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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뭘 하는 사람이지?

학생 간호사의 일과

by 미국간호사 Sophia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간호대학이 4년 제로 통일되어 있지만, 내가 공부했던 시절에는 3년제와 4년제가 혼재했고 졸업 전 간호사국가고시를 치르면 모두 같은 면허를 받는 제도였다. 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3년제 간호학과를 선택하게 되었고, 1학년때 기본간호학 등의 기초간호전공과 교양과목을, 2학년 1학기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뒤, 병원 및 지역사회 실습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4년제 간호학과는 1학년때 교양과 전공선택과목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2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공과목을 다룬다)

케이스스터디 등을 위해 4-6명이 한 조가 되는데 우리 학년은 정원이 40명이 조금 넘어서 8개의 조로 나뉘었다. 대학병원/전문병원/보건소 등으로 그동안 이론으로 배운 내용들을 실습하기 위해 가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2학기부터는 미국에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2학년 동안 실제로 실습을 했던 건 산과 전문병원의 경험이 전부였다. 큰 병원은 아니었으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업무를 보며 전문적인 모습에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고 특히, 일에는 엄격하나 그 이외에는 따뜻하게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셔서 실습기간 내내 정말 즐겁게 다녔다.


3년제 간호대학생들은 2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기관을 다니며 실습을 하게 되는데, 실습지는 한국과 미국이 대동소이하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미국의 병원, 널싱홈(요양원), 어린이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이론으로 배운 것을 체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시뮬레이션 수업을 통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모의로 실습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실제상황이 더 공부가 되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미국의 학생간호사처럼 직접 해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고, 그날그날 근무하는 간호사선생님을 쫓아다니면서 보고 질문하고 보조하면서 실습과제의 주제를 정하고 정보를 찾으면서 이론을 실제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이러한 경험도 간호사로 일할 때 밑거름이 되기는 하지만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간호사가 된 이후에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너무나 명쾌히 알게 되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볼 참이다.


실습에서 했던 일을 나열해 보면, 바이탈(혈압, 맥박, 호흡, 체온을 통칭해 말한다) 측정 및 관리, 수술이나 검사시행 후 병동으로 복귀한 환자의 바이탈 및 통증 상태를 관찰하고 간호사 선생님의 모자란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일하기(여기엔 급한 약을 가지러 약국 가기, 급하게 검사가 필요한 혈액 검사실에 전달하기 등도 있었다-요즘은 슈터를 이용해서 파이프 같은 곳을 통해 전달하고 사람이 가는 일은 드물다), 케이스스터디(학생간호사의 실습 숙제이며 환자 한 명을 특정하여 질병과 간호에 대해 전반적인 이론과 실제에 대한 레포트)를 위해 환자의 데이터를 파악하며 모르는 것 찾아보기, 간호사 선생님들께 틈틈이 알려주시는 꿀팁들 배우기 등이었고 이런 업무들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간호사가 되었을 때 적응하는 자신감이 되어주기 때문에, 미래의 간호사를 꿈꾸는 분들께 당장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일이더라도 열심히 참여하고 배우는 노력을 쏟으시길 조언드린다.


실습을 하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인데 그중 하나를 말해보자면, 지금은 뉴스나 인터넷에서도 잘 알려진 ‘태움'의 현장을 목격한 사건이다. 그 주인공은 한 병동에서 만난 시니어 간호사선생님 한 분인데, 유독 신규간호사선생님과 우리 학생간호사들에게 신경질적이고 조그만 실수에도 소리를 지르고 면박을 주는 분이셨다. 신규 간호사 선생님이 우는 모습도 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죽하면 그 병동 실습기간 동안 그 시니어 선생님이 쉬는 날이 언제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들만의 인수인계였을 만큼 강렬하게 무서운 분위기였다. 그 당시만 해도 간호사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로만 생각했고 또 그래야만 했다. 내 동기들은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이미 그런 일을 한 두 번은 겪었던 상태였고, 그러려니 하면서 슬슬 피해 다니기만 했는데 나는 그런 사연을 몰랐던 터라 결국 타깃이 되어 활활 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 간호사가 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엄청난 고민을 하며 실습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간호사가 되기를 선택하고, 지금까지도 이 직업에 대해 만족하며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나쁜 소수의 기억보다도 더 많은 좋은 기억 덕분이었다. 병동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간호사선생님들은 일은 물론이요, 성격도 좋고, 진심으로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을 즐기고 보람을 가진 것이 눈에 보이는 분들이었다. 병원에는 건강한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고, 아픈 사람들은 너그럽지 않을뿐더러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당연한 데다, 그런 사람들을 측은지심으로 대하는 것이 간호사라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곤란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께서는 간호사 역시 감정노동을 하는 의료서비스직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끝내고 나서는 절대 일하는 곳에서 느꼈던 나쁜 감정과 경험을 가져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말은 쉽지만 그게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일과 삶의 밸런스를 가지고 나를 챙기는 것'이 그걸 가능하게 해 준다는 말씀에 이해가 되었다. 내가 간호사가 된 이후로도 정말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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