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을 무렵 무전으로 자살 의심자가 있으니 신고자와 대면하여 사건 내용을 청취하고 대상자 사진과 차량 이용 여부 등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령을 받는다.
사건 개요는 대략 이렇다. 화물 운송 사무실에서 점심 내기로 훌라를 하던 신고자가 단속된다. 그의 부인은 천년 고찰 계곡을 따라 조성된 작은 펜션을 운영하는데 손님도 없고 가계 부채만 늘어나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남편마저 도박으로 경찰에 붙잡혀 부부 싸움을 시작하는데 신고자와는 죽어도 못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집에서 나가는 것을 목격한 남편이 부인의 신변이 걱정되어 경찰에 신고한다.
차량 번호 뒷자리는 팔사오칠이고 차종은 검은색 그랜저로 30분 전에 집에서 나갔다. 부인은 다투는 과정에서 냉장고에 쟁여 둔 맥주캔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차키를 집어 들고선 밖으로 나갔는데 남편은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없어져 부인이 걱정된다고 하소연한다.
"팔사오칠"
"팔자 한번 고쳐보자고 부인이 고른 건데..."
"팔자 고칠 차..."
"자주 가는 장소는 있나요"
신고자는 부인이 술을 마신 상태로 차를 이용해 어디론가 이동했고 갈만한 장소가 딱히 없단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를 추모공원 봉안당에 모셔놓고 힘든 일이 있으면 들르곤 했는데 근래 들어선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면 동그란 얼음 덩어리를 띄어주는 레모네이드 맛이 끝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창문은 작지만 얼굴을 내밀면 석양이 불타는 장면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호수 옆 카페에 자주 들른다고 한다. 동네 경찰은 대상자를 찾기 위한 최우선 장소로 석양이 불타는 호수 카페로 정하고 만약 대상자를 그곳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추모공원과 그 주변을 수색할 예정이다.
동네 경찰은 신고자에게 부인이 자진 귀가할 수 있으니 집에 있으면서 추가로 알게 된 내용이나 다른 동선이 있으면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신고자도 함께 찾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지만 내용연한이 경과한 경찰차 뒷자리에 신고자를 태운 채 함께하기 곤란함에 대해 이해를 구한다.
"혹시나 부인한테 연락 오면 저희한테도 알려주세요"
"휴대전화를 집에 둔 채 나가서 연락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평생 못난 저를 만나 고생만 했는데..."
10분 뒤 전망이 좋은 호수 카페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훑어보고 있는데 팔자 고칠 차량이 주차장 끝 쪽에서 호수를 머리에 두고 주차되어 있다. 경찰차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을 본 차량 운전자는 갑자기 가속 페달을 밟아 차를 뒤로 쭉 빼더니 경찰차 반대 방향으로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쏜살같이 달린다.
사이렌을 울리며 앞에 가는 차량을 향해 정지할 것을 수차례 방송하지만 대상 차량은 설듯 말 듯하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언덕바지 초입에 이르자 서슴없이 가속페달을 밟아 꽁무니 빠지게 도망간다. 동네 경찰도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 보지만 걍 그렌져와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아반떼로 어떻게 걍 그랜저를 추격하나요"
"아반떼 이상 배기량은..."
"참 야속합니다"
오르막길에서 경찰차가 푸드덕푸드덕 알피엠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더 이상 무리한 추격으로 엔진이 퍼지면 곤란한데"
차량 경로가 동네 파출소로 가는 방향이다. 동네 경찰은 파출소 도착하기 전에 대상 차량을 수배하고 추가로 수색할 지원 경력을 요청하면서 파출소로 이동한다.
그녀는 몇 분 전부터 동네 파출소 주차장에 검은색 그랜저를 주차한 뒤 차에서 내려 파출소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뒤 따라 들어온 동네 경찰은 그랜저 뒤편에 차를 세우고 잠겨진 파출소 비밀번호를 누른 뒤 그녀와 함께 들어선다. 그녀는 대뜸 경찰을 향해 소리친다.
"경찰이 해준 게 뭔데, 우리 인생에 끼어드느냐"
"당신들 때문에 패가망신하게 생겼어"
그녀는 한참 동안 경찰을 향해 원망을 늘어놓고는 동네 경찰이 운전해 주는 그랜저 뒷좌석에 앉아 차창에 기댄 채 흐르는 눈을 감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