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첫 번째 이야기
포틀랜드는 내가 가고 싶었던 도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포틀랜드'라는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수도 있고, 어느 날 sns 따위를 통해 포틀랜드에 대한 무언가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포틀랜드는 내 의사가 많이 반영된 일정이었다.
힙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곳답게 포틀랜드는 내세울 것이 굉장히 많다. 커피 맥주 장미 여러 콘셉트의 식당들과 아이코닉한 가게들. 나이키의 발상지이자 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독립서점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포틀랜드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본 포틀랜드의 첫인상은 내 기대만 못했다는 것이다.
포틀랜드는 비가 자주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밴쿠버부터 포틀랜드까지.. 이놈의 하늘은 나를 돕질 않는다.
그 덕에 포틀랜드의 맑은 하늘은 보지 못했다. 도착한 그날도 회색 먹구름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의 첫인상은 건물도 하늘도 온통 회색빛이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 개인실을 예약했다. 더블베드와 냉장고, 책상, 커피 포드가 하나 있는 방이었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고 양 옆에 방을 끼고 있었는데 왼쪽 방은 어린 나이로 추정되는 동양계 미국인들이 묵고 있었다. 방에 도착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던지라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시애틀에서부터 들고 온 남은 땅콩잼을 빵에 발라 먹었다. 굽지도 못한 빵은 펏펏한데 그 위에 땅콩잼까지 바르니 먹을 때마다 입안이 마르는 것 같았다. J는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 처량해 보인다며 웃더니 동영상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 모습을 꼭 s네 어머님이 보시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빵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우린 둘 다 침대에 엎어졌다. 먼 거리 이동을 한 것도 아닌데 도시를 옮기는 날은 언제나 피곤했다. 어느새 옆에선 잠든 J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들듯한 정신으로 누워서 핸드폰을 만졌다.
겨울의 미국은 해가 빨리 진다.
7시가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미 해가 져 바깥은 깜깜한 밤이 되었다. 저녁은 숙소 10분 거리에 있는 일식집에서 라멘을 먹기로 했다.
Mirakutei라는 가게였다.
숙소부터 식당까지의 길은 인적이 드물었고 조용하며 스산했다. 생각해보면 포틀랜드의 공기는 항상 스산했던 것 같다.
"힙의 도시라더니.. 힙이 아니라 귀신 나올 것 같아"
나는 겁을 내며 걸어갔다.
문을 연 가게가 많지 않았고 사람을 찾기도 힘든 동네였다.
Mirakutei는 일식집이라기엔 너무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우린 각자 라멘을 시켰다. 이곳의 라멘은 15달러나 했는데, 나모르는 새에 라멘이 고급 음식이 된 모양이었다..
어쨌든 비싼 라멘은 비싼 값을 했다. 적당히 숙소 근처에 별점 좋은 집을 찾은 건데 의외의 맛집이었다. 평소에 먹던 라멘보다 재료가 더 다양하고 많이 들어간 것 같았다. 돈이 아깝지 않은 식사였다. 이미 알아본 라멘 맛집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포틀랜드의 명물은 도넛이 아니라 라멘이었나 보다.
우리는 소소하게 팁을 $2 정도 적고 나왔다. 팁까지 하면 거의 20000원돈의 라멘을 먹은 셈이었다. 홍대 맛집에서 먹었으면 얼마나 호화롭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인지...
어쨌든 만족스러운 식사 뒤, 돌아가는 길은 조금 덜 무서웠다. 그래도 한번 지나간 길이라고 그새 적응한 모양이었다.
조용했던 숙소는 옆방 학생들이 왔는지 시끌벅적해졌다. 말이 시끌벅적이지 사실 소음공해 수준이었다. 서울에서도 못 느낀 층간소음을 이렇게 느껴보다니ㅎㅎ
포틀랜드의 첫날은 라멘을 먹으며 조금 허무하게 지나갔다.
트렌디한 상점들이 깔려있고 나이키 자전거를 탄 힙스터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감성적인 소도시인 줄 알았더니 꼭 사람 없는 이태원 같았던 포틀랜드의 첫인상.
이 첫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