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은 졸업부터 시작이다.
간호대학은 보통 졸업반이 되자마자 취업준비를 시작한다. 서울이나 지방에서도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3차병원, 일명 대학병원)들은 늦봄~초여름부터 인턴이나 신규졸업자 구인공고를 내기 시작한다. 학점이 좋고 등수가 높을수록 선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담당 지도교수의 추천서를 받아 우선적으로 지원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졸업반인 학생들 대부분이 예민한 시기로, 학점과 백분율로 인해 지원등급이 나뉘어 누구는 대학병원에 갔네 못 갔네 하며 서로 사이가 소원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함께 희로애락을 했던 동기들 사이에서도 민감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간호사는 항상 부족하고 병원은 많기 때문에 큰 규모의 병원에 가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취업을 못하는 간호사는 없다. 그리고 졸업 후에 근무를 하고 어느 정도 경력을 채워서 상급병원으로 경력직 이직을 하는 방법도 있으므로 현실을 비관하거나 너무 속상해하진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병원으로 취업했는지에 따라 학교와 가족에게 면목이 서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시기였던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리고 성적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간호대학은 1학년 중간고사 이후로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학점부여방식이 변경되었는데 시험이나 퀴즈, 출석, 과제로 얻을 수 있는 점수 그대로 학점을 주는 절대평가가 아닌, 1등부터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서 학점을 주는 상대평가가 되었다. 달리 말하면 같은 90점을 받아도 어떤 학생은 A를, 어떤 학생은 B+를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최대한 만점을 받으려고 노력해야만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만점이어도 기준에 따라 등수를 만들고 학점을 나눴기 때문에 동점으로 만점자가 나온다면 이 중에서 낮은 학점을 받는 사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우리 학년은 전에 없던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 적당히 공부해서는 졸업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을 만큼 간호대학에서의 공부는 정말 만만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졸업반이 되고 원하는 병원에 취직이 확정되면(대개 졸업반 1학기에 확정이 된다) 그 이후인 마지막 학기의 성적은 입사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게다가 가장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남은 학기의 성적은 적당히 채우는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바로 들어온 동기들이었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 평생을 일하고 은퇴를 할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이직을 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마지막 학기에 갑작스레 성적이 추락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있었음을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취업과정에서 성실함이라는 조건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다.
재수생 이하 세상의 경험을 미리 했던 언니, 오빠들은(?) 이걸 잘 알았지만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학기의 성적을 위해서 그들만의 리그가 결성되었다. 나 역시 졸업까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 덕분에 경력직으로 여러 번의 이직을 하면서도 서류에서 탈락해 본 적은 없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