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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Sep 23. 2024

찬양을 찬양하지 않도록

교회 리더들과 위러브 집회를 가기로 했다. 한달 전부터 예정된 스케줄! 수련회 이후 한 달 만의 리트릿(retreat)! 가장 시험에 들 만한 때, 계획적으로 한번 채워져보자!


티켓을 너무 열정적으로 구한 나머지 리더들만 아니라 가고 싶은 사람 스무 명 정도가 모여 함께 가게 되었다. 오히려 좋다. 때마침 오늘은 참장(모임장) 모임도 없고, 찬양팀 연습도 없는 역사적인 날이다. 토요일 저녁은 본래 교회 일정으로 꽉꽉 차 있는 나였다. 토~일 약속은 물론이고 금~토 약속마저도 어려웠던 날들... 오늘은 연습 대신 집회다.



평소 위러브 찬양 중에 가장 좋아했던 건 "낮은 곳으로"나 "그리운 예루살렘"이었다. 특히 "낮은 곳으로"는전부터 많이 들었는데, 요즘에서야 그 가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섬김에 대해 진짜 생각하게 되어서일까. 우리의 섬김이 더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말이 심장을 쿵쿵 쳤다. 더 편한 곳, 더 높은 곳을 향했던 마음을 낮춰라... 낮아져라... 예수님이 더 낮은 곳으로 오셨던 것처럼 그 사랑을 닮기를 구하고 있다.


"그리운 예루살렘"은 솔직히 메시지보다 멜로디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이것뿐만 아니라 집회에서 가사를 들어 보니 새로운 찬양들이 많았다. 반성한다. 찬양은 멜로디가 아니라 메시지라고 그렇게 되뇌었으면서도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에 반응했고,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가사를 보며 내가 직접 찬양을 해 보니 그제야 인정이 됐다. 나 이 찬양 잘 모르는 구나...


집회는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서브웨이를 먹다가 입장 시간보다 늦어버린 우리는 2층에 앉게 됐다. 아쉽게도 2층은 점핑이 불가했다. 뛰면서 찬양하고 싶었는데 뛰지 않는다고 찬양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아쉬운 대로 무릎으로 펌핑만 하기로 했다. 오히려 몸을 쓰지 않으니 가사에 더 집중하고 내 찬양을 할 수 있었다. 약 30분 정도 찬양하고 5분 정도 메시지를 듣고, 다시 긴 찬양, 짧은 메시지, 그리고 긴 찬양으로 마무리되었다. 2시간 반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듣고 부르고 기도하고 느끼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살짝 몽롱해졌다. 어쩐지 꿈같기도 하고...



이번 집회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부끄러움이었다. 요즘 찬양할 때마다 간절히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실한' 찬양을 하게 해주시라... '거짓이 없는' 찬양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는 바람이기도 하다. 나의 부족한 실력이나 사람들의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찬양을 드리고 싶었다. 찬양 인도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 바람은 더욱 굳건해졌다. 인도자의 자리에 서니 자꾸만 회중들의 얼굴이 밟히고, 우리 찬양 팀원들의 시선이 의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너무나도 '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 받는 인도자, 찬양 팀장, 예배자가 되고 싶었다. 그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번 집회에서도 찬양하는 '나'를 찬양하게 될까 봐, 예배 자체를 찬양하게 될까 봐 계속해서 낮아지게 해 달라고 구했다. 1부에서는 위러브의 찬양을 라이브로 듣고 있다는 데 감격했다. 그러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부터는 중간중간 찬양을 멈추고 가사를 바라봤다. 때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백이 됐다.



이제 합심하여 우리 예배를 합시다 온맘으로 모든 전심을 다해 각자의 삶 멍에를 지며 흩어졌던 마음 다시 성령이 주신 한 마음으로 - 위러브, <합심> 중에서


우리 모두 예배하는 자 되어 온전히 영과 진리로 주를 예배하자 주가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고 마르지 않는 샘물로 우릴 채우시리 - 위러브, <입례> 중에서



나의 우상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집회에서 나눠주신 메시지도 우상에 관한 것이었는데, 말씀에 따라 우리가 '말 못하는 우상에 끌려가고 있음'을 주목하셨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고전 12:2)] 우리가 따르는 우상들은 보통 관계, 인정, 명예처럼 보이지 않는 가치다. 우리에게 말을 걸 수 없는 존재들. 그러나 마치 그것들을 가지면 모든 게 완성될 것 같은 믿음이 든다. 막상 가져보면 알겠지만 허상에 불과한 것인데도.


위 말씀을 바꿔 말하면 이렇게 된다고 한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로 끌려간다" 역시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너무 잘하고 싶은, 궁극적으로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께 맡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 손에 꼭 쥔 우상을 내려놓는 순간을 기다리신다. 그건 내 삶 자체일 수도, 작은 조각일 수도 있다. 내게는 인정 욕구,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그렇다. 이번 집회에서 그걸 깨닫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찬양팀이 없는 날이라도 내 영혼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찬양을 찬양하지 않고, 예배를 찬양하지 않도록. 찬양의 의미에 대해 본격적으로 귀 기울이는 요즘이다. 어쩌면 찬양은 노래하는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일지도. 그저 화려한 음악을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중심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나를 써 주시라... 계속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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