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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Mar 12. 2021

비가 오는 날엔

<친애하는 사물들>, 이현승


비를 좋아합니다. 날씨에 대한 최초의 기억부터 그래왔습니다. 어릴 땐 늘 남들과는 다른 걸 좋아하고 싶단 이상한 심보가 있었고, 그래서 다들 파란하늘 그릴 때 혼자 비를 죽죽 그었습니다. 별로 예사로운 아이는 아니었어요. 여전히 비를 좋아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기호에 명분이 붙었습니다. 제 명분을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사실 별 건 아니에요. 일단 비가 오면 모든 게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는 제 기분에 맞춰서 들리곤 하는데, 기쁠 땐 타닥, 타닥 하고 리듬감을 가져서 좋아하고 슬플 땐 토닥, 토닥 하고 위로가 되는 거 같아 좋아해요. 온 세상이 젖어들어 색감이 진해지면 늘 보던 세상이 달리 보여서 좋아하고요. 눈보다 가벼워서 좋아합니다. 눈이 내릴 때면 도대체 세상이 이렇게나 무거운데 얼마나 거들려고 이만큼 무거운 게 내리나 생각이 들어 힘겹기도 합니다. 그런데 비는 그렇지 않아요. 빛 없이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크기와 무게를 가졌기에 그래도 이 정도는 내가 이겨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지나치게 개인적인 해석 아래 비를 좋아합니다.




제가 보는 비가 이렇게 다정하고 반가운 존재인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비는 특정한 존재가치를 지녔을겁니다. 특히 시와 소설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겠죠. 시인 김현은 쓰는 사람들은 평평한 일상보다 인생의 격변에 더 마음이 동한다 말합니다.(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조해진·김현) 그래서 쓰는 사람들에게 적히는 비는 늘 조금 평평한 풍경이라기보단 격변의 단서이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비에 대한 시를 들어보실래요?


분리수거된 쓰레기들 위로

비가 내린다

끼리끼리 또 함께

비를 맞고 있다


같은 시간

옥수동엔 비가 오고

압구정동엔 바람만 불듯이

똑같이 비를 맞아도

폐지들만 무거워진다


같은 일을 당해도

어쩐지 더 착잡한 축이 있다는 듯이

처마 끝의 물줄기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내리는 빗속에서

더이상 젖지 않는 것들은

이미 젖은 것들이고

젖은 것들만이

비의 무게를 알 것이다


/비의 무게, 이현승



최근 이 시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오늘의 봄비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오랜 집중호우나 장마가 아니고서야 비는 그 무게감을 알기 어려우니까요. 최근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떠올렸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서사가 크게 뒤틀리는 시점에 비가 내립니다. 기우네 가족들은 폭우를 뚫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이 사는 반지하는 이미 물이 들어찬 지 오래입니다. 수심은 계속 깊어져서 많은 게 젖다 못 해 잠겨갑니다. 인간마저도 수심 위로는 머리만 둥둥 떠 있는 그 모습에 기분 나쁜 섬찟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섬찟함은 대저택 속 박사장네 가족은 단 하나도 젖지 않았다는 걸 보면서 자꾸 심해집니다. 다음 날 기우네 가족은 대피소에 겨우 누워 있고 박사장네 가족은 개인 뒤 날이 더 좋아졌다며 속절없이 행복합니다. 비의 무게는 공평무사하질 않고 아래는 자꾸 더 젖어가고 위는 젖기까지 한참이 걸립니다. 시처럼, 비의 무게는 젖은 것들만이 알 수 있는 거겠죠. 내가 젖지 않았다고 해서 남도 그러리란 생각은 결국 젖지 않아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지난 해 여름엔 이 비의 무게를 절실히 느끼기도 했습니다. 건국 이래 최장기간 장마가 들이 닥쳤고, 약 80일간의 장마는 모든 곳에 공평무사하게 내리지 않았습니다. 학기 중에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방학이 되어 잠시 내려왔을 적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왔는데, 이번엔 그 정도가 예측 밖이었습니다. 토사가 무너지고 생명이 위협되거나 아예 잃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서워서 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그저 뉴스만 보고 있었는데, 전국방송에서는 똑같은 화면 자료 몇 개만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피해 정도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어 인터넷 신문을 뒤졌을 때도 비슷 했습니다. 모두가 수도권 지역의 코로나 이슈로 바빴고, 남부지역의 집중호우는 단신에 불과했습니다. 몇 뉴스는 영상 속 재난을 '워터파크'에 비유하며 볼 거리로 소비했습니다. 그 다음 날은 더 참혹했습니다.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여전히 재난이 남아 있는데, 뉴스엔 이에 대한 어떤 보도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재난이 가실 때까지 지방 방송사에 채널이 고정  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강남역이 침수 됐고, 모든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는 강남역 침수로 도배 됐습니다. 그 곳의 재난은 일사천리로 해결 됐고 그 모든 과정이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비의 무게>는 시였는데, 어쩌면 그저 사실 서술일 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별명이 서울공화국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비였습니다. 그 여름의 장마는 분명히 평평한 일상보단 격변의 단서였겠습니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썼는데 자꾸 슬퍼집니다. 어쩌면 비가 그렇겠죠. 얼마간은 좋다가도 비에 씻겨지는 먼지와 오물들이 눈에 보이면 결국 슬퍼지기 마련이니까요. 온 세상이 젖어 어쩔 수 없이 서 있어야만 할 때 비로소 앉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비가 아니더라도 늘 모두가 앉을 수 없음에 슬퍼지게 됩니다. 비는 그래서 좋은 정지선이에요. 덕분에 서행하며 조금 더 조심해 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얼마간 봄비가 잦겠죠. 그 봄비가 연대의 맺음끈이길 바래봅니다.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둘이 될 수도 있는 거지만, 우산은 나눠 쓰면 안전한 사람이 둘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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