분의 글에서 종로는 1가, 2가, 3가 모두 느낌이 다르다는 글을 봤다. 그리고 그것을 느꼈다.

광화문에서는 무채색의 회사원들과 드높은 빌딩뿐이었다. 여기에 퀴퀴한 담배연기와 냄새가 더해졌다.

그리고 조계사, 조계사는 스님들과 달마도를 팔고 있는 불교 가게들

인사동,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며, 관광지 느낌

창덕궁, 큰 삼거리에서 보이는 넓은 풍경과 궁과 한옥들.

그리고 내가 갈 서순라길, 한 발짝 걸으면 바로 관광지인데 이렇게 고요할 수가. 

이곳은 조용하고 사람도 많이 없으며 여유를 느끼게 된다. 길을 걷다 가만히 서서 찬 공기를 마시며 존재함을 느꼈다.

한 발짝 차이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곳이 신기하고, 동네의 분위기에는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느낌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느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느낌은 창덕궁 앞거리와 서순라길.





길을 걷다 만난 귀여운 존재들

오늘도 여행 중 반가운 고양이를 만났다. 이번엔 츄르가 없었지만, 서순라길의 누군가가 마련한 밥그릇이 있어 배곯지 않고 있었다. 낯선 내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던 고양이. 이곳의 주민이구나 싶었다. 나도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싶어진다.




서순라길의 돌담과 나무를 보며 글을 쓰고 싶었다. 오늘의 종로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할 카페를 찾기 위해 전날부터 계속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했다. 실은 요 옆 파이키라는 카페를 가려고 했었는데 내가 앉고 싶던 자리에 사람이 있었고, 딱히 끌리는 메뉴도 없었던 지라 다른 곳을 가기 위해 서순라길 거리를 여러 번 서성거렸다.



운명론자가 하는 생각

헤리티지 클럽은 내가 가고 싶던 카페 목록에 없었다. 파이키에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 난 후, 다른 카페를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을 때, 바로 이 카페가 보였고, 그때 내 옆을 지나가던 행인 분들께서 큰 목소리로 '여기 오픈 시간 언제야? 지금 막 열었네.'라는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이 카페를 봤고 내가 원하는 창가 자리도 비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갈까 싶었지만, 마음은 이곳을 불렀지만 행동파인 내 발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도 없이.

날은 너무 춥고 발이 시려서 지하철로 내려가 의자에 앉아 고민했다. 헤리티지를 그냥 갈지, 아님 생각해놨던 쌀 케이크 카페를 갈지. 나가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자 싶어서 다시 서순라길로 향했다. 그러나 헤리티지 클럽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앉고 싶던 창가 자리에 이미 누군가가 있었고, '역시... 머뭇거리면 안 되는 거였어..'라고 후회하며 또 이곳을 지나쳤다. 한 1분 걸었을까, 이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고 자리 나면 옮기자는 마음으로 그냥 들어갔다. 카페를 찾다 지친 몸도 결정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이곳을 갈 운명이었을까? 내가 들어가자마자 창가 자리에 있던 손님이 떠나셨다. 첨 봤을 때 올걸. 아까 행인 분이 하셨던 말이 꼭 하늘에서 내게 전한 말처럼 느껴진다.




헤리티지 클럽 창가 자리에서 보이는 뷰. 반 고흐의 아몬드 꽃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비둘기가 그 위에 앉아 잠시 쉬다 가더라. 카페 안에서 추위를 피하고, 맛있는 디저트와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모르는 사람 따라서 메뉴 고르기

메뉴판 앞에 서서 고민을 했다. 무엇을 먹을까... 그런데 내 뒤에 오신 여자분께서 고민 1도 없이 카푸치노와 스콘 세트를 시키셨다. 그분도 혼자 오셨던데, 그래서 그냥 나도 따라서 그 두 개를 주문했다.

카푸치노.. 내 취향은 아닌 걸로.. 고냥 쓴 커피... 그러나 위에 뿌려진 시나몬 파우더는 딱 내 것.

스콘은 맛나다. 스콘 또 먹고 싶다.




종로구

나는 이곳이 좋다. 편안하고 늘 발길이 간다.

높은 건물뿐인 서울에서 옛 시간을 공유하는 한옥과 궁궐이 있어서 인지, 이곳에서는 내 숨을 쉴 수 있다.

창밖을 보며 글이 참 많이도 써진다.


새롭게 알게 된 행복

그중 하나가 오롯이 지금에 존재함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알게 된 행복에는 소확행, 가족의 건강, 친구와 즐기는 시간, 노력의 결실과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는데 하나가 더 생겼다.

행복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나무.

나무를 공부하고 싶어진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다. 가만히 나무를 관찰하면서 보이는 모습을 적어보았다.

잎, 가지, 몸통, 뿌리.

겨울이 오고 잎이 모두 져 앙상해진 나무 뒤로 여전히 푸른 소나무가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옛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했던 것일까?


나는 내가 나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막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

어느 방향으로 뿌리와 가지를 뻗어야 내가 안정적이게 굳건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과정을 거쳐 나중에는 그 뿌리와 가지에 굵기를 더할 것이다.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싶다. 늘 그 자리에서 그림자와 우산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요 카페에서 4쪽의 글을 썼다. 생각, 일기, 2023 하고 싶은 일.


카페를 끝으로 집으로 향했다.

또 이렇게 늘 이렇게 나와 잘 지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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