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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닌 시작

간호고시-1

by 미국간호사 Sophia

우리나라에서 학벌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동의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왕이면 같은 점수로 평판이나 이미지가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우선 나는 동기들과 나이차도 많았고, 이미 다른 전공으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나에겐 간호사가 되는 것이 최종목표지, 이 학교의 동문이나 대학생활이 중요하지는 않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이유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저렴한 학비가 우선순위였다.


결국 최종 합격한 3년제 간호대 중 내가 갈 수 있는 예산 안에서 학교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에 그런 이름이 있는 줄도 몰랐던 시골의 한 학교만이 남게 되었다. 지원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시골에까지 가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은 동네로 보여서, 공부하러 오는 학생도 없으리라 쉽게 생각하고 지원을 했는데 입학 후 수업을 시작해 보니 위치가 시골일 뿐, 결코 만만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으로 졸업했던 동기들이 2명이나 되고, 또 다른 동기는 의대를 떨어져서 왔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이제 난 어떡하지?


그렇게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공부의 양도 대도시의 학교들과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국가고시라는 대단한 시험을 전국의 간호대학생 예비졸업생이 치르는 것이니 당연하게도 지방이라고 해서 덜 배우거나 가볍게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생판 처음 보는 명칭과 내용의 이론을 매 수업마다 수십 페이지씩 배우고 암기하고 시험 치고.. 기준점수를 받지 못하면 재시험을 치고.. 나머지 공부까지..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의 나는 간호사가 아니라 고시생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고시라는 말만 들어도 그때가 생각난다. 난 고시생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나의 간호고시생활은 시작되었고, 졸업을 하면서 끝이 났다.

그럼 내가 어떻게 고시생활을 했는지 다음화에서 좀 더 상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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