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안녕하세요. OO대학교입니다. 모월 모일까지 입학금을 납부하시면 됩니다."
"엄마, 나 합격했다는데, 입학금을 모월 모일까지 납부해야 한대요."
겉으로는 그럭저럭 사는 줄 알았다. 엄마는 여기저기 연통을 넣으신다. 납부일까지 2일 밖에는 여유가 없고, 엄마의 통장은 흔히 말하는 바닥까지 박박 긁은 상태였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마이너스 통장이 없으니 신용거래를 해야 했다. 엄마의 주변 인맥 중 한 분이 선뜻 빌려주셨단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식이 대학을 입학하는 데 당연히 빌려줘야지."라고 하셨단다.
불합격한 줄 알았다가 뒤늦게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온몸에 긴장이 풀렸나 보다. 그 바람에 3일을 앓아누워 버렸다. 그전까지는 감기와 같은 잔병치레를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3일씩이나 아팠던 지라 내심 엄마 손을 기다렸다. 피곤하지 않은 엄마의 얼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목소리를 기다렸고, 어리광 부리고 싶었나 보다.
"약은 먹었나?"
"응"
"좀 괜찮아졌나?"
"응 오늘이 3일째인데 이제 좀 살만한 것 같아"
"됐다. 밥 차릴 수 있나?"
"아니 기운 없어."
"휴~ 알았다."
"죽 먹어라"
"히히 엄마 이 죽 맛있다."
"마이 무라~ 그나저나 OO이가 떨어졌단다"
"그래? 재수한대?"
"하겠지, 아들 하난데. 그나저나 너는 떨어져도 OO 이는 붙었어야 했는데 잘못 됐다."
"뭐래? 엄마 자식은 나야!"
"너는 딸이고 OO 이는 아들인데, 그 녀석이 합격해야지~"
"엄마, 그럼 이왕이면 같이 붙으면 좋다고 해야지. 딸 더러 떨어지라고 하는 엄마가 어딨노?"
"시끄럽다. 니는 떨어져도 된다."
"그럼 입학금은 왜 줬어?"
"합격했으니까 줬지. 됐다 고마해라"
남 얘기하듯 내뱉는 엄마의 말에 문득 시험 치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나랑 동갑인 외사촌에게 엿을 사준단다.
"엄마, 외삼촌도 나한테 엿 안 사주셔. 당연하지 자기 자식이 있는데~ 그러니까 엄마도 OO이 사주지 마. 그거 사주면 나 떨어질 수 있잖아~"
"안돼. 넌 떨어져도 되지만 걔는 아들이라 꼭 합격해야 해."
"그래서 꼭, 기어코 사준다고?"
"당연하지."
결국 내 몫의 엿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는 외사촌의 엿을 사들고 그 집을 찾아가서 격려를 하고 왔단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나에게 엿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당연하단다.
엿을 못 받은 슬픔보다 존재의 가치를 부모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함부로 할 거면 왜 세상에 내어놨을까? 이왕 낳았으면 진심으로 소중하게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다행인지 뭔지 그 녀석은 결국 재수를 하고 나는 힘겹게 합격을 하고야 말았다. 엿을 받으면 합격하고 안 받으면 떨어질 것 같은 미신 같은 믿음은 실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안타까워야 할 그 녀석의 불합격 소식은 내심 고소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어른들의 말도 안 되는 이기심이 자식들 간의 거리감을 더 넓힐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외삼촌 가족들조차 내 가족이 위주인데, 우리 엄마아빠는 내 가족이 늘 2순위인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정작 부모의 노후를 돌보는 것은 자식뿐인데 말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막연했던 존재의 가벼움을 고등학생 시절부터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후 대학 학창 시절 내내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