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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Sep 03. 2024

울렁이는 게 데자뷰같아

여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모두 방심했다.



한여름에도 들깨 수제비나 국밥만 먹다가 어쩐지 국물 없는 깔끔한 식사가 땡겨 초밥집을 찾았다. 매번 땡기는 점심 메뉴 루틴이 있다. 수제비 -> 국밥 -> 돈까스김치나베 -> 버거 -> 초밥 -> 마라탕. 물론 이 본능을 성실히 따르지는 않는다. 살만 찌지 않는다면 누구보다 착실히 지킬 것이다.


자주 가는 초밥집을 찾았다. 갈 때마다 시끌벅적한 체인점이다. 어쩐지 직장인이 절반, 직원이 절반 같다. 얇은 헤드셋을 나눠 낀 직원들이 행렬을 갖추고 각종 엔트리와 식사와 후식을 대령한다. 신속하고 리듬감 있게. 초밥을 나르는 직원들에겐 표정이 없지만, 초밥을 받는 직장인에겐 그제야 생기가 돈다. 오전의 사무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운이다.


여느 때와 같이 혼자. 미리 다운 받은 드라마를 보면서 초밥을 클리어했다. 요즘 식사를 너무 빨리 하는 것 같아 나름 천천히. 먹고 천천히. 일어나서 커피를 손에 딱 쥐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복귀하기까지 쉬지 않고 흘러왔다. 리듬감을 놓치지 않고선.


오후 세시쯤 되었나, 평소와 달리 졸음 대신 구토감이 밀려온다. 왜지? 아침에 삼킨 감기약이 잘못됐나. 분명 식후에 먹으라고 해서 빵까지 야무지게 먹었는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독한 피부과 약을 방심하고선 빈속에 먹었다가 게워낸 경험이. 어쩐지 울렁이는 게 데자뷰 같다.


결국 참을 수 없어 두 번이나 토를 하고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대표님께 전화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내 눈물은 원래 흔하다. 대표님, 제가 토를 했는데 조퇴를 (흑) 해야 할 것 같아요. (헉) 상태가 너무 (흑) 안 좋아서요. (헉) 죄송합니다... 보통 이 정도로 우는 사람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이 꽤 많다.



떨리는 손으로 택시를 불러 잽싸게 나갔다. 혹시 몰라 단단하고 튼튼한 종이컵과 물티슈를 몇장 뽑아서 가방에 쑤셔 넣었다. 택시로 30분, 버스로 50분.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나. 택시 창문을 살짝 열어서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의 찬기를 느끼고 있는데 (감성에 젖은 게 아니라 닦을 힘도 없었다.) 택시가 자꾸 앞뒤로 덜컹거렸다.


다시 한번 울렁임을 참을 수 없어졌다. 기사님께 속이 너무 안 좋다고 말씀을 드리고 방법을 고민하는데 먼저 어떻게 해 드릴까요, 물어보셨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내려서 화장실을 찾아야 할지 그냥 독기로 버텨야 할지. 다행히 명쾌한 해답을 주셨다. 택시에서 토하면 10만 원이에요. 바로 카드를 내밀었다. 감사하게도 문을 열고 내린 곳에 새 약국과 오래된 병원이 보였고, 영광스럽게도 화장실이 열려 있었다.


열린 화장실은 국가적 복지다. 거기서 식은땀이 날 만큼 반복적으로 토를 하다 보니 탈수 증세가 왔다. 살짝 어지러웠다. 이대로는 집으로도 못 가고 회사로도 못 간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어차피 구급차 타도 토할 텐데. 대신 남자친구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2시간 후에 그가 날 구원해주길 기다리면서 우선은 바로 위에 있는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낡고 오래된 병원이었지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최선을 따질 때가 아니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역시 눈물의 찬기를 느끼며 접수를 하고 곧바로 진료실로 흘러들어갔다. 다른 대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성경을 보고 계셨다. 내가 들어가 앉기 전까지는 계속 같은 자세로 성경을 보셨다. 나는 여전히 울음이 묻은 채로 제발 토를 멈추게 해 달라고 애원했고,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몇 가지를 확인한 후에 바로 처방전을 내려 주셨다.


내려가 약을 받기도 전에 다시 몇 번이고 토를 한 후에야 약을 먹었다. 속에 있는 걸 다 비워낸 것 같은데도 계속 뭐가 나온다는 게 이상했다. 남자친구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반. 그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겠지? 살면서 처음 해 본 걱정인데 진심이었다. 병원에 다시 들어가 토가 멈추지 않아 잠시 앉아있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처음엔 관심도 없던 간호사님이 내 상태를 보더니 점점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몰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수액을 맞아 보라고 하셨다. 계속 토하면 탈수가 와요. 그런가요. 혹시 수액을 맞다가 화장실을 가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해 주겠다는 간호사님의 말씀을 듣고 인생 첫 수액을 꽂았다. 바늘을 꽂는 게 꽤 아플 줄 알았는데 간호사님의 요령 덕분인지, 너무도 강렬한 고통에 묻혀서인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바늘을 꽂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잠에 빠져 들었다. 간호사님이 주신 미니 쓰레기봉투를 꼬옥 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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