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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Aug 13. 2024

그럼에도 끝이 있다는 걸 안다면

차곡차곡 오르다 보니 끝이 보였다. 사실 올라가기 전부터 끝나는 지점만 보고 있었다. 과정이 묘미라는 걸 알면서도.


클라이밍 첫째 날, 떨어지는 법과 오르는 법을 배웠다. 발밑에 걸리는 게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건 두쪽 모두 동일했다. 그리고 아주 신중할 것. 아무 돌이나 밟고 마구잡이로 오르내리는 줄 알았더니 클라이밍도 다분히 전략 싸움이었다. 알아서 길을 찾아야 하고, 아무리 오르기 전에 계획해도 막상 돌을 밟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삶과 닮았다. 오르기 전에 멀리서 관망하며 길을 찾는 과정을 ‘문제 풀이’라고 불렀다. 처음으로 내게 맞는 운동을 찾은 기분이었다.


클라이밍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운동을 해야 했고, 마침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클라이밍장이 있었다. 일명 암장이라고도 부른다. 혼자 강습을 받기는 심심할 것 같아 미리 연습하는 느낌으로 본가에서 남자친구와 강습을 받기로 했다. 마침 토요일을 보낼 만한 놀거리를 찾던 중이었다. 오빠는 분명 힘들 것 같다고 말했지만 가서는 나보다 잘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는 운동에 있어서 ‘일단 하고 보는 정신’이 탁월하다. 아무리 떨어지고 실패해도 일단은 오른다. 하다 보면 길이 찾아진다.


반면 나는 운동에 있어 기본 태도가 조심스럽다. 삶의 선택에 있어서는 그렇게 턱턱 결정을 내리고 어쩌면 충동적으로까지 보이는데, 처음 하는 운동처럼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으면 망설이게 된다. 클라이밍도 정상에 오르려면 아무리 길을 잃더라도 일단은 올라타야 하는데, 처음부터 잘하고 싶으니까 시작하지 못하고 겉에서 맴돌았다. 그 사이 오빠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아들을 놀이터에 보낸 엄마가 된 심정으로 일단 커피부터 사 오기로 했다.


그와 함께 건강한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은 좋았다. 어쩐지 나보다 더 재밌어하는 오빠를 보니 흡족했다. 처음 강습을 받을 때 제대로 배워놔야 한다는 생각에 강사님 말에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는 간결한 몇 마디 말로도 우리를 클라이밍의 세계로 인도했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도 척척 올라가며 시범을 보이는 그의 프로페셔널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 번째 클라이밍 강습은 사무실 근처에서 혼자 받았다. 어쩐지 대학 동아리 같은 느낌이 나서 시작부터 조금 민망했다. 평일 저녁임에도 자리가 없었고, 그야말로 발 디딜 돌이 없어서 자주 쭈뼛거렸다. 두 번째 강습에서는 떨어지는 법에 대해 훠얼씬 많이 배웠다. 실제로 다섯 번 정도 떨어지는 연습도 해 봤다. 클라이밍도 팔이 아니라 다리로 오르는 것인데, 그런 요령을 많이 배웠다. 그러나 자유 시간이 주어지자 금세 꿀 먹은 벙어리, 닭 쫓던 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되어 다시 길을 잃고 서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벽을 타는 행위가 아니었다. 암장 매너라면서 정상에 오른 사람에게 ‘나이스~’ 하고 호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색했지만 작은 목소리로 나이수~ 를 외치며 조기축구회 느낌을 냈다. 대학교 댄스 동아리에 다시 들어간 느낌이었다. 신입생들에게 댄스 신고식을 시키던 그 분위기, 서로에게 호응하며 탄성을 내지르던 그날이 숙취처럼 떠올랐다. 다시 익숙한 청주의 그곳으로, 남자친구 곁으로, 사람 없는 돌멩이들 사이로 돌아가고 싶었다. 청주에서는 고인물 어른들이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조언을 주셨는데… 나는 요란법석한 호응이 아니라 들어갈 틈, 조용한 응원이 필요할 뿐이었다.


다행히 두 번째 클라이밍장에도 파트너가 있었다. 나와 함께 강습을 받은 모녀. 두 여자 덕분에 조금 덜 외롭게 쭈뼛거렸다. 겁 없는 학생인 듯한 딸은 고수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돌을 밟았고, 팔을 꼬아가며 다리를 벌려가며 한계를 깨부쉈다. 아마 그가 기억하는 그날의 풍경은 나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어머니는 딸에게 어머니다운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네가 그걸 한다고?’ 등등 조언과 참견 사이를 넘나들며 딸의 주변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자신이 벽을 탈 때는 혼자 힘으로 해 보고 싶다고 조용히 올라갔다 조용히 내려오셨다. 딸은 어머니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았는데, 아무쪼록 두 사람이 여전히 함께 운동하기를 바란다.


나도 아직 세 번째 클라이밍은 계획이 없지만, 만약 간다고 해도 사무실 근처로는 가지 않을 듯하다. 학기말의 전학생처럼,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신입 사원처럼, 교회에 처음 온 새신자처럼. 처음의 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 생경함이 온몸에 새겨지는 기분이다. 결국은 어제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클라이밍이 아니면 폴댄스나 필라테스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무료 체험을 갔다가 글쎄 호랑이 강사님께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힘들어 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그의 기세가 마음에 들었다. 필라테스 강사지만 PT 강사처럼 입고 와 반려 비숑을 마음껏 풀어놓는 것도. 그 자유와 통제의 균형이 완벽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클라이밍장을 찾을 거라는 걸 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다시 서핑을 하고 싶은 마음처럼.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마음을 만든다는 모두의 간증을 믿어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도 이 분야의 주류에 속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일과 사람과 교회 말고도 진정한 재미와 취미를 찾는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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