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가 휘거나 꺾어지는 장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움직일 수 없이 큰 덩어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거나 근접하기 어려운 난관이 가로막고 있어 상호 불합리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직면한 어려움을 회피하는 경향이 많다.
대체할 수 없는 근원에 대해 함부로 파헤치거나 훼손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 특히 거대한 바위나 나무가 자리를 튼 신령한 곳에 손을 댄 자에게 고통을 준다는 내용은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누구나 큰일을 하다 보면 작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어떤 때는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손해로 인해 진행 사업이 존폐 기로에 서기도 한다. 이런 부담 요인을 줄이고 안정시켜 주는 도구 중 하나가 보장성 보험이다.
노을이 산기슭을 태우고 검은 망토가 내려앉은 저녁이면 뱀처럼 굽어진 도로는 이슬비로 아스팔트에 물방울이 맺혀 흐른다. 반달이가 긴 잠에 빠진 낮이면 눈이 녹아 물기가 파전 붙인 기름처럼 스며든다. 아궁이 주변에 도깨비가 옹기종기 앉아 불 쬐며까매진 감자를 보살피는 속 좁은 시간,추운 밤이 몰래 들어서면 살얼음도 살짝 앉아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기만 기다린다.
삼각형 철재 안에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그림이 보인다면 차량 운전자는 안전조치가 꼭 필요한 장소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만난 것이다. 도로상태가 위험하거나 도로 또는 그 부근에 위험물이 있는 경우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표시다.자동차가 미끄러지기 쉬운 구간을 나타낸 미끄러운 도로 표지판은 보통 위험구역의 30~200m 앞에 설치하는데 빗길과 겨울철 눈이나 빙판길 위라면 매우 위험하니 꼭 주의하라는 장소임을 강조한다.
부부는 시골 중학교 동창이다. 둘이서 죽을힘을 다해 일한 결과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이삿짐센터로 성장하는데, 처음 1톤 용달차량 한 대로 시작해 20년 만에 1톤 차량 2대, 2.5톤 2대, 3.5톤 2대, 5톤 1대를 보유한 화물운송 사업가로 발전한다. 여전히 이삿짐 나르는 일에는 거부감이 없어 이삿짐센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부터 부부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신혼부부 이삿짐을 나르는 과정에서 유럽 여행 갔다 오면서 결혼기념으로 사 온 영국제 접시세트를 화물차량 짐칸에서 밑으로 내리던 중 떨어트려 와장창 깨지는 바람에 이사 비용보다 배상 비용이 더 나왔다.보험으로 처리할지 그냥 자비로 부담할지 고민이다.
오전 이삿짐을 끝내고 오후에는 아파트에서 일반 주택으로 포장이사를 하는데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스카이 차량이 고장 나 현장에서 제대로 쓰지 못하고 수리 공장에 입고한다. 어쩔 수 없이아파트 운송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짐을 내리게 되어 평소 보다 2배나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덤으로 이삿짐 운반에 따른 엘리베이터 사용 대금까지 지불한다.
"일이 하나도 안 풀려..."
"저녁에 술이나 먹고 뻗어야겠어"
부인은 찬장에 접시를 넣으면서 신랑을 향해 쓴소리를 늘어놓는다.
"허구한 날 술만 쳐드시니 손이 발발 떨려 그릇이나 깨먹지"
"말이 좀 심하구먼"
"그러게 술을 좀 작작 드세요"
아침에 있었던 일로 인해 뿔이난 여자는 남자에게 잔뜩 화가 치밀어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일이나 소리가 들리면 잔소리를 한껏 쏟아낸다. 이삿짐을 내린 장소는 새로 신축한 2층 건물이다. 스위스풍으로 지어져 이국적 풍취가 넘친다. 부부는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하인 된 듯 고객이 요구하는 장소에 이삿짐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어휴 우리도 이런 데서 살아봤으면 좋겠네"
"돈도 못 벌면서 무슨 소리야"
부부는 오후 여섯 시 전에 일을 끝내고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스카이 차량이 고장 나는 바람에 3시간이 훌쩍 지난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일을 마친다. 이번 달까지 차량 할부금을 납부하면 빚에서 헤어나게 되는데 하필 오늘 스카이 차량이 고장 나 새로 구입을 하던지 임대해서 쓸 것인지를 고민한다.
"오늘따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힘들어 못 살겠다"
"오늘은 당신이랑 함께 차 타고 싶지 않으니 따로 갑시다"
"그래, 나도 너랑 같이 타고 싶지 않아"
남자는 먼저 출발한 5톤 트럭 보조석에 몸을 싣고 여자는 바로 뒤를 따르는 2.5톤 트럭 운전석에 앉는다. 먼저 출발한 트럭이 한 참을 가다가 뒤를 따르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여자를 향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속을 끓이고 있다.
