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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Oct 03. 2024

목과 코 사이가 알싸해지는 아침에

- 첫째이모는 요즘 어떻게 지내?

- 형편 없지 뭐…


오랜만에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내 엄마의 엄마, 할머니가 곁에 있는 한 나는 항시 대기중인 사랑과 슬픔을 마주해야 한다. 부모보다 먼저 떠난 딸에 대한 슬픔과 그 딸의 딸을 향한 피가 어린 사랑을 가늠한다. 나는 이따금씩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게 전부지만, 할머니는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날마다 반복 재생하며 살 것이다. 잊기를 실패하고 다시 재생… 다시 슬픔… 그리고 사랑…


이번 추석도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집에 간다거나 안 간다는 확언을 하지 않고 은근한 전화만 드렸다. 당일에 한번, 다음날에 한번,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왜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지? 평소라면 이미 받고도 남았어야 한다. 콜백을 할 줄 모르는 할머니지만 3일간 핸드폰과 떨어져있을 일이 뭐가 있다고?


결국 4일째 되는 날 할머니에게 콜백이 왔다. 얼마전 상을 치른 큰이모 남편의 49제를 다녀왔다는 연락이었다. 엄마와 할아버지에 이어, 큰이모부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의 간격은 약 10년, 할아버지와 이모부의 간격은 약 5년 정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여든이 지난 할머니에게도 매번 새롭게 가슴을 무너뜨리는 일인 것이다. 재건 후 다시 붕괴… 또 다시 붕괴… 유약하면서도 굳건한 그녀에게 가혹한 슬픔이 반복된다. 매일 재생되는 마음의 재건과 붕괴 사업을 꼼짝없이 겪어야만 한다.


할머니에게 전화하는 나는 그 사업의 아주 일부만을 경험하고 있다. 요즘 할머니의 근심이 가닿는 곳은 얼마전 남편을 잃은 첫째딸, 큰이모다. 형편 없이 지낸다는 첫째이모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기도뿐. 간절하지만 소박하고 간헐적인 기도. 내 최측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일 거듭되진 않는 기도를 드린다. 이모들은 내 기도 바운더리의 2차쯤 되는 구역에 계신다. 첫째는 원가족과 할머니, 친구들, 남자친구, 교회 사람들 정도가 있다. 두고두고 얼굴을 보거나 마음에 박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매일 기도할 수밖에 없다.


어제는 예수전도단 화요 예배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지원과 만나 피크닉을 하려던 날이다. 그와 함께 예배를 드려본 건 처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크리스천 걸로 이어져온 세월이 벌써 10년인데도!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떠날 수 없는 예배를 드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평일에도 서울에서 만나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초면인 예수전도단과 구면인 지원 사이에서 오늘의 예배를 드렸다. 역시 매일 반복되어야 할 그 예배를.


목사님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지난 수련회의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자신도 같이 못 박혔냐고 목사님이 질문하셨다. 질문이라는 형식의 깨달음이다. 내려놓음, 자기부인, 자기비움 같은 어려운 과제를 매일 수행하고 있냐고도 물으셨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 일은 매일 반복되어야 할 붕괴와 재건 사업이다. 욕심과 질투를 따르는 삶, 육신을 취하는 삶에 종지부를 찍었나?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나를 자랑하고자 하는 욕망은 끝이 없다. 한번은 무사히 인정 받고 사랑 받았다면 그 다음은? 다시 인정 받고 사랑 받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건 뚫린 독에 물을 붓는 것만큼이나 일시적인 성취다. 그와 달리 하나님의 자원은 부어도 부어도 넘쳐 흐른다. 결코 메마르지 않을 사랑이 내게 있음을 안다.


