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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Aug 24. 2024

로드 킬러

1부-8화. 동네 경찰 ▶ 로드 킬러

동네 경찰이 대기 근무를 마치고 순찰을 나가려고 하는데 파출소 전화기가 정신없이 울어 댄다. 가지 말고 좀 봐 달라고 애쓰는 품바 마냥 조용한 시골 동네에 공허한 소란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수화기를 들자 연무에 덮인 숲길 왼편에 펼쳐진 돗자리 위에는 버려진 숨소리가 목젖에 걸려 속삭이듯 흐른다.


"동네 경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차가 도랑에 빠졌어요"


"거기가 어딘가요"


"전에 온 장소인데..."


"큰 건물이나 간판이 보이나요"


"방금 전에 천년 고찰 안내 표지판을 지났어요"


"119 도움이 필요하나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요"


"119와 함께 출동하겠습니다."


"흐흐흐..."


"여보세요 신고자분..."


"흐흐흐..."


신고자 전화기에서 거친 숨소리 밑에 뭔가 홀린 듯한 음성이 흘러나오지만 더 이상 올바른 대답을 하지 못해 동네 경찰은 긴급 상황에 돌입한다. 수신 전화기 액정판에 남겨진 뱀 같이 꼬부라진 숫자를 공용 휴대폰에 입력한다. 동네 경찰은 119 상황실에 관련 내용을 공조하고 119 구조대와 구급대의 동행 출동을 요청한다. 119 상황실에는 사고 발생 장소로 추정되는 신선 계곡 입구로부터 방면 2km 이내 3개소에 천년 고찰 안내 표지판이 있음을 설명하고 계곡 주변에서 대상 차량을 최대한 빨리 발견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한다.


신고자가 말한 장소를 중심으로 소방과 경찰에서 수색했지만 사고 차량 및 운전자를 발견할 수 없어 추가 경력 지원을 요청한다. 수색 범위도 도로에서 계곡 아래까지 도보 근무자는 휴대용 서치라이트를 이용하여 수색을 시작한다. 동네 발전위원회 청년들과 방범순찰대 대원들도 힘을 보태어 민관합동으로 1시간 정도 지난 시점 천년 계곡 작은 다리 밑에서 뒤집힌 채 고꾸라진 승용차를 찾아낸다. 차량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 한 남자가 차에서 탈출했는지 저만치 모래톱에 고개를 파묵고 엎어져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구급차를 작은 다리로 보내주세요"


119 구급대가 다리 위에 도착하고 다리 밑에 앞으로 포개있던 남자의 얼굴이 하늘을 향하게 뉘어 놓고는 심신 상태를 확인한다.


"호흡은 있지만 의식이 없습니다."


"동네 종합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남자는 구급차를 이용하여 병원에 도착한다. 동네 경찰은 사고 경위를 살펴보지만 특이할만한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신고자를 상대로 진술을 청취해야 하는데 남자가 의식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여기 그 장소 아니야"


"그때 여자분이 누워있던 그 장소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혹시 그 남자도 그때 그 사람..."


"어쩐지 안면이 있다 했어"


동네 종합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남자는 예전에 여자분이 누워있던 침대와 같은 위치에 커튼이 쳐져 있는 상태다. 혹시나 하고 들쳐보았는데 남자는 산소호흡기를 차고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환자분 몸은 어떻나요"


담당 의사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발작 증세가 있어 진정제를 처방했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산소호흡기를 부착했지만 조금 있으면 상태가 호전될 거라고 말한다. 환자 안정을 위해 되도록 자극적인 언행은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 얼마 후 남자가 부착하고 있던 장비를 떼어내고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로 동네 경찰을 쳐다본다.


"몸은 좀 어떤가요"


"전에 뵌 분들이네요..."


여자 친구가 죽은 지 49일째가 되어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천년 고찰에서 49재를 올렸다고 한다. 오늘 막재를 지내고 전에 함께 보냈던 장소를 찾아가던 중 도로를 가로질러 빨간 머리 여우가 갑자기 차로 뛰어들어 핸들을 급하게 틀었는데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여 도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하필이면 남자가 차에서 빠져나와 누운 장소가 전에 여자친구가 누워있던 장소로 밝혀진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이상한 동물 소리도 들려서 너무 놀라 심장 박동이 빨라지더니 무서워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고 한다. 동네 파출소 전화번호는 48일 전에 있었던 변사 사건 최초 목격자 조사를 마치면서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해 한자리 번호가 모두 단축키로 저장되어 있어 부득이하게 0번으로 저장해 놓았는데 112를 누른다는 것이 손에 힘이 빠져 뭔가를 꾹 눌렀는데 0번이 눌렸는지 동네 파출소로 연결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다음날 새벽 신선 계곡 표지판 부근에서 백구 한 마리가 로드킬 당해 죽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는 신고를 접하고 다가서자 천년 고찰에 출가한 붉은 백구 눈가에 물기가 가득 차 넘쳐흐른다. 바닥에 길쭉 내민 혀는 걷어 올리지 못하고 길바닥에 온몸이 풀려 힘겹게 숨을 몰아쉰다. 하얀 천에 백구를 감싸고선 경찰차 뒷좌석 매트에 천천히 뉘인 채 천년 고찰까지 배웅해 주자 주지 스님은 염불을 외면서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다.


a

나는 로드 킬러 도로의 무법자 앞에 보이는 건 모두 무시하지
내가 나타나면 거린 들썩이지 도로의 무법자 암도 날 못 막지
나는 로드 킬러 도로의 무법자 내가 나타나면 모두 벌벌 떨지
깜깜한 밤이 되면 나는 광분하지 앞에 나타나면 뭐든 쓸어버려
도로의 무적자 나는 태양이지 내가 나타나면 너는 눈 못 뜨지
붉은 두 분으로 너를 째려보지 나를 쳐다보면 너는 실명이지
나는 비열한 도로의 무적자 내가 나타나면 너는 강한 불빛 보지
밤이 되면 나는 광선검을 들고 앞만 보고 달려 밀려 본 적 없어
나는 로드 킬러 도로의 무법자 나는 로드 킬러 도로의 무적자

b

너는 로드킬로 도로의 살인자 앞에 보이는 건 로드킬로 운명
네가 사고 내서 거린 비참하지 도로의 살인자 사고 막지 못해
너는 로드킬로 도로의 살인자 네가 사고 친 날 모두 목격했지
깜깜한 밤이 되면 눈도 껌껌해 앞에 마주친 건 뭐든 받혀버려
도로의 겁쟁이 별명 쌍라이트 너와 마주치면 모두 눈부시지
상향 불빛으로 상대 눈 비추지 너를 쳐다보며 다들 쌍욕 하지
너는 욕심 많은 도로의 겁쟁이 너와 마주치면 욕설 쏟아지지
겁이 너무 많아 상향등만 켜고 백미러는 못 봐 귀신 나올까 봐
너는 로드킬로 도로의 살인자 별명 쌍라이트 도로의 겁쟁이


위 랩으로 조금이나마

로드 킬러에게 로드킬 당한 운명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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