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늘 그렇듯 혼돈의 카오스
여전히 책상은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우기는 지경에 있다. 그 속에서 꼭 필요한 것만 가방에 대충 쑤셔 박는다.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우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손짓하는 하얀 캐리어 괴물의 속으로 정확히 쏟아붓는다. 옷장에서 속옷, 양말, 간단한 세면도구(무게를 들어보니 그리 간단하지 않다. 도대체 간단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 같은 사진으로 일주일을 도배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의 3벌, 바지 2벌을 추가로 던져둔다.
나도 알고 있다. 이 짐들조차 다 쓰지 못할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요하다고 속삭인다. 심지어 팩도 담았다. 전날 미리 싸 뒀어야 할 여행 짐은, 출발 당일 아침에야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번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패키지가 아니다.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나 혼자만의 자동차 여행이다. 그런 주제에 계획성 있는 여행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게 다 그 바이브 코딩 탓이다. 일주일 전에 시도했을 때는 남들과 똑같이 해도 잘 안된다고 낙담했는데, 동시에 3개의 프로그램을 생성하는데도 너무너무 쌩쌩하다. 그리고 70% 이상의 만족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새벽까지 그걸 하느라 여행짐 꾸리기는 뒷전이 되어 버린 탓이다.
눈이 올 것이라는 예보는 봤지만 설마 했나 보다. 집 앞은 눈이 거의 없지만 경기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이미 쉽지 않다. 내비게이션에서는 평소라면 1시간 20분 정도 예상해 줄 길이 2시간을 넘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음쓰 매일 버리라고 잔소리했는데, 집에는 음쓰카드가 없다. 아뿔싸 사무실에 놓아뒀구나. 가서 찾아다 줘야 하나? '야 너 여행 못 가'라고 경고하는 하얀 천사가 세모눈을 하며 나를 본다. '그래,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되어 있어. 가족에게도 시간과 경험을 줘야지. 알았어~ 천사야 가자!"
오랜만의 장거리 드라이브 여행이라 전날 거금을 들여 자동차 점검을 맡겼다. 자동차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나의 발이 되어 줄 차의 안전성 아닌가.
“대표님, 여행 가신다면서요? 꼼꼼하게 봐 드릴게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터리, 엔진오일, 브레이크 오일, 브레이크 패드까지 줄줄이 교체 목록에 올랐다. 이 순간 이미 내 지갑은 살짝 울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행을 잘 다녀오면, 그다음엔 교체해야 할 부품들이 또 있다고, 예상 견적이 대략 100만 원쯤 될 거라고 슬며시 덧붙인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미래의 추가 비용까지 친절하게 예고해 주는 인사를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입꼬리는 올라간다. 그래도 나는 좋다. 왜냐하면, 드디어 여행을 갈 거니까.
♬ 푸른 언덕에~ 여행을 떠나요~ 룰루랄라 음악이라도 틀까? 싶은 참에 또 아차 한다. 기름이 한 칸 밖에 없다며~ '너 어쩔래?' 라며 계기판이 비웃음이ㅋ 섞인 미소 나를 본다. 국내여행은 거의 안 해본 터라 목적지 아산까지 가는 길목에 주유소를 본 기억이 없음이 떠올랐다. 아니 사실 모른다. 급히 가까운 주유소를 검색하고 오른쪽으로 차를 돌려 빠진다. 결국 원래 가려던 고속도로를 못 가고 시내와 지방도로 돌아간다. 예상시간 30분 추가했다.
마음이 급해진다. 점심 약속시간은 지켜져야 할 텐데.. 못 지키게 될까 봐 손은 느긋하게 운전대를 잡지만 발은 달리고 있다. 새벽 2시에 잠들고 6시에 일어나서 잠이 모자라서 졸음운전 하게 될까 걱정했던 것도 무색하게 도착하는 순간까지 두 눈 부릅뜬 긴장 가득한 출발로 일 년을 기다린 혼자만의 일주일간의 자동차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늘의 생각-----------
자동차 점검은 잘했어. 근데 주유는 왜 빼먹니? 안전을 선택했지만 시간약속 안지키는 사람이 될 뻔!
생활과 일이 겹친 삶은 이제 조금씩 변화 시켜야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