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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Sep 02. 2024

부군 신위

1부-11화. 동네 경찰 ▶ 부군 신위

죽음을 앞두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은 지난 추억과 사랑의 기억이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 마지막 절벽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모자라면 미련의 끈을 놓아 버린다.


노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 연구에 따르면 죽음 앞에서 여태껏 살아온 삶의 방식과 관계에 대해 후회와 갈등을 경험하는데, 죽음을 인식하여 살아갈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달으면 의식적으로 주변을 돌아보거나 겹겹이 두른 가면을 벗게 되는데,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죽음 앞에서 고통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다면 삶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주체자로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싸나톨로지는 죽음학이라 부른다. 죽음학 학자인 Kastenbaum(1995)은 죽음학을 죽음이 내재된 생명학(the study of life with death left  in)이라고 말한다. 싸나톨로지는 좋은 삶을 위해 상실이나 비탄을 어떻게 해결하고 존엄한 임종을 맞을지 연구. 노년을 성공적으로 보낸다는 것은 적은 후회와 큰 만족감을 느끼며 인생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더 좋은 세상을 갈구하는 욕망이 남아 있어 이번 세상은 틀렸으니 다음 세상을 기약한다는 비약적 담론이다. 세상살이가 문방구 행운 뽑기도 아니고 인터넷 게임에서 현금을 질러 각성할 수 있는 희귀 아이템을 획득하는 그런 구조도 아닌데.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에서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산이나 바다로 둘러 쌓인 무인 자연터홀로 들어가 근원적 생활에 접근하는 방법, 인터넷 세상에 빠져 영화를 주야장천 시청한다거나 게임에 몰입해 일상생활은 전폐하고 눈과 손목 스냅을 이용한 최소한의 신체 활동을 점하는 방법, 가끔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기 위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육체적 활동보다는 정신적 활동이 활발한 정신적 메커니즘에 몰입한 삶이라 볼 수 있다. 끝으로 독서삼매경에 빠져 머릿속을 비우고 감각적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꿈을 펼쳐나가는 방법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 번째 방법이 그나마 인간적인 면에선 으뜸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과거에는 만화방에서 비디오를 시청하고 만화책을 무한정 탐독하면서 가끔은 천하무적의 무림제왕이 되기도 하고 건달 세계의 보스가 되어 더 나쁜 무리를 뿌리 뽑는 밤의 대통령이 된 주인공을 바라보며 무한 감정을 이입한다. 지하 만화방에서 지상으로 나올 때면 주인공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본체는 손발을 허공으로 휘두르며 축지신공을 부려 보지만 금방 먹은 라면 국물이 목구멍을 통해 올라오는 쓰라림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그림 같은 호수가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를 펼치고 누워있다. 작은할아버지는 바로 그 위에서 아버지를 지긋히 바라본다. 묫자리 주변은 돗자리 두 개정도 펴놓고 성묘를 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아버지는 생일날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아 작은할아버지 품으로 들어온 지 사일째 되는 날이다.


여름 막바지 천년 고찰에서 대승 불교식 장례의식인 49재를 지내기로 하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7일이 되는 날 지내는 첫 번째 재와 49일째가 되는 마지막 일곱 번째 막재를 절에서 지내기로 가족 간 협의한다. 절에서 일재를 마치고 가족들은 각자 생활지로 흩어진다. 다들 가슴에 품었던 울음을 꾹꾹 참으며 6주 뒤에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선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들은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소주와 담배를 챙겨 선산에 들른다.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생일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작은할아버지 묘소에 들러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던 생각이 요즘 들어 생생하게 일어난다.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 베란다 창고 선반 박스에 보관하고 있던 공책과 필통을 열어본다. 공책에는 작은할아버지 무덤에서 바라본 호수 풍경과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들이 평화롭게 펼쳐진 무릉도원이 보인다. 필통 안에는 4B 연필 2자루, 2B 연필 1자루, 동그랗게 검은 덩이가 묻은 지우개 1개, 검은색 도루코 연필칼 1개가 들어있다. 늘 아버지가 연필칼로 연필을 깎아 줬는데 연필칼은 검은색 손잡이가 있는 거였고 샤프는 써 본 기억이 없다.


선산에 들러 간단한 상차림을 하려고 물건을 챙긴다. 종이 박스를 닫으려고 접는 순간 힘을 과하게 주어 박스 날개가 뜯어진다. 베란다 창고에 둘둘 말려있던 빨간색 노끈을 아래위로 십자 형태로 묶은 뒤 가위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아 연필통에 들어있던 연필칼을 들고 노끈을 잘라 종이 박스를 묶는다.


