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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Sep 05. 2024

고사리 밭

2부-1화. 동네 경찰 ▶ 고사리 밭

심마니는 산삼을 만나면 심봤다며 큰소리로 영물 접견을 알리고 산신령에게 산신제를 올린다. 고사리를 꺾다 운이 좋아 고사리 군락지를 발견하면 모른 척 장소를 알리지 않고 숨기는 것이 꺽쇠 본심이다. 고사리의 순을 너무 많이 채취하게 되면 생육이 떨어져 다음 해에 고사리 채취가 어려워진다. 정월보름이 지난 남사당패는 내년 정월보름 사자놀음을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니며 잡귀를 몰아내는 행사를 거행한다.


남사당패 거지 양반이 부쩍 기침이 심해져 꺽쇠에게 도라지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서로 믿음이 엷은 양반은 하인이 도라지를 제대로 캐러 가는지 뒤를 밟다가 우연찮게 고사리 군락지를 발견한다. 꺽쇠도 도라지를 찾아가던 중 고사리 밭을 발견해 재 너머 두릅가지에 분홍바탕에 수염 달린 탈을 걸어 놓고는 자신만이 아는 장소로 표시하고선 도라지를 찾아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 뒤를 쫓던 거지 양반은 산으로 올라가는 하인을 보고는 안심하며 재빠르게 고사리 군락지를 꺽쇠가 찾지 못하게 수염 탈을 음기가 가득 들어찬 산기슭 두릅나무 가지에 걸어 놓는다.


양반은 갓끈을 잘라 꺽쇠가 놓은 자리 위에 묶어놓고는 자리를 피한다. 꺽쇠는 도라지를 찾다 찾다 밤이 내려앉아 고사리라도 꺾어 양반에게 받칠 심산으로 가지에 걸어둔 탈을 찾아보지만 어쩐 일인지 사라져 버려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던 중 저 앞 무덤에서 텀블링을 하면서 쫓아오는 붉은여우와 눈이 마주쳐 부리나케 줄행랑을 친다.


한참을 뛰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혀 두 팔을 두 다리에 놓은 채 숨을 돌리는데 음산한 기운이 도는 두릅나무 가지 위에 걸려있던 수염 달린 탈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가지를 흔들어 재낀다 그러자 탈이 머리에 툭하니 떨어진다. 붉은여우가 하인 앞에 턱 하니 나타나 긴 손톱을 가슴에 들이대면서 간을 주면 안 잡아먹겠다며 요사를 부리자 겁에 잔뜩 질린 하인이 에라 모르겠다며 분홍바탕에 수염 달린 탈을 덥석 쓰자 양기가 넘치는 북청사자로 변해 붉은여우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린다. 붉은여우는 북청사자에게 두 손 두 발을 빌며 백 년 묵은 도라지를 건네주고는 꽁무니가 빠지게 숲으로 사라진다.

    

고사리 군락지 찾기란 광에서 금맥을 찾은 것과 같다. 고사리는 옆면에 작고 둥근 검은 알갱이를 기다란 줄에 세워 붙여 놓는다. 고사리는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나오는 흉측하게 생긴 포자로 번식하기도 하지만 보다 확실한 방법인 자손 번식을 하는데, 숙주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체스트버스터처럼 모체에서 뻗은 지하 부정근에서 새로운 개체가 돋아나게 한다. 그 개체가 독립적으로 성숙할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이런 번식을 clonal 번식이라 부른다.


고사리 집단 조성에 꼭 필요한 요건으로 한 개체에서 시작한 모체와 분리된 자손은 충분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어도 16 ×16 ㎡로 65평 이상의 임의분포를 넘어서야 친족이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시작된다. 고사리 집단을 키우려면 적어도 10 x 10 m 이상의 크기를 조성해야 개체들의 자유로운 교잡이 이루어져 근친 약세를 방지할 수 있다.


고사리 집단에서 군집은 환경 내 영양분이나 자원이 불균등할 때 나타난다. 이는 고사리를 인위적으로 재배하지 않는 한 자연 상태에서는 주변의 초본이나 목본과의 종간 경쟁이 필연적이기에 재배지역이 아닌 산림지역이므로 종간 경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산불이 나면 2차 생태 천이가 진행되는데 가장 먼저 이끼 같은 지의류가 침입하지만, 산림지역인 경우 지의류는 배제되고 초본류가 먼저 침입하여 정착하는데 고사리가 침투할 때 종내 경쟁이 발생한다. 만약 종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고사리 개체는 도태되어 사라진다.


고사리 속 식물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펴져 있는 양치류로 고생대 때 번성한 다년생 식물이다. 고사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식용으로 사용하는데 한국에선 나물과 함께 육개장, 비빔밥에 들어가는 매우 중요한 식재료이다. 고사리에는 섬유질이 많고 비타민과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특히 칼슘이 풍부하여 성장기의 어린아이와 노인들에 게도 도움이 된다. 또한, 철분이 풍부하여 빈혈이 있는 사람이나 임산부에게 좋다.


