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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Jul 27. 2023

꼭 먹어야 하는 것 대신 정겨움을 얻었다.

강릉 혼행 1일차 ep8




강릉.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다. 

서울 촌놈인 나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기다리면 당연히 곧 온다고 생각했다. 

강릉은 아니었다. 

하루에 버스가 2번만 가기도 한다. 

오래 걸린다. 그러나 도로는 널널하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기다리는 서울과 널널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강릉.

빽빽한 도로 없는, 서울에는 없는 이 널널함이 좋다.






걷다가 본 빨간 우체통.

좋아하는 시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느림의, 기다림의, 숙성의 시간의 중요성을 알리는 빨간색.

이문재 시인의 푸른 곰팡이가 떠올랐다.

빠르게 서로의 연락을 할 수 있는 요즘에는

쉽게 느껴보지 못할,

느린 편지의 기다림 속 설렘.








맛있다는 베이글집에 왔다.

먹고 싶던 메뉴인 초당베이글 샌드는 품절.

그러나 감자 베이글이 남아있었다.

숙소에서 빵먹을 생각에 행복감 가득 안고 시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처음 보지만, 누군지 모르지만,

계속 가는 길이 겹친다.

강릉에 여행 온 사람 열에 일곱은 같은 루트였다.

소품샵을 갔다가, 유명 빵집을 갔다가, 시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이 계속 겹치니 민망하기도 하다.

왜인지 내가 그들을 따라다니는 것 같고.


아직 숨은 멋진 곳들이 드러나지 않아서

우리들이 같은 곳만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 누가 이렇게 귀엽게 칠했을까.

옹기종기, 아기자기.



















시장 도착.

두 바퀴는 계속 돌았다.

생각보다 먹고 싶은 게 없었다.

혼자 와서 양 많이 파는 것들은 구매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배니닭강정, 고로케 등등. 


그냥 시장의 분위기를 느끼다가

사람들 하나둘 손에 단호박식혜 들고 다니길래

나도 하나 구매했다.


손님 없던 할머님 혼자 하시던 가게에서.

"시원하게 입었네"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친절하셨다.

기분이 좋았고, 편안했다.

뭐라도 더 살 걸 하는 아쉬움.

시장 어르신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정겨움이었다.


그리고 메밀전 구매.

다른 곳은 그냥 배추로만 하던데, 내가 구매한 곳은 김치로 만든 곳.


강릉 하면 무엇. 제주하면 이것.

이렇다 할 꼭 먹어야 하는 것을 나는 구매하지 않았다.

후회도 남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기준을 나에게만 두는 것.

혼자 여행의 묘미다.






처음 먹어본 단호박 식혜는 달달하니 한잔 더 구매하고 싶어지는 맛.

시장에서 저녁거리 사기로 했는데, 

먹을 만한 게 딱히 없어서 어딜 갈지 시장 밖 벤치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봐뒀던 감자소금빵집은 마감시간이었고, 다른 빵집은 딱히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숙소 쪽으로 걷기로 했다.

시장에 대한 약간의 실망과 즉흥적으로 걷기로 한 약간의 불안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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