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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Mar 18. 2021

아무래도 내가 책임져야겠어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문학동네

충동구매를 자주 한다. 어느 공간에 들어가서 뭘 사지않고 나오는 일이 별로 없다. 한번 들어간 가게에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갈 사온다. 책도 그렇게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화문 교보 같은 대형서점에서는 내가 사는 책 한 권은 그저 그날 매출의 수 백권 중에 한 권이겠지만, 작은 서점에선 열 권 중 한 권일 수도 있다. 손가락으로도 셈할 수 있는 범위에 내가 기록된 다는 것은 늘 책임감이 깃든다. k-장녀의 특성인 지 모르겠는데, 책임감이 들면 뭘 자꾸 사게 된다. 이 가게가 안 망하려면 내가 뭔갈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고 그렇게 자꾸 뭘 사고, 알리고 그런 열혈 단골이 된다.

서점에서는 훼손된 책에 대한 책임을 모두 출판사에 묻는다. DP 되어 여러 사람들의 손이 타서 접히고 젖은 것일텐데도 그 훼손의 책임은 출판사와 서점이 지게 되는 것이다. 대형서점에서만큼은 사람들이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높으신 분의 뜻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인데, 나는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 좀 찢어졌다고 안에 내용물이 부서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교환까지 해 가며 종이를 괴롭혀야 하나. 책이 망가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지만, 그 개인의 기호가 영세기업의 손해와 종이 낭비로 이어진다는 걸 생각한다면 좀처럼 좋게 보긴 어렵다.

나는 책을 막 읽는 편이다. 친구들에게 자주 빌려주지만 빌려줄 때 늘 당부한다. 엄청난 인덱스와 밑줄의 향연이 있을 거라고, 그래도 괜찮겠냐고. 그럴만도 한 게, 문장 단위로 새기며 읽는 소설을 좋아하고 교양 서적 같은 경우엔 이해가 될 때까지 줄을 긋고 뭘 써야 해서 어쩔 수가 없다. 내 독서는 요란하고 종이는 때가 탄다. 그래서 새 책의 흠집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뭐가 찍혀서 와도 내가 산건 외형이 아니라 활자니까 그냥 두곤 한다.

지난 해 여름 <아몬드>를 살 때가 떠오른다. 유독 영화를 지망하는 친구들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책이었다. 그래서 유명한 영화 감독이 쓴 책이거나 영화화가 된 책인 줄 알았으나, 그냥 청소년 소설이었다. 그게 참 묘하단 생각을 하던 차에 광화문 교보에 들렀다. 원래는 다른 책을 사러 갔는데, 한 벽면이 온통 <아몬드>로 둘러쌓여 있는 걸 보고서는 그냥 그 벽면의 가장 중앙의 칸에 있는, 그러니까 제일 손에 닿기 쉬운 <아몬드>를 집어 들었다. 베스트셀러 란 제일 앞에 놓여 있는 책 답게 여기 저기가 닳고 구겨져 있었다. 잠깐 서서 읽다가 다리가 아파와서 바로 옆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순식간에 마지막 장을 앞두고 있더라. 이미 손에 들린 책이 내 체온으로 알맞게 따뜻해졌고 그 쯤 되니 그냥 사야겠다 생각했다. 그 온도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딱 보기에도 헐어있는 책을 보고는 친구가 다른 거 가져오라 권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얼마 못 가 파쇄 될 거 같다고 그냥 사 버렸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줄을 그으며 훑어 읽었다. 손이 간 만큼 길이 드는 게 좋다. 어린왕자의 말처럼 사랑은 길들이는 게 아닐까. 장미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 나에게 길들여진 장미는 단 하나이고, 그러면 그건 나는 장미의 인간 물뿌리개로, 장미는 나의 꽃으로 상호 조건화된다. 그런 조건의 이름을 사랑으로 지어둔 것 같다. 아무래도 내게 사랑은 책임과 유의어인 듯 하다.

사랑과 책임 두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뚜렷한 책이 있다. 오늘은 발췌 대신 소개를 해보려 한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는 김하나, 이슬아, 김금희, 최은영, 백수린, 백세희, 이석원, 임진아, 김동영 총 9명의 작가가 애견인으로써 쓴 에세이 책이다. 이 책의 수익금은 유기와 학대로부터 구조된 동물들의 삶을 준비하는 토털 반려동물 복지센터 '카라 더봄센터'에 기부가 된다. 이 기부에 동참한 9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책임감이 옮아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언젠가 이 책에 대한 글을 꼭 남기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쓰게 되어 다행이다. 세상엔 아주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겠지만, 나보다 나약하고 말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에는 반드시 책임이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길 잃은 동물들이 아주 없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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