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예요

초고2

by Sonia


문경 가은읍에 위치한 엘사선생님은 N잡러다. 그 중 하나가 펜션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저.. 가도 돼요?"

"언제라도 얼른 오세요~~"


1월에 받은 초대를 12월이 되어서야 실행한는 게으른 친구(10살 위아래는 친구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를 그저 따뜻한 미소(상처 하나 없을 것 같은 평온한 미소를 가진 분이다)로 맞아주셨다.

"오늘 저녁은 김치찜이니까 함께 먹어요~"

"네, 잘 먹겠습니다."

"술 한잔 할래요?"

"좋아요"


선생님의 옆지기께서 직접 담으신 하우스 와인은 동생분의 말대로 산미가 강한, 꽤 신맛 나는 와인이었다. '신의 물방울' 대사처럼 표현할 내공은 없지만, 내 입에 밎는 와인은 확실히 구분하는 정도의 까칠한 입맛의 소유자인 나는 디캔딩만 해도 맛이 날 것 같았다. 선생님이 가져온 잔을 이용해 와인반 공기반 섞으며 디캔딩 하고 다시 맛을 보니 역시 판단이 맞다. 맛있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죽이 좋았던 걸까. 난 소심대마왕이다. 그런 내가 타인의 가족 식탁에 덥썩 끼어 앉아 대화에 스며들고 있다. 나조차도 낯설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내 마음"에 충실하게 재이라는 밈에 기대어 재밌게 사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 보기로 한다.


김치찜은 양념이 세지 않은 김치로 만들어 개운하고 깔끔하다. 함께 나온 수육은 쫄깃하게 잘 삶아졌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알배추와 쌈장이다. 인근에 배추농사를 짓는 분의 밭에서 수확해 온 배추라 싱싱함은 말할 것이 없다. 직접 만든 쌈장은 몰래 퍼가고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식구들 먹는 저녁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얹은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웃었고, 옆지기 사장님은 "밥은 원래 이웃이 다 같이 둘러앉아 먹어야 제맛"이라며 낯선 손님에게 배시시 웃어주었다. 동향 사람이라고 더 반갑다며 살갑게 말을 건네는 어머님과 동생분까지, 그렇게 3일 차 저녁의 한 장면이 완성됐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엘사 선생님과 둘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만나야 할 인연은 만나지게 되는 것일까? 엘사 선생님과 둘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심사인 홈페이지 제작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앞으로 무엇을 해 보고 싶은지,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와 경험을 공유했다. 바이브코딩으로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덕분에 단단히 묶여있는 기획과 계획과 실행의 단추가 풀려갈 것 같다.


"어쩜 고기를 딱 맛나게 잘 삶았니?"라며 맛있게 드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부러웠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그리고 시작한 우리의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하나 둘 공통점에 놀라기는 다반사였다. 조금 더 어렸다면 눈물과 콧물로 휴지 반통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 속에서 오래 곰삭고 발효되어 입맛을 돋궈주는 장이 되어 버려서 인지 담담했다. 이젠 그럴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애초 이 여행을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중요도 '하'로 내려갔다. 이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린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마음 먹기도 사실은 한문장이면 된다는 것이어서 이미 해소가 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 한마디였다.
“정말 미안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