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간호사 Sophia Aug 26. 2024

누구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어른이

우리나라는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친절하며 정확한 데다 저렴하고 편리함이 장착된 나라이다. 친절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 정도로 어딜 가든 친절한 직원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며 대부분은 그런 친절에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는다. 거기다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는 기본이다. 인플레이션이다 뭐다 말은 많지만 세월에 흐름에 비해선 사람에게 받는 서비스에 비해 비용은 여전히 저렴한 수준이다. 소비자로서 대우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일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돈벌이가 또 있나 싶다.


미국이란 나라에 와서 가장 빠르게 느낀 것은, 모든 친절과 빠름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불친절해도 내가 필요하면 기다림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 때론 돈을 지불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괏값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곳에 이민 온 친구 중 하나는 ‘게으른 미국 놈들’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미국의 기본값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또, 한국에서의 친절과 편리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미국에 이런 면은 참 별로라고들 이야기한다. 가성비도 없고 퀄리티도 말할 수가 없이 부족하다.


나도 처음에는 돈을 내고도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답답하고 나아가 이것이 인종차별인 건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우연히 내가 겪었을 뿐, 그 경험은 불특정 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미국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느려터진 업무처리도 그렇지만 이곳에 살아가면서 더 적응하기 힘든 부분은 어떠한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돈을 낸 적이 없다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 돈을 냈다 하더라도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은 결국 내가 책임지고 확인하고 알아보며 각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확실하고 정확하게 해결해 주는 이가 없다.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게, 너무나 많은 인종과 인구가 있는 나라인 데다 땅덩어리도 엄청나게 넓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친절하고 자세하게, 일관성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정보라 하더라도 내가 이용하기 전에는 다시 확인하고 알아보는 것이 굉장히 당연한 일이고, 자신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이곳의 암묵적인 룰이자 내가 처음 와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관해 느낀 사건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현재 내가 은행계좌를 열었을 때와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면 이해가 좀 될까 싶다.

미국에서는 은행계좌를 처음 열 때 무작정 근처 은행에 들어가서 번호표를 뽑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예약한 것이 확정되었는지 이메일이나 문자로 확인을 한 뒤 예약한 시간에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야 한다. 계좌를 열 때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예약 시 은행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고, 그래도 그것만 믿을 수 없어서 검색도 해보았는데 여기는 이서류, 저기는 저서류가 필요하다고 해놓아서 도대체 어떤 정보가 정확히 은행에서 필요한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최대한 내가 가진 서류를 다 챙겨서 은행에 방문했는데 결국 은행에 처음 간 날 계좌를 여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은행직원이 왜 안되는지 필요한 서류가 적힌 종이를 주었는데 거기엔 내가 필요할 거라 준비했던 서류 중에 한두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다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소셜카드만 가지고 있었고 영주권은 배송은 시작했지만 받기 전이었는데, 여권에 붙어있는 영주비자로 가능하다고 해서 일단 방문해 본 것이었다. 내가 갔던 지점이 까다로운 것이었는지, 최근에 모든 지점의 지침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계좌를 열어주기에는 신분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영주권이 도착하고 미시간 운전면허증까지 발급받은 뒤에서야 다시 은행을 예약했고 두 번째는 모든 신분증을 다 가지고 간 덕분에 무사히 은행계좌를 열고 신용카드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사건(?)은 입사할 예정인 미국병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전에 한국에서의 경험을 먼저 말해보자면, 한국에서는 새로 입사한 간호사들에게 교육일정과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안내와 알림을 준다. 혹시나 의사전달이 잘못되어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 여러 차례 확인을 하기도 하고, 이 과정이 끝나면 다음은 무엇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안내도 굉장히 디테일한 편이다. 새로 입사하는 입장에서는 배려와 챙김을 받는다는 느낌을 무척 받는다. 사실 나도 이런 문화에 많이 익숙했기에 미국에 와서도 ‘설마 우리나라정도는 하겠지’ 라며 비슷한 수준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미국병원에서는 입사할 날짜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입사일정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없었고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과에서 한 번에 안내가 올만한 일정소개도 없이) 대신 채용신검팀에서 입사 전 검진을 와라, 오리엔테이션팀에서 첫날은 어디로 와라, 내가 일할 부서에서는 유닛오티는 일단 이렇다 등등 각각의 부서에서 자신들의 속도로 여기저기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폭탄처럼 메일이 도착해서 너무 정신이 없었다.


