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사람에 관하여
자그마치 14일. 새로운 손님을 맞는 데 걸린 시간.
딱 한 번 본 그 여자를 생각한다. 내가 트램 안에 있을 때 그저 길에 서 있었을 뿐인 여자. 듬뿍 웃을 줄 안다는 이유로 나의 시선을 전부 가로챈 사람. 그 여자를 생각하면 그곳을 둘러싼 세계의 웃음까지 딸려온 다. 궂은 날씨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선 자리를 꼿꼿이 비추던 사람들.
아무런 근심 없이, 어떠한 일말의 찝찝함도 없이 개운하게 웃어본 적 있는가. 그러니까 친구들이랑 꺽꺽 대 면서 박장대소하는 것 말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웃음 말이다. 나의 웃는 모습 을 생각하면 아주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누가 매번 찍어서 보여줬으면 좋겠다. 네 웃음이 얼마나 작위적인 지 아냐고. 아프게 보여주기라도 한다면 좋을 텐데.
어떤 표정으로 스물 여섯 해를 건너왔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 살았으면 제대로 웃을 줄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연스러움이라는 상태가 그립다. 그럴 때마다 여행의 기억을 꺼낸다. 너무나도 확실한 과거라서 드 러낼수록 현재만 뿌예지는 고통을 감수하고서. 여행하는 동안 나의 얼굴은 무디었다. 조각하지 않았다. 애쓰 지 않았다. 자주 피곤해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거꾸로 웃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그런 사람만 있었다. 억지로 웃지 않는 사람들. 웃고 싶을 때 듬뿍 웃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복을 들여다보면서 아주 조금 따라해보았다. 그 거리에 함께 서 있는 동안엔 나도 그런 사람 인 것처럼 굴었다. 그러다 보면 그 얼굴들을 닮아가는 것도 같았다.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일 것 같은 눈이 내린다. 지구가 미쳐서 3월에도 눈이 올지 모르지만. 아무리 적은 비 나 눈이 와도 나는 우산을 쓴다. 조금의 축축함도 허용할 수 없어서, 작은 틈도 허용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 다. 낡은 자동 우산을 펼칠 때마다 허리가 뻣뻣해진다.
동유럽 길바닥에서 스쳐간 그 여자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내가 목격한 낭만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결국은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여 뿌예졌을까. 아주 조금은 그랬으면 좋겠고, 아주 많이는 그러 지 않았으면. 해가 뜨지 않는 도시에서도 충분한 빛을 지닌 사람들. 다시 그곳에 닿을 땐 내게도 비슷한 빛 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아직까지도 사랑을 하게 만드는 그 여자처럼.
자그마치 23일. 새로운 글을 맞는 데 걸린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