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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Nov 23. 2019

우울한 날이면

나는 나를 망치는 일을 한다.

우울한 날이면

나는 나 자신을 망치는 일을 한다.


고등학교 때는 안 그랬다. 그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수학을 풀면 집중이 잘 되고 시간이 금방 지났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수학문제를 풀다보면 우울한 기분은 금방 사라졌다. 그 덕분에 그 흔한 학습지 하나 안하고도 수능에서 수리영역 3개 틀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

( 참고로 나는 그다지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아이였다. 그러니 기적일 수 밖에 )


그땐 그랬는데, 요즘은 왜 나 스스로 망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계획했던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굳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회의감이 든다. 하던 일을 놓고 침대위에 누워버린다.  

우울한 날은 왜 우울한지조차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나를 덮친다. 사실 이런 감정에 ‘우울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나는 항상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웬만큼 민망한 상황도 웃어넘겼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오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 보다 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것이다. 그 사실을 요즘에 깨닫는다. 매일 뭔가를 다짐하고 후회하는 글로 가득한 내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가끔 나 자신이 불쌍하고 느껴진다.


그 숱한 다짐의 결과가 하찮은 내 모습이라 그런건가? 아니면, 결과가 어떻든 세상은 원래 생각만큼 멋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런건가?


그냥 꿈에서 깬 내가 불쌍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꿈을 꾸려고 한다. 이 꿈은 멋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니 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겠다. 우울한 감정은 결국 마음가짐에서 오는것이다. 나는 우울하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다짐한다.


훗날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오늘의 다짐과 그 날의 다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고 미소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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