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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Aug 29. 2024

현고 학생

1부-10화. 동네 경찰 ▶ 현고 학생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우린 희망을 달라고 떼쓸 권리가 생기지 않을까, 어설픈 믿음을 품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큰 유성이 지구에 떨어져 멸절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작고 빠르게 사라지는 별똥별은 꿈을 싣고 저먼 우주로 돌아가 지구인이 제시한 꿈을 우주 한 편의 씨앗으로 보내어 발아할 거라는 형이상학적 자유를 소망한다.


사람이 죽으면 별똥별에 빌었던 소원이 저 세상에서 발화한다. 우주에서 지구로 달려와 스치듯 지나간 혜성을 향해 텔레파시를 보내면 우주에는 그대들이 보낸 메시지가 물결처럼 퍼진다. 이로 인해 우주에는 수많은  종류의 전자파가 흐르고도 넘친다.


우주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 우주배경복사는 미세한 밀도나 온도 차가 있어야 별과 은하가 생성되는데, 완벽하거나 균일하게 퍼진다면 별과 은하들이 만들어질 수 없어 십만 분의 일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미세 온도 차를 확인하기 위해 1989년에 COBE 우주망원경을 발사한다. COBE가 관측한 우주배경복사 스펙트럼으로 절대온도 2.7도의 흑채복사로 이론값과 관측값이 완벽하게 일치한 결과물을 제시하여 빅뱅이론을 뒷받침한다.


지구 어디에서든지 이와 유사한 전자기파 관측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과학자들이 태초 빅뱅이 우주 생성의 핵심 원인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텔레비전에 전원을 넣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영상이 송출되지 않는 상태에서 삑 하는 음이 들리고 치직 거리는 화면을 목격한다. 우린 수상기 앞에서 우주배경복사로 인해 발생한 현상을 아무 거리낌 없이 감상한다. 이러한 증거를 발견하고 증명에 성공한 두 명의 과학자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하여 가족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 고향이 있는 천년 고찰과 신선 계곡, 아름다운 물결이 펼쳐진 호수 공원, 온갖 식물과 조각이 숨 쉬는 생태조각공원으로 여행 일정을 잡는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진행하는 여행이라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들은 회사에다 아버지를 모시고 팔순 잔치 대신 가족 여행을 떠날 거라 월차를 내고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총무과에 근무하던 입사 동기가 팔순 여행 경비에 보태 쓰라며 봉투를 건네준다. 괜찮다고 사양하는 사이 주변에 있던 회사 동료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팔순 잔치 대신 자신의 고향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자고 한 이유를 밝힌다. 10년 전 칠순 잔치를 치르면서 회사 직원들이 찾아와 서로 말다툼하여 주변에 소란스러운 행동으로 경찰이 출동한다. 이를 기억하며 괜히 남들에게 부담을 주면서 팔순 잔치를 하기보다는 가족끼리 추억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한다.


"아들, 오늘 일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아비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어"


"네 작은할아버지 무덤에 가서 인사도 드렸고 내 묫자리도 보고 왔으니 이번 여행은 의미가 깊어"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작은 아버지 산소 밑에 묻어달라고 말하며 망사 조끼 윗 주머니에서 길이가 기다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다. 3년 전 집 근처 백반집 개업 때 나눠준 일회용 빨간색 라이터를 오른손에 움켜쥐더니 왼손으로 바람을 가리며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담배를 모금 깊게 빨아 들더니 연신 기침을 컥컥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아버지 이제 담배 끊으셔야 해요"


"그러다 손자 장가도 못 보면 어떡해요"


"괜찮아, 내 폐는 끄덕 없어"


"내가 탄광에서 일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내 폐는 버틸만해"


아버지는 젊은 시절 탄광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진폐증으로 국가가 지정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담배는 여태껏 끊지 못해 자식들 걱정은 태산이다. 아버지는 자손들이 찾아오면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담배를 태우고 반드시 껌을 씹는다.


아버지가 껌을 씹고 들어오는 날은 어디선가 담배를 태우고 왔다는 증거다. 아버지는 하루에 세 개비 담배를 피운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담배를 피워야 제맛이라고 특히 라면을 간식으로 드시는 날에는 네 개비의 담배를 태우면서 불로초를 킨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런 사실을 자식들은 알고 있지만 모른 척 눈 감아준다.


전에 담배를 아버지 몰래 버렸다가 화가 난 부친이 집을 나가 며칠 동안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아버지를 찾아 여기저기 안 다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아버지는 작은할아버지 산소에 들러 손으로 잔디를 하나하나 다 뜯어내고 고랑에 잠든 부친을 산골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여 발견한 적이 있어 그 후로는 담배를 치우거나 숨기는 일이 없도록 가족들 사이에 무언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 사건 다음날 병원에서 근무하는 손녀가 할아버지 건강을 걱정해 금연 껌을 구입한다. 겉 봉지를 하나씩 걷어내고 일반 껌종이에 딱풀을 바른 뒤 본래 껌종이처럼 싸서 할아버지 투명 조끼 아랫주머니에 넣어 둔다. 그는 그 껌이 금연 껌이란 걸 아는지 담배가 피우고 싶으면 꺼내서 우물쭈물 씹다가 금방 뱉어 버린다.