최근 발암성 물질인 후디키로사이트(ptaquiloside)란 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1일 220 kg씩 80일간 계속해서 먹어야 독성이 나타남으로 1일 허용섭취량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잎에는 비타민B1 분해 효소인 아노이리나제가 있는데 이 성분은 열에 약하여 끓는 물로 처리하면 그 기능을 상실됨으로 삶아서 건조한 고사리를 식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크게 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1)


고사리에 함유된 자체의 독성물질인 후디키로사이트는 적절한 조리과정 방법 없이 섭취하면 독성물질이 잔류될 수 있으며, 특히 잎의 끝이 말린 어린 고사리에 가장 많다고 한다. 독성물질인 후디키로사이트의 사람 노출은 고사리 잎에 많이 함유된 독성물질이 빗물에 의하여 쉽게 토양과 물에 침출 되어 지하수로 유입되어 일어난다. 특히, 고사리를 2-3년 동안 먹이로 먹은 소는 방광종양으로 인한 증상으로 혈뇨를 보였고, 위, 장관 종양 등도 나타난다. 지역적으로는 브라질, 볼리비아, 스코틀랜드 등에서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사리를 일반 채소식품으로 섭취하고 있으나 소량씩 간헐적으로 섭취하여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고사리를 장기간 또는 다량 섭취한다면 독성이 유발될 수 있다.


5분의 가열 시간 후 고사리의 pterosin B 함량은 약 60% 정도 제거시켜 주며, 12시간 침지를 추가한 고사리는 처리하지 않은 고사리에 비해 약 88%, 또한 매 시간 물교환 작업을 추가 시 99.5%까지 제거된다. 따라서 독성물질 후디키로사이트의 제거는 가열시간과 더불어 침지와 물교환 횟수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2)


고사리는 예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먹던 산채로 배수가 잘 되고 부식질이 많은 양토이면서 습기가 유지되고 다소 그늘지며 비옥한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잘 자란다. 이처럼 고사리는 열대에서 온대지방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는 다년생 양치식물로 전국 산과 들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고사리에는 아스파라긴, 아스트라 갈린, 글루타민산과 같은 특수성분과 비타민 B1, B2, C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 영양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값싼 고사리가 수입으로 국내시장 잠식률이 80%에 이르며, 말린 고사리의 가격은 수입산이 국내산 보다 2-3배나 저렴하지만 저품질에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생산되어 국내산 품질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고사리 자생지의 토양은 일반 경작지와는 달리 삼림토양이나 신개간지 토양에서와 같이 강산성이고 유효인산함량이 낮으며 치환성칼슘과 마그네슘함량이 낮은 특징을 가진다. 자생고사리와 재배고사리 간의 무기성분 함량을 비교한 결과 질소, 인, 칼륨 등 3요소 성분함량은 재배된 고사리에서 높은 경향이고 마그네슘 함량은 자생고사리에서 다소 높은 경향을 보인다. 1년 차 포장의 고사리는 키가 매우 짧고 잎도 상대적으로 작으나 특히 간장이 매우 작은 것으로 관찰된다. 농가에서는 정식 후 2년 차에도 다소의 고사리 수확을 할 수 있으나 안전한 생육과 수확을 위해서는 정식 후 3년 차부터 수확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3)


고사리가 남성의 정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방에서는 고사리를 음기가 강한 음식으로 분류되는데, 이 때문에 나온 오해인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고사리에는 비타민B1을 파괴시키는 효소가 들어 있어 너무 많이 먹으면 비타민B1 결핍증인 각기병이 걸리게 된다. 그 증상으로 초기에는 나른하고 피곤한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다리가 붓고 마비되어 결국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금물에 삶아 익혀먹는 우리의 식습관으로 미루어 볼 때 이 같은 걱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에 가열해 조리하며 비타민B1을 파괴시키는 성분은 제거되며, 고사리를 먹을 때 파와 마늘을 다져 참기름에 볶아 먹으면 고사리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4)


제주도가 고향인 동네 경찰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따라 고사리를 꺾으로 다녀 고사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다며 제주 고사리 타령으로 목에 핏대를 세운다. 제주에 사는 고사리는 씹는 맛이 좋아 육지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인기가 좋단다. 3월 말에서 5월까지 산천에 등 굽은 손님들이 용왕이 아닌 산신령에게 인사하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며...


"사면이 바다로 펼쳐진 섬마을에서는 고개 숙인 고사리를 찾기가 시작돼요"


"이때가 되면 어른이고 아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 함께 인사를 나눠요"


"고사리가 머리 올리는 시절에 제주에 한번 들러보세요"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도내 방방곡곡에서 보여줘서 그때를 예의 절기라 불러요"


신안이 고향인 베트남 참전 어르신은 자신도 고사리 박사라며 맞받아친다. 신안에 사는 고사리는 생육이 빨라 과거부터 봄철 나물용으로 채취하는데 맛과 향이 뛰어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농가에서 고사리를 재배한다며, 해안지대에 사는 순이는 4월 초순경부터 자라기 시작하며, 기온이나 강우에 따라 빨라지기도 늦어지기도 하는데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에 절정을 이룬단다.