누구 하나 앞으로의 상황을 정리해서 안내해 주는 이가 없었다. 안 그래도 안 되는 영어로 하루에도 여러 통의 중요한 이메일들을 받다 보니 쓸데없이 완벽주의자인 병이 도져서 신경이 곤두서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름과 직급만으로는 뭘 하는 사람이 보낸 메일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 누구인지 알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책이거나 상당히 다른 업무를 하는 위치에 있어서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메일이 오기도 했다. 무슨 유니버시티라는 항목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여러 지점의 병원들을 통합해서 그룹으로 운영하며 온라인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모아놓고 이수하도록 해 놓은 사이트가 있었는데, 이 사이트를 유니버시티라 부르는 것이었다. 처음엔 무슨 대학에서 연락이 온 줄 알고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닌데 잘못 온 메일인가? 하며 여러 번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 이리저리 찾다가 우연히 답을 찾기도 했다.


중간에 정말 다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연락을 받다 보니 한 건 없는데도 이미 정신적으로 피곤해져서 입사를 하기 싫어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게임에서 퀘스트를 하나씩 달성하듯이 매일 하나씩 조금씩 해나가면 결국 다 끝내는 날이 올 거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을 곧이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못 이긴 척 그렇게 해보기로 했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안내메일들을 도착한 순서대로 하루에 하나만 꼼꼼히 읽어보고 뭘 해야 하는지 빈종이에 적으면서 처리해야 할 일을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하다가 짜증이 나면 그대로 덮어두고 그날은 더 이상 메일을 열어보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흐르자 내가 해야 했던 일들의 끝이 보였고 그렇게 입사일도 다가왔다.


오리엔테이션이 시작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통적으로 알려주는 부분은 있지만, 사람마다 이해하는 정도와 방식에도 차이가 있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이 다를 수 있기에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천편일률적으로 요구하거나 따르게 하는 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명확한 지침이 없고 그때그때 물어보고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참 이상해 보였는데 이런 경험을 점점 해가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기본값은 이러한 듯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심이고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모든 사람을 다 함께 공통으로 묶을 수 있는 기준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본적인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누군가는 이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기준을 맞추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떠한 서비스나 안내를 할 때에도 먼저 서비스를 받을 사람이 자신은 이런 것이 좋다 싫다. 또는 나는 이러하다 저러하다 말을 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쉽게 생각해 보면 미국의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전문점인 ‘서브웨이’를 보면 알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아무거나’인 메뉴가 없다. 빵도 고르고 치즈도 고르고 토핑과 드레싱도 내가 직접 고르는 식으로 모든 걸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는 배려의 방법이었다. 짜장면 통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선택장애가 올 만도 하다.


오리엔테이션 강의 시간에도 개인의 자율과 선택이 존재했다. 매일 아침 교육이 시작되면 강연자는 가장 먼저 어떤 것이든 질문이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하고, 교육 중에도 얼마든지 의구심이 들거나 다른 의견이 있을 때 말을 꺼내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교육이 끝난 후에도 다른 의문점이나 이해에 대해 확인을 하는 것이 나에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질문을 하는 것은 일정의 흐름을 끊고, 질문의 길이에 따라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을 하고, 그저 다 이해한 척 괜찮은 척하는 것이 미덕인 것과는 정반대였다.


병동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항상 들었던 말이 ‘멍청한 질문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었고, ‘누구나 질문을 통해서 함께 배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으레 하는 말이 아닌 매우 일상적이고 진심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간 내가 답답하고 힘들게 느끼던 이 나라의 문화가 어느 순간 배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하지만, 그 의미에는 내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이해도가 다르기에 본인에게 맞는 결과를 찾아가는 배려가 존재한다는 것.


아마도 한국에서 계속 살아왔다면 이 나이에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가끔은 익숙한 것이 편하고, 편하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부담되고 귀찮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배우는 것들은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은 남에 대한 나의 배려심을 넓혀가는 일이기도 했다. 이곳의 문화와 방식을 모르기에 의도치 않게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해 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항상 시간에 쫓기고 업무에 치여서 마음의 여유라곤 없던 나에게 배려와 여유라는 것이 생기게 해 준 이곳이 지금은 좀 고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면 정말 좋겠다. 내 나라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인은 미국에 사는 어떤 인종보다도 성실하고 똑똑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이기에 이곳에서도 인정받고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난 민족이 남과 경쟁해서 발전하는 것보다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우며 살아남으려고 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워 조금 더 넓은 곳에 나와 살고 있는 조무래기가 한마디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