"요즘 껌은 맛이 없어"


"담배 맛 떨어지게 형편없어"


그는 분명 자손들이 얼마나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작은할아버지 묘소에 들러서 집에서 가져온 다과를 무덤 앞쪽 상석 위에 올려놓고는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는 담배 개피를 입에 물더니 불을 붙인다. 담배 필터를 산소 방향으로 가지런히 소주 컵 옆에 놓는다.


작은할아버지도 아버지 못지않게 담배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 고등학교 시절에 작은할아버지가 숨겨 놓은 담배를 훔쳐 피우다 걸려 몇 날 며칠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처마 밑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어릴 선탄장에서 엄마 일을 도와주면서 폐가 나빠졌는지 담배를 피우면 헛기침이 올라와 담배를 일절 피우지 않는다.


작은할아버지 성묘를 마치고 생태조각공원에 도착한다. 공원 안에는 아열대 식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아래로 물고기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수로를 만들어 놓아 식물과 물고기가 잘 어울려져 있다. 밖에는 유명한 조각가들의 작품이 수 백 미터에 걸쳐 전시되어 있고 가로수와 정원 주변에는 간이 휴게소와 맛있는 향토 음식 식당이 어우러져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족한 말 그대로 생태 조각 맛난 공원이다.


아버지는 산소에서 작은할아버지께 올린 소주와 다과를 기분 좋게 드시고는 오늘 생일이니 국수나 라면을 먹자며 향토 음식점에 들어선다. 국수를 주문하자 주인은 육수를 다시 내어야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며 한 바퀴 더 돌고 오면 연락 준다며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다녀오라고 한다.


자손들이 꽃 정원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자며 식당을 나선다. 아버지는 힘이 부친다며 식당에 있겠으니 다녀오라고 말한다. 자손들이 식당에 나가자 옆에서 먹고 나간 손님들 상에 남아 있던 소주를 보더니 한잔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주인은 흔쾌히 소주잔에 술을 따라준다.


"안주 없이 드셔도 괜찮겠어요"


"혹시 라면 끓여 줄 수 있나요"


"국수 밖에 없는데.."


"제가 오늘 생일인데 국수보다 라면을 좋아해서..."


"그럼 우리 먹으려고 재워둔 라면 하나 끓여 들일까요"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라면 값을 내겠습니다"


"생일이신데 저희가 대접할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노인은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옆에 있던 소주를 자기 테이블로 가져와 라면에 묵은지를 넣더니 소주를 입에 털어놓고선 노래를 한곡 부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주방에서 국수가 얼마 있으면 삶아질 테니 홀에 있던 주인을 향해 손님께 전화를 주라고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 배가 찾으니 소화시킬 겸 산책이나 갔다 와야겠어요"


"예, 어르신 자녀분들 오면 산책 갔다고 전할게요"


노인은 작은 아버지 산소에서 마신 술에다 맛집에서 끓여준 끝내주는 라면을 맛봤으니 자식들이 식당에 들어서기 전 불로초를 맛볼 심산에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향한다. 저 옆에 주차된 아들 승용차 뒤편에서 담배를 꺼낸 뒤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아 오늘따라 담배 맛이 꿀맛이네"


"헛기침도 올라오지 않고 정말 끝내주는 날이야"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식당에 들어온 손님들은 아까 맡은 자리에 앉는다. 10분 뒤에 국수가 나온다며 각종 밑반찬을 깔아 놓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며 주인한테 아버지 행방을 묻는다. 아버지는 라면을 먼저 드시고 산책하러 나갔다고 말한다. 이 근처에 케이크를 살만한 곳이 있냐고 묻자 한 10분 정도 가면 빵집이 있는데 전화해 보라며 전화번호를 찍어준다.


"여보세요, 빵집이지요"


"네"


"혹시 지금 가면 케이크를 살 수 있나요"


"방금 만들어 놓은 케이크 있어요"


"그럼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큰 초로 8개 준비해 주세요"


"네"


아들은 미리 라면을 드신 아버지를 위해 평소에 부친이 좋아하던 생크림 케이크로 생일 축하 노래와 후식을 준비하려고 급하게 나간다. 10분 뒤에 국수가 나오고 10분 거리에 빵집이 있으니 서두르면 모든 것이 완벽할 거라는 생각에 얼굴 꽃이 환하게 핀다.


앞에 차량이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어 후진해서 나가면 될 것으로 판단한다. 눈미러로 뒤를 쳐다보고 후진 기어를 넣고 급하게 액셀을 밟는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뒷 범퍼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다급히 차를 세운다.


"헉"


"헉헉"


"헉"


"아버지"


아들 차 뒤에서 담배를 피우다 술에 취해 앉아서 졸고 있던 아버지를 아들 차량이 후진하면서 치여 차량 바닥에 아버지가 끼인 상태다. 남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게로 뛰어 들어가 주인에게 119를 빨리 불러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차에 깔렸어요"


가족들은 소리를 지르고 서로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다. 119에서 그를 동네 종합 병원으로 후송한다. 아들 차 뒤에서 앉아 있다가 후진하면서 뒷 머리가 범퍼에 부딪히면서 머리가 터진 상태다. 동네 경찰이 공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이미 의식과 호흡이 없던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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