예수전도단의 찬양은, 찬양의 깊이와 본질을 상기하게 했다.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 되새기는 정성,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꾸준함, 낮아지는 겸손까지도. 인도자님을 같은 예배자로서 존경하게 됐다.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그를 통해 찬양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같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도 찬양 받기를 원하신다. 자꾸만 거부할 수 없는 찬양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찬양과 예배를 위해 매주 본가로 내려간다. 어떤 날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혹은 조금 지친다… 생각하면서 기차를 예매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게 진정한 자유일까? 쉬고 싶다고 쉬고, 놀고 싶다고 노는 게 성공한 삶인가. 조금은 꺼려지거나 막막한 일이라도 그걸 감당하면서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삶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미워해도, 질투해도, 사랑해도, 기피해도 다 그 너머에 있는 믿음이 본질이다. 누군가를 깊이 미워하고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이 그렇게 눈에 걸리고 마음에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관계의 답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살아야 한다. 그건 결코 성가신 일도 저주도 아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발견하고 신뢰하며 살아갈 자유일 뿐이다.



예수전도단 예배를 마치고 지원과 현아와 함께 숙박했다. 계획되지 않은 서울 숙박을 이틀째 하고 있다. 다행히 칫솔과 렌즈통이 가방에 있어 수월하게 잠들었다. 푸라닭 치킨을 야무지게 먹고 각자 출근길에 올랐고, 가뿐하게 올라탄 1호선 수원행 열차가 광명에서 멈춰섰다. 잘못 탄 것이다. 열차를 잘못 탄 게 너무 오랜만이라 뇌가 멈췄다. 뇌는 멈춰도 손과 발은 멈추지 않았는데, 아무리 사무실로 가는 길을 검색하면서 걸어도 절대 제시간에 당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명역에서 다시 이전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버스도 아무리 환승을 거듭해도 한시간 반쯤 걸린다고 했다. 1호선의 저주…라고 생각하며 한탄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오전 반차를 쓰기로 했다. 간만에 욕이 절로 나왔다. 가뜩이나 이번주에 휴일도 많은데다 금요일 월차까지 써놨는데… 제대로 엠지했구나, 지원에게 바로 카톡을 보냈다.


- 야… 나 망했어

- 커피라도 한 잔 해…


대표님께 송구한 마음으로 오전 반차를 쓰겠다고 연락을 드리고 대충 카페를 찾았다. 이왕 오전을 탕진하게 된 거 도넛과 함께 겪기로 했다. 지원이 커피를 머리에 입력해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크리스피에 앉아 도넛과 커피를 주문했다. 오전의 카페는 정말 오랜만인데… 이왕이면 햇빛이 드는 곳에 앉았다. 읽어야 할 참고도서가 있어 펼쳤고, 거기엔 호주에서 카페를 차린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호주의 로컬 카페 바리스타를 경험할 수 있는 한달살이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집회에서 받은 “선교지 요르단에서 한달살기” 큐알이 있었는데… 호주에서 커피를 만들며 한달을 살거나 요르단에서 선교하며 한달을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전자는 심지어 고급 호텔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물론 금액은 알 수 없지만…) 선교는 100만 원 정도로 가능하다고 한다. 언젠가 퇴사를 한다면 둘 중 하나는 꼭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부푼 마음을 일단 잠재웠다. 나는 아직 속죄하는 엠지 사원이니까.


배차 간격이 긴 열차를 기다리며 어떤 외국인의 열차 탑승을 도왔다: 그리고 배차 간격보다 긴 글을 한 편 쓰게 됐다. 쓰고 싶어도 쓰지 못했던, 정말 써야 할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글이다. 8시 반에 지원네서 나와 11시 반쯤 사무실에 당도하게 되었지만 괜찮다. 결코 우연이지 않을, 망했지만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결국엔 재건될 오전을 보냈을 뿐이니까.


성급한 가을이 지나며 하루 아침에 겨울에 가까운 날씨가 되었다. 환절기 비염보다 감기를 조심해야 할 때다. 찬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는 오늘의 아침이 결코 슬프지 않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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