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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Jul 25. 2021

유치하다는 착각

 유치한 나의 고백

스물일곱, 유치하다고 생각해 보였던 부끄러웠던 지난날을 고백해본다.


나는 아이돌 음악, 애니메이션,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 밈, 유행하는 옷이나 액세서리 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소위 내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중독성이 강하고 재미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접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한 번 빠지면 몇 시간씩 찾아봐야 하는 성격을 알고 있기에, 더욱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나는 가끔씩 이런 이야기가 주제로 나올 때는 겉으로 함께 웃어도 속으로는 그것들을 하위문화 취급하며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고급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알아도 모르는 척, 웃겨도 안 웃긴 척 내숭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우습고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의 나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을 정해놓고 살아왔는데, 그 이상적인 모습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이런 편견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허울뿐인 '이상'에서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없었고, 어느 순간 찾아온 공허함과 무력감을 잊어보고자 가볍고 즐거운, 그리고 유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조금 더 솔직한 내 생각과 감정, 느낌, 기분을 표현하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혼자서만 웃기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농담으로 지껄이고,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면 리듬을 타기도 했다. 노래 가사를 찾아 소리 내어 부르고, 대화에 쓸데없는 라임을 넣어보면서  한 두 마디 만드는 것에 성공하면 마치 래퍼라도 된 듯 뿌듯했다. 고민 없이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소설책도 마음껏 골랐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즐거움은 아이돌 덕질을 시작한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BTS의 음악과 이야기는 큰 힘이 되었고 울림이 되었다. 앨범이 나오는 날과 차트 순위를 기다리며 잃어버렸던 설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알 수 없는 해방감과 즐거움이 삶에 찾아왔다. 엔도르핀이 돌고 작은 목표를 세워 이뤄 나갔을 때 나에게 줄 수 있는 보상(?)들이 늘어났다. 이런 것들이 원동력이 되며 하루를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가벼운 이야기는 긴장감을 덜어주며 쓸데없는 걱정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움을 주었다.

삶의 긍정적인 변화는 이렇게 찾아왔다. 이 시점으로 내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유치하다는 것은 솔직함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솔직해지는 만큼 표현은 쉽고 간결해진다. 단순함과 간결함, 이런 표현들이 결국 많은 사람에게 공감이 되고 유행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삶에 있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그러니 굳이 고급스러움(?)을 위해 외면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해 외면했던 것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결국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유치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드러나는 내 날것의 감정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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