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년하루 Aug 22. 2024

신선 계곡

1부-7화. 동네 경찰 ▶ 신선 계곡

천년 고찰 계곡에는 신선이 산다. 영험한 신선이 무더위에 열을 식히려 굽이 폭포에서 새벽마다 심신을 정화해 계곡 물이 얼음장처럼 차갑다고 한다. 그 소문이 주변 동네에 쫙 퍼져 여름이 되면 신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수박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는 엉성한 전설이 흘러들어 계곡 주변 하천에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신선놀음이 한창이다.


계곡에는 또 다른 소문이 들리는데 여자와 남자가 새벽 시간 계곡에서 함께 목욕을 하면 여자는 기운을 빼앗겨 한기가 들고 남자는 더위 먹은 병이 사그라든다는 소문이 나돈다.


무더운 여름 끝자락 학생들의 방학도 끝나가고 계곡에는 방문객이 점차 줄어들어 물장구치며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한 세속 풍경이 사라지자 본래 자연 생태계로 들어서려는 단계에 접어든다.


"엊저녁에 남자와 여자가 계곡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데"


"새벽에 119구급차가 와서 여자를 싣고 갔다고 하던데"


"여자 입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고 하데..."


주민들이 작은 다리 위에 몰려 새벽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고가 난 것인지 웅성거리는 모양이 뭔가 일이 벌어진 거라고 현장이 말해준다.


해변 모래사장처럼 생긴 작은 모래톱 위에 4-5인용 텐트가 쳐져있다. 텐트 옆으로 고랑을 낸 것이 작은 물길이 흐르고 그 앞에는 참외와 수박을 모래 파놓은 구덩에 둥둥 떠있다. 4명이 함께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데 텐트 주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 있었던 사람 뵌 분 있나요"


주변 주민들에게 행방을 물어보지만 새벽에 구급차 비상등이 켜지고 사이렌 우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구급차가 떠나고 주변은 조용했다고 한다. 아침이 되어 뭔 일이 있나 싶어 와 봤더니 사람은 없고 텐트와 음식만 여기에 남아 있다.


"119 상황실이지요"


"동네 경찰입니다."


"뭐 좀 문의드릴게요, 오늘 새벽에 신선 계곡에서 환자를 이송했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동네 종합 병원으로 환자를 옮겼는데 자가 호흡이 되지 않아 응급조치 후 이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네요"


"몇 이나 옮겼나요"


"환자 한 명과 동승자 한 명입니다."


"감사합니다."


동네 종합 병원에 연락했더니 새벽에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가 자가 호흡을 못해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술을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30분 전부터 생체 반응이 없는 상태다. 환자분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는 사이에 경찰에서 전화가 온 것이라고 말한다.


"환자분 의식은 있나요"


"담당의사 선생님과 상담해 주세요."


"전화로 응답하기 어려우니 직접 오셔서 확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새벽에 들어온 환자분 상태를 확인하고자 주변을 훑어보는데 응급실 벽면 한쪽 칸에 사방을 커튼으로 닫은 침대 위에 아무런 미동 없이 입에는 동그란 형태의 호수 끼우는 장치를 하고 천정을 바라보다 감긴 눈가에 눈물이 깊게 흐른 자국이 선명하다. 환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로 확인되어 동네 경찰은 변사 사건 처리를 위해 형사팀에 연락한다.


사람이 죽으면 타자는 사자가 죽기 전 삶을 비춰보게 되는데 그 원인에 따라 경찰과 검찰이 사인 규명을 위해 수사를 진행한다. '변사'란 자연사 이외의 그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죽음을 말하며, '검시'란 변사 사건의 사망 원인과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경찰관이 사체와 주변 환경을 조사하는 것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변사자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며 현장 감식 및 검안 시, 범죄관련성을 확인하는 증거를 수집, 객관적인 자료와 검시 전문 인력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사건을 주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목격자의 증언이나 사자의 행적에서 다툼이 있었다면, 타살 가능성을 의심할 근거가 되고, 부검이나 검안 결과 타살 흔적이 없고, 수사 과정에서 유서가 발견되면, 자살 가능성을 높이는 증거가 된다.


"응급실 수속 시 같이 온 분이 있다던데 어디에 있나요"


"병원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어떤 관계라고 하던가요"


"친구라고 하던데요"


"여자 친구인가요"


"남자 친구라고 하던데요"


"알겠습니다."


로비에 들어서자 검은 러닝에 반바지 차림 남자가 장의자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동네 경찰이 옆에 왔는데도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옆에 다가가 함께 온 환자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뒷 머리를 잡더니 고개를 숙인다. 잠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눈이 뻘게진 상태로 입을 벌린 채 앞에 놓인 텔레비전을 멍하게 응시한다.


"그럴 리가..."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네..."


"두 분이 어떤 관계인가요"


"지인입니다."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나요"


"한 달 정도 됐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같이 놀러 왔다가 텐트에서 자는데 갑자기 컥컥거리다가 숨을 못 쉬는 거예요"


"두 분 말고 다른 사람은 있었나요"


"그건 왜요"


"병원에 오기 전에 텐트 주변에 주민들이 모여있어 텐트 안을 보니 종이컵이 네 개 있었어요"


"그분들은 자기 집으로 가셨어요"


"연락처는 가지고 있나요"


"예"


"친구분이 사망하신 분 관련 최초 목격자입니다."


"파출소에 가셔서 진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자는 참고인 진술을 위해 파출소로 동행을 하고, 형사팀에게는 사망자 검시를 요청한다. 남자와 여자는 한 달 전에 가게 언니가 알고 지내던 남자 친구를 통해 같이 식사하러 나온 지인을 소개해줘서 만나가 된다. 언니는 이혼하고 동생은 사별하여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한다며 서로 격려하기 위해 오랜만에 넷이서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온 것이다.


"여자분 어제 몸 상태가 어땠나요"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그런지 춥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가져온 이불이 없어서 제 옷을 걸쳐주었는데 계속 떨린다고..."


"그래서 믹스커피를 끓여주었는데"


"춥다며 저에게 몸을 밀착하더라고요"


"너무 춥다며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 주었는데"


"그날 저는 더위 먹어 몸이 너무 뜨거웠어요"


"그래서요"


"저는 뜨겁고 그녀는 너무 춥다고 해서"


"서로 열기를 나누기로 했어요"


"그러다 밑에 있던 그녀가 컥컥거리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컥컥거리면서 희미하게 누런 고양이가..."


"누런 고양이라고요"


"너무 희미하게 들려서 누런 괭이라고 했던가..."


"누런 괭이, 혹시 보셨나요"


"그때 저는 119에 도움을 요청하고 안내에 따라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그리고 텐트에 불을 켜놓은 상태라 주변이 너무 껌껌해 뭔가 있어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날 신선 계곡에서 여자와 남자가 함께 새벽을 보내어 여자는 기운을 빼앗겨 한기가 들어 혼기가 되었고, 남자는 더위 먹은 병이 나았다는 음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변고 이후 동네 발전위원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신선 계곡 모래톱에서 동숙하는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고 있다.





이전 06화 걍 그랜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