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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Feb 14. 2020

금요일 저녁, 밸런타인데이

이렇게 무료한 시간은 어디에서 왔을까?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다.

함께 할 남자 친구도 없는데 하필이면 금요일 저녁이다.  


친구는 지금 남자 친구와 영화도 보고 치킨도 먹는다고 자랑이다. 사귄 지 오래라 아무 감흥이 없다고 밸런타인데이 인지도 모르고 약속 잡은 거라고 위로하지만 나는 안 들린다. 커플링 잃어버려서 새로 하느라 싸웠다는 말이 왜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함께 TV를 보다가 재미가 없어 방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가 보는 저녁 드라마는 언제나 거기서 거기다. 그냥 내 방으로 들어와 유튜브를 보다가 브런치를 켠다. 할 일 없을 땐 글을 쓰는 브런치만 한 게 없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밸런타인데이, 지금 내 옆엔 사랑스러운 강아지 초코가 있다.  

언젠가 이 지루한 커플들의 기념일이 나에게도 설렘 가득한 날로 다가오기를 믿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기념일 따위 생각하지도 않고 지나치곤 했는데, 왜 갑자기 의미부여를 하는 걸까. 한 해가 지났다고 늙어버린 건가? 언제나 So cool하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쿨하지 못하게 외로움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학교를 졸업하면서 교류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서 그런 것 같다.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웃고 떠드는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고양이 털만 봐도 웃기다고 웃고 다녔는데 웃을 일이 많이 사라졌다. 그땐 좋은 줄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좋게 느껴진다. 정말 이상한 추억 놀음이 아닌가? ㅎㅎ 그 이상한 추억 놀음을 하려고 졸업을 하고도 공지 단톡 방을 나오지 않았다. 도움되는 내용은 없어도 학창 시절 기분을  0.5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친구들은 확실히 연락이 뜸해졌다. 취준 하고 일하고 다들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쁘다. 그걸 아니까 쉽게 전화하기도 뭐하고 만나자고 하기도 뭐하다. 뭔가 아쉬운 기분...


지금 같이 놀 친구들이 없으니 심심하다. 나는 언제나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지만, 가끔 이렇게 무료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을 견디기는 힘이 든다. 이런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강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집 초코는 옆에서 꿈뻑꿈벅 졸면서도 눈을 맞춘다. )


학창 시절, 불안한 미래가 '너는 더욱 효율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혼자 있기를 자처하곤 했다. 그 시간들이 지금의 외로움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문득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현재의 상황이 싫어서는 아니고. 그냥 지금 이 모습이 어느 시점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다.


나를 둘러싼 환경들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감정들이 모여 매  순간을 선택한다.

이전에 다른 어떤 선택을 했다면 지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똑같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을까?


금요일 저녁, 밸런타인데이 나쁘지 않지만 그다지 좋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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