"돋아난 순이는 어린아이가 움킨 주먹 같아"


"흰 피막에 둘러 쌓여 순이 돋아나 자라면 아이가 주먹을 펼치면 짙은 초록빛이 물들지"


"주먹을 펴기 전인 20 cm 정도 자란 부드러운 순을 꺾어 나물용으로 채취해 먹으면 끝내주지"


동네 경찰은 이 시기가 도래하면 고사리 채취하러 산에 갔다가 실종되거나 뱀에 물려 119와 손잡고 출동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 긴장한다. 봄철 고사리 꺾기 시즌이 끝나고 가을이 다가오 산에는 밤이 쏟아져 밤 따기 시즌이 시작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는 산천에 먹거리가 널려있다. 하늘에 열리는 해삼과 바다에 머리를 내민 맛조개가 산천에 뿌려져 있다. 자연에서 으뜸인 계절이 봄이라면 가을은 킹왕짱이다.


동네 어르신 세분이 커다란 비료 봉투에 네 귀퉁이를 바느질하여 가방처럼 만들어 산밤이나 나물을 채취한다. 그들은 읍내 5일장에 판을 벌려 용돈으로 쓰고 다닌다. 어쩌다 경찰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며 파출소 앞 버스정류소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신안이 고향인 어르신은 가끔 파출소에 들러 커피도 시고 이런저런 신세한탄을 한다. 월남 참전 때 붉은여우를 만나 따라가던 중 베트콩과 마주쳐 전투를 벌이다 베트콩이 쏜 총알 파편이 왼쪽 발 복숭아 뼈에 박혀 있다며 수술 자국을 보여주면서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발가락 사이를 문지른다.


"여기 신선 농장인데요"


"고사리 절도범을 잡고 있으니 빨리 출동하세요"


"아니 봄철도 아니고 가을에 무슨 고사리 절도예요"


"여기 농장이라서 봄과 가을에 고사리를 수확해요"


"빨리 오셔서, 이분들 데려가세요"


산과 들에서 과실을 수확하는데 이놈의 고사리는 봄에도 채취하고 가을에도 수확한다. 특히 9월부터 11월 사이에는 고사리가 가장 맛있고 신선한 상태로 자라는 때이다. 이 기간에 고사리 채취를 계획하는 것이 좋다고 농장 주인이 말한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니, 오늘 밤 주으러 선산에 갔는데"


"글쎄 붉은여우 놈이 나타나더니 나를 이리로 끌고 온 게 아닌가"


"천년 고찰에서 산등성을 넘어 여기까지 왔는데 붉은여우가 사라졌어"


"주변을 훑어보다 고사리 군락지를 찾았지 뭐야"


"월남전 때도 붉은여우를 따라가다 발모가지가 나갔는데"


"별안간 저 사람이 나타나 끌려 내려왔다니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들어먹지를 않아"


"나보고 도둑놈이라며 책임지라고 그래"


신선 농장 주인은 봄과 가을에 고사리를 꺾으로 오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반드시 처벌을 해야 된다고 박박 우긴다. 노인은 농장 주인을 상대로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발가락 사이를 문지르면서 월남 참전 때 다친 흔적이라며 국가를 위해 싸운 사람한테 이럴 수 없다며 붉은여우 탓만 한다.


농장 주인도 참전 노인도 아무리 동네 경찰이 말을 해도 막무가내로 들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사유지에서 키우는 고사리를 주인의 허락 없이 무단 채취하면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국유지인 경우 산림자원법에 의거 산림 안에서 입목의 벌채, 임산물의 굴취·채취를 하려는 자는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나 지방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6조 제1항, 제73조 제1항 의거 허가 없이 산림에서 그 산물을 절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처벌해주지 않으면 당신들 싹 다 고소할 겁니다."


1) 허만규 (2021). 식용 고사리 집단의 공간적 상관관계 분석. Journal of the Korean Data Analysis Society, 23(4), 1937-1946.
2) 이향희, 김애경, 이민규, 최수연, 서진종, 김은선, 서계원, 조배식 (2017). 고사리의 독성물질 Ptaquiloside 제거방법 연구.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지, 32(3), 217-221.
3) 이수영, 박강용, 박양호 (2010). 남서해안 고사리 생육지의 토양화학적 특성과 고사리식물체의 무기성분 함량. 한국토양비료학회지, 43(5), 509-514.
4) 곽정은 (2010). 식탁에서 배우는 영양상식 - 산에서 나는 쇠고기, 고사리. 당뇨, 252,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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