얼마 전 사고로 운전하는데 두려움을 느껴 여동생 차에 몸을 싣고 천년 고찰에 도착한다. 절에서 운영하는 사무소에 들러 오늘 행사 일정을 건네받는다. 행식은 법당 극락전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한다. 극락전에 들어서자 중앙에 아미타불 중심으로 왼편에는 관세음보살, 오른편에는 대세지보살이 봉인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그리고 법당 왼쪽 벽면 영정 사진 거치대가 설치된 제단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


주지 스님이 재를 진행하면서 아버지 주소와 이름을 호명하고 자손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손들은 입을 손으로 막으며 울음을 참고 있지만 흘러나오는 흐느낌은 법당 안을 젖시고 있다. 부친 생일날 가족 여행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잊지 못한 자손들은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그날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가족과 사고 당사자인 아들,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무릎 끓고 죄인처럼 재를 지낸다.


"동생, 저기 아버지 산소에 나 좀 내려줘"


"어떻게 갔다가 오려고"


"절에서 받아놓은 개인택시 전화번호 있어"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가 택시 타고 들어갈게"


여동생은 오후에 약속이 있어 함께하지 못하니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차량 트렁크에 보관되어 있던 은색 돗자리를 가져가라고 말한다. 절에서 재를 지내고 사무장이 싸준 음식과 다과, 집에서 챙겨 온 박스를 가지고 선산을 오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어떡해요"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아버지 산소에는 아직 상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상차림 준비를 위해 은색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1회용 접시를 깐다. 절에서 싸준 백설기떡, 사과, 배를 올려놓고 소주를 종이컵에 가득 채운다. 일주일 전에 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 상석에 올렸던 것과 동일한 차림이다. 뗏장이 아물지 않은 아버지 무덤 앞에서 성묘를 시작한다.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담배를 입에 물고 빨간색 라이터를 켜고 한 모금 빨아들이자 하늘이 빙빙 돌면서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담배 필터를 종이컵 위에 올려놓고 아버지 무덤을 향해 절을 두 번 올린다. 술잔에 채워진 소주를 아버지 묏자리 주변에 세 번씩 나누어 뿌려준다. 다시 종이컵에 술을 가득 채우고 두 번 절을 올리고는 종이컵에 들어 있던 소주를 음복한다.


"아버지"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가 풍경을 그리면서 글을 써 놓은 노트를 펼쳐보며 아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노트를 훑어보다가 물기가 말라 약간의 흘림이 있는 자국을 보는데 지웠다 다시 쓴 흔적이 반대편에 적혀 있어 자세히 글을 본다.


"형님 미안해. 조금만 서둘렀으면 구할 수 있었는데 갱도가 무너져 버렸어 미안해, 나 대신 갱에 들어가 그렇게 되었어. 오늘 형님 아들과 함께 왔어. 이놈은 형님 묘를 지 작은할아버지 산소로 알고 있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집을 떠나 외국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그때는 집안이 좋지 않고 어머니도 몸이 아파 실제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어. 그래서 형님을 작은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가 여기 올 때마다 노트를 들고 온 이유를 이제 알게 된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황망하다. 이젠 어찌해야 하나 이제껏 키워주신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소주병 뚜껑을 열어버리고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아까 올린 담배는 다 타들어가 종이컵 둘레는 검게 타다 말고 담배는 컵 안에 거꾸로 꼬꾸라져 있다.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담뱃불을 붙여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데 헉하고 쓰러진다. 술에 취하고 담배에 취해 세상만사 뒤틀어져 버려 이제 살아서 가족을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에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결심한다.


"살려주세요"


"여기 호수가 보이는 산 중턱이에요"


"너무 무서워요"


동네 경찰은 신고자가 말한 장소로 119 구급대와 함께 출동한다. 신고자는 왼손 팔목에 대여섯 줄 칼로 베인 자국이 선명하다. 119 구급차를 이용하여 동네 종합 병원에 도착한다.


"신고자분,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버지 산소에서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생각에 어떻게 하면 편히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주머니에 있던 검은색 연필 깎는 칼로 손목을 그었지만 녹슨 날이 시원찮아 제대로 베이지 않아 목을 매려고 노끈을 나무에 걸었는데 저 숲에서 붉은여우가 나타나 너무 놀래 기절했다고 한다. 깨어나 보니 깊은 밤이 되었고, 술이 덜 깨 머리는 깨질듯하고 손목도 쑤셔오는데 너무 무서워 살려달라고 신고한 것이라 진술한다. 신고자의 퇴원 여부를 담당 의사에게 묻자 담당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신고자에게 말한다.


"파상풍 주사 놔드릴 테니 주사 맞고 집에 가셔서 푹 쉬세요"


"그렇게 하면 죽지요"


"선생님, 그 주사는 아프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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