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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Sep 10. 2024

일렁이는 게 데자뷰같아

수액을 맞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 웅성이고 있었다. 환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건강한 손님이 의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계셨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순간 모든 일이 꿈인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린 지 1분쯤 되었나, 현실이 다시 붕괴되기 시작했다. 익숙한 화장실로 쏟아지듯 밀려 나갔다. 그땐 몰랐지만 이번이 마지막 구토였다.


그럼에도 잠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반쯤 죽은 상태로 누워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아가씨는 수액 다 맞았어?' 선생님들 퇴근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내 구토도 왠지 끝난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자친구가 거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신발을 신었다. 수액을 추천해주신 간호사님께 진실한 감사를 드리며 계산하는데, 의사 선생님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아까는 나 대신 성경책을 보셨던 그 선생님이다.


'진단서 안 필요해요?' 초밥집에 식중독임을 알리려면 서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을 묻는 선생님의 얼굴에 염려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초밥집에 따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몇 시간 전의 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진단서는 괜찮아요. 별로 따지고 싶지 않아서요. 축 늘어져 대답하는 내게 성급한 감탄이 따라 붙었다. '어이구... 참 착하네. 그렇게 힘들었는데.'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병원을 뒤로 한 채 오빠 차에 안착했다. 역시나 문을 열고 오빠를 부르는 동시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꺼이꺼이 울면서, 그러나 울렁이지는 않은 채로. 가는 길에 두 번이나 멈춰서 아래로 쏟아지는 식중독의 여파를 감당해야 했지만 괜찮았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건사해줄 지원군이 생겼으니까. 나를 지킬 책임을 그에게 저항 없이 양도했다. 지금은 그저 의자를 젖히고 뒤로 눕기만 하면 되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필이면 상한 초밥을 먹은 일도, 택시를 탔다가 내렸는데 바로 앞이 병원인 데다가 화장실이 열려 있었단 사실도, 오빠가 평소보다 2시간 일찍 퇴근해 나를 데리러 올 수 있었던 것도. 마침, 우연히, 웬일로 같은 수식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섭리였다.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겹겹이 쌓이자 부정할 수 없는 인도하심이 보였다. 지금까지 항상 나는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음식을 넣자마자 쏟아져나왔다. 그럼에도 속에 남은 게 하나도 없어 뭐라도 먹어야 했다. 물과 죽과 잠을 겨우 쑤셔 넣었다. 반쯤 죽어가는 나를 위해 아빠는 사골을 데워주고 책상을 올려주고 남은 그릇을 치워 주었다. 오빠의 손에서 아빠의 손으로, 어쩌면 아빠의 손에서 오빠의 손으로. 다시 옮겨져 보살핌을 받기 시작했다. 요청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책임지는 사랑이었다.


종일 누워 자고 비우고 먹기를 반복한 후에야 나는 살아났다. 다시 이전과 같은 일상의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유튜브를 보고, 핸드폰을 하고, 책을 보고, 연락을 하는 연결된 인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전날 '토를 두번 했다'에서 연락이 멈춘 친구들은 24시간 사이에 내가 죽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출근길에 전화를 걸어 내 생사를 확인했다. 얼마 후에는 대표님이 전화하셔서 괜찮으시냐고 극진히 물어보셨다. 그에게도 '제가 토를 했는데요...'에서 소식이 끊겨 있던 참이다.


초밥집의 이름만 들어도 죽을 것 같던 24시간 동안 무수한 사랑과 관심과 걱정을 받았다. 나 대신 나를 걱정하게 둬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전국 어딘가에서 나를 걱정하고 있을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졌다. 모두가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유럽에서도 기억하려 노력했던 그 마음들, 그 성실한 사랑에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일렁이는 마음이 데자뷰 같다. 사랑은 질문과 반복으로 깊어지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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