"왜 이렇게 꾸물거리고 따라오지 못해"
기사가 옆에서 운전하고 있다가 졸음이 온다며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남자에게 묻는다. 남자는 기사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여사장님이 따라오지 못하나 봐요"
"조금 기다릴까요"
"전화를 해 봐야겠어"
남편은 부인이 따라붙지 못하자 자신의 전화기를 들더니 부인의 전화번호를 쿡쿡 누른다.
"여보세요"
"당신 어디쯤이야"
부인은 남편이 타고 있는 차량에 거의 따라붙었다며 그만 칭얼거리라고 한다. 남자는 여자의 비아냥에 속이 뒤집혀 연신 담배를 피워 재낀다. 창문을 열고 담뱃재를 터는데 끝에 붙어있던 불똥이 남자 허벅지에 떨어진다.
"하..."
"쓰벌,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당신 방금 나한테 욕한 거니"
"아, 미쳐 버리겠다"
"당신 오늘 왜 그래"
"누군 욕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
"쓰벌, 너한테 욕한 거 아니라고"
"그럼 누구한테 욕한 거니"
"야, 짜증 나니까 전화 끊어"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차를 당장 세우라고 한다. 하지만 바로 앞에 미끄러운 도로 표지판이 나타나고 이삿짐 차가 들어선 곳은 뱀처럼 굽어진 도로 경계면으로 철망 펜스에근접한다. 남자는 운전자에게 차를 옆에 세워 달라고 부탁한다. 내려서 여자와 담판을 짓겠다고 한다.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로 남편과 직원이 나눈 소리를 들은 부인이 뒤에서 상향등을 켜며 바짝 붙는다.
"그래, 내려 얼마나 잘났나 들어보자"
"이봐 차 좀 세워"
직원은 조금 더 지나면 고불탕 길을 벗어나 갓길이 있으니 거기서 세우겠다고 남자에게 말하지만 남자는 차가 서서히 진행하자 이내 차를 세울 것을 재차 지시한다.
"조금만 더 가서 차를 세울게요"
"야 빨리 세우란 말이야"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뒤에서 부인이 따라붙으며 내리라고 하고 직원은 조금 더 가서 세운다고 하자. 남자는 보조석 창문을 열더니 뒤에 따라오는 차를 향해 욕을 쏟아 붙는다. 뭐라고 하는 소리가 여자에게 들리지 않자 다시 전화기를 들더니 여자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쓰벌 너 계속 잔소리할 거면 당장 때려치워"
"그래 너랑 살면서 힘들어 못 살겠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내자 남자는 흥분한 나머지 보조석 문을 열어젖힌다.
"그래 너 잘 먹고 잘살아라"
직원이 꺾어지는 도로에서 속력을 줄이자 남자는 문을 열고 차에서 뛰어내린다. 운전수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저 먼치에 떨어진 남자를 사이드 미러로 쳐다본다. 전화기를 들고선 112로 신고한다.
"경찰이지요. 여기 사고가 났어요"
"사장님이 차에서 떨어졌어요"
남자는 떨어지면서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어 119 구급차를 이용하여 동네 종합 병원에 도착한다. 동네 경찰은 사고 경위를 청취한다. 여자는 남자가 화를 죽이지 못해 차에서 뛰어내렸다고 진술하고 남자가 탄 차량 운전자도 부부가 전화로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사장이 달리는 차량의 보조석 차문을 열고 뛰어내렸다고 말한다.
"사장님 왜 뛰어내렸어요"
"홧김에 뛰어내렸는데...붉은여우가"
"아니, 당분간 병원에서 쉬면서 놀아야겠네요"
"네, 병원 치료 잘 받으세요"
"부인이랑 그만 싸우시고요"
"다 내가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런 건데..."
"좀 쉬면서 여태껏 못 간 여행도 다녀오고 그래야겠어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부럽네요"
"20년간 일만 하고 제대로 여행도 못 갔는데 이참에 사업 정리하고 편히 쉴까 봐요."
"부인은 어디 가셨나요"
"몸보신해 준다고 장어 사러 갔어요"
"좋겠습니다. 저희 가볼게요"
그날 신고는 교통사고가 아닌 안전사고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동네 파출소로 전화가 들어온다. 어제 사고로 입원한 환자가 방금 사망했다는 연락이다. 동네 경찰은 병원으로 긴급하게 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