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르게이 Aug 20. 2017

900일의 세계여행 그리고 한국

30살이 되기까지 3달 남은 시점의 나의 세상.

29살. 나의 세상은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 하기도 벅찰 만큼 거대하고 무거운 바퀴들이 내 옆을 짙밟고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바퀴가 지나고 나면 가야 할 길이 좁아지고 울퉁불퉁 튀어나왔다.

 

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하루 평균 10달러로 3년을 살아온 ‘나’와

한국에서 월 200,300만원씩 3년을 살아온 ‘그들’과의 괴리감은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다가왔다.


명품 가방을 사거나,  차를 사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사면 그만인 듯 보였다. 잡동산이들이 쌓이면 10평에서 18평으로, 월세에서 전세로 집을 옮겼다. 그리고 서울 중심지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시간이 없었지만, 돈이 넘쳤다. (그중 몇은 허세가 아닌 정말로 돈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음식 가격을 묻지 않고 주문했고, 버스 대신 택시, 택시 대신 대리를 불렀다.


회사를 다니며 주말엔 취미 생활 또는 연애를 하고, 충분한 돈을 벌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더랬다.

멋진 차를 타고 마중 나오는 모습이 때론 내심 부러웠다.


모두들 나와 같이 대학을 다니거나 술을 마시며 꼬장 부리던 친구 놈들이 말이다.


여행 전에 무슨 여행이냐며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있고, 놀 때가 따로 있다며, 20대에는 끝없이 공부하고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틀린 말도 옳은 말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살기 좋은 삶의 방향이 그러한 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내 친구들은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그 결과 내가 다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친구들은 저어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저어 멀리 나아가 차를 타고 있었고, 나는 조리를 신고 기타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한동안 길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즘은 뭐가 돈이 되고, 언제 사업을 시작할 거고, 누가 뭘 했는데 지금 월 1000은 번다 고하고, 4차 산업은 딥러닝이고, 그것엔 거품이 있고 등 결국 돈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돈이 넘치는데도 사람들은 돈에 대한 고민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았다. 난 그 사이에서 할 말을 잃었다. 어쩔 수 없이 '돈'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됐다.


15분 단위로 예약이 잡혀있는 병원에서 같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받으려 애썼고, 프로그래밍을 하며 사업을 하기 위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빚지기도 했다.


모두가 돈 욕심에 눈이 멀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결국 일과 성공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을 하며 통신대 경영 수업을 듣고, 회사를 다니면서 중국어 학원 수업을 수강했다.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동 떨어져 마치 들소들의 경쟁을 지켜보는 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 경쟁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말릴 수도 없었다. 나 스스로 사자라고 착각하는 놀기 좋아하는 원숭이 인지도 모른다.


진짜 사자들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궤도에 올라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쓰고 남을 정도의 돈과 적당한 업무시간, 서로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취미 생활을 즐겼다. 생활에 불편함은 돈으로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참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 보였다.

한국에 오기 전

여행을 할 때에는 하루하루 벅차도록 행복을 느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하고 싶은 것이 더 생기고, 가고 싶은 곳이 더 생기고, 보고 싶은 것이 더 생겼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의 삶은 매일이 새롭고 만족스럽고 복됐다.


'우리는 다행히도 인도에 사는 많은 아이들처럼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거나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다행히도 아랍계 여인들처럼 한 번도 그 예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집에서 집안일만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것은 참 다행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충분히 행복할 준비가 된 세상에서 행복을 갈망하며 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돈'과 '성공'을 한시도 피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것 없이 행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그 세상 밖에서 돈 없이 여행하는 것 보다도 더 어려워 보였다. 내가 좀 더 편한 삶을 살아왔다고 느낄 정도로 그랬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기 합리화를 했다. 저녁에 게임하기보단 열심히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 돼야 했고, 24살부터 사업을 시작해 밤낮없이 5년을 살아오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돼야만 했다. 그래야 불행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을(보일) 수 있었다.


내가 행복을 느끼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어 보였다. 경쟁을 피해 들소 무리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나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행복할 방법은 능력이 갖추어진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내가 하루 아침에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지금도) 입버릇처럼 했던 인사가 있다.

‘행복해~’,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는 항상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 인사말처럼 일상적인 행복은 우리 의지에 달린 것 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그랬으면 좋겠다.

스스로 행복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3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참 설레고 쓰고 달고 떫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상대를 고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