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아니야"
"어디를 가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빙빙 전해 들었을 뿐"
명령인지 요청인지 모르는 상태로 버스에 탄다.
여러 명이 앞과 뒷자리를 차지하려 매섭다.
버스기사 면전에 낮은 소리로 항의한다.
"어쩌면 인원수가 많아 다 타지 못할 것 같네요."
기사는 걱정 말라고 한다.
"자연의 섭리처럼 잘 해결될 겁니다."
뒤에서 밀려들어온 사람들로 뒷자리는 모두 채워진다.
남은 자리라곤 앞에 보조석과 문 옆 접이식 좌석뿐이다.
나와 부인은 앉을자리가 없지만 기대해 볼 만하다.
기사가 승낙하면 접이식 자리라도 앉을 작정이니까
버스가 출발한다.
약간의 기대가 성공으로 확신될 때 기사에게 물었다.
"저 자리를 펴고 앉아도 되나요"
기사가 우릴 쳐다보더니 왜 안 내렸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2킬로 정도 진행한 버스는 꺾어지는 도로에서 앞 문을 치익 연다.
기사는 말이 없지만 내리라는 무언의 명령이다.
부아가 돋아 쓰라린다.
상처 난 허파에 알코올 소독이 필요하다.
"기사 양반 보아하니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정신 좀 차려야지"
"어떻게 초과된 손님을 태워놓고 태연하게 출발합니까"
"당신은 분명 잠이 부족하던지 약물에 취한 것이 확실하네요"
큰 소리로 따지듯 물은 뒤 앞 문 계단에 발을 쾅쾅 구르며 내린다.
버스는 출발도 못하고 승객과 기사 간의 확인 사살이 시작된다.
우린 웅성거리는 소리를 기운 삼아 어둠에 휩싸인 길을 걷는다.
버스에 귀신이 들어차 살상하듯 비명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뒷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왔을 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싹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아"
어머니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부인은 옆에서 잘빠진 매끈한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밀듯 어루만진다.
마지막 담배가 분명하다.
담배가 그립다.
향에 피어나는 추억이 배인다.
터미널에 도착해 잡화점에 들어선다.
주인이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담배를 집어 들고 돈을 내려놓고 나갈 샘이다.
담배를 든 순간 아주머니가 나타나 뭐 하냐고 묻는다.
버스를 놓쳐서 담배를 사러 왔다고 답한다.
믿음이 가는 눈이다.
알았다며 담배를 건네준다.
다음 버스 시간표를 묻기도 힘들게 창자에 급변이 일어났다.
작은 방에 쌓아놓은 듯 누워있는 누런빛 의자가 보인다.
몸을 구겨 넣고는 엉덩이를 표적에 맞춰 힘을 준다.
꺾인 고무호스에 눌린 줄기가 언제 펴져 터질까 불안하다.
밖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듯 그림자가 커진다.
급하게 들어오느라고 문 잠금장치도 못 했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문 걸쇠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문이 벌컥 열리고 검은 머리가 들어온다.
볼일은 집에서 봐야지 왜 남의 집에서 보냐는듯한 눈빛이다.
원망이 가득한 생김에 한 번 더 놀랐다.
겁을 먹지 않았지만 민망함과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생겼다.
버스 터미널 시간표가 없다.
주인에게 묻는다.
언제 버스가 오냐고 검은 1시에 온단다.
10분 정도 남았다.
버스를 타고 여길 벗어나고 싶다.
버스는 언제 오려나...
조금 전에 내린 버스가 플랫폼에 들어선다.
"여보 우린 터미널 시간표에 갇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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