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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Sep 26. 2024

침잠하는 인간

<누벨 바그: 새 물결 프로젝트> 4편

두 번째 물결: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 다정하기


  

알바하는 동안 여유와 다정을 장착하기로 했다. 장소는 카페. 실험은 이틀간. "여유와 활력 있는 삶"을 그리는 독자와 "긍정적인 태도"를 원하는 독자가 있었다. 스스로의 자리에 충실할 것, 후회할 언사를 하지 않을 것.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와 다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전율의 끝판왕인 메가커피에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평일 오전부터 점심 이후까지 일한다. 오전에는 그럭저럭 바쁘지 않게 흘러가고, 점심이 되면 직장인들이 몰아친다. 다른 카페가 그렇듯 우리 매장의 피크 타임도 12시~1시 반이다.


사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은 예민해지기 쉽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압박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속도가 생명이다. 길게 늘어선 주문에 압도되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저렴이 카페는 단체 주문도 많다. 스무디, 에이드, 커피를 가지각색으로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친절함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오전에는 분주하지 않기 때문에 여유롭고 다정하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도 웃으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줄 수 있다.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도 작은 소리로 매장 규정을 양해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 미치게 바쁠 때는 그 마음을 전부 잊는다. 웃음기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한다. 한번에 알아듣고 다시 묻지 말라는 뜻이다.


동시에 일하는 사람끼리도 난폭하고 다급해진다. 말이 생략된 자리에 표정이 끼어든다. 두 명이 일하기 때문에 합이 잘 맞아야 한다. 한 명이 커피를 맡으면 다른 한 명은 스무디와 에이드를 맡는다. 음료가 완성되면 번호를 불러서 정확히 내보내고, 밀리지 않게 설거지를 하며 얼음도 채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센스로 굴러가야 한다. 알아서 빈틈을 찾아내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실 흐름이 한 번 꼬이면 전부 꼬인다! 그래서 애초에 실수하지 않고 차근차근(그러나 빨리) 주문을 타파하는 게 중요하다. 손님에게 친절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관건은 동료에게 다정하게 구는 것이다. 바쁠 때도 한결같이 친절하게... 여유와 다정을 잊지 않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

함께 일하는 분들은 모두 애기 엄마들이다. 그래서 더 편하고 좋다. 그들의 연륜과 사교성과 강인함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한 분은 카페 프로고 한 분은 초보시다. 이번 편은 초보 언니와 일하는 날의 기록이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칭찬 한 번, 농담 한 번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칭찬은 받기도 어렵지만 주기도 민망하다. 아주 친한 사이에서는 그래도 가능한데, 오히려 애매하게 친한 사이가 칭찬하기 더 어렵다. 언니와 언니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잠자코 듣다가 용기를 내어, 언니는 진짜 좋은 엄마 같다고 말한다. 나의 첫 칭찬에 조금 당황한 언니가 묻는다. 왜요? 그거야 ...언니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죠.


언니는 무엇이든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하는 편이다. 그게 자신의 마지막 말인 것처럼. 그는 카페 일이 처음이라 조금 고단해 하지만 그럼에도 배우기 위해 애를 쓴다. 자기와 일하면서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곧잘 묻는 사람이다. 잘 인정하고 잘 칭찬하고 잘 고마워한다. 미안해 하기도 잘 한다. 처음인 마음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자다.


초반엔 언니가 느릿하고 답답해서 착잡하기도 했다. 여름 같은 성수기에는 주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기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대기 시간이 20분이라고 말해야 했다. 커피 한 잔 먹자고 20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도 20분보다는 빨리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언니가 0.5인분을 하면 내가 1.5인분을 뛰어야 했다. 언니를 원망해선 안 되지만 가끔은 원망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한 마음으로 언니를 바라본다. 대화할수록 너무 선하고 귀여웠기 때문에... 엄마로서는 단호한데 세심하고, 카페에서는 조용히 성장하시는 게 보였다. 그런 걸 혼자만 알고 싶지 않았다. 종종 피크 타임이 지나가고 난 뒤에, 오늘 되게 잘 해낸 것 같은데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 언니는 정말요…? 난 승희씨한테 너무 미안했는데, 하고 말했다. 바쁜 여운이 가시지 않아 두 얼굴 모두 분홍빛인 채로.



*

평소에 언니와 대화는 많이 했는데, 농담을 주고받은 기억은 없었다. 그만큼 마음을 열어두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은 언니에게서 새로운 냄새가 나길래 유연제를 바꿨냐고 물었다. 그는 평소 바르지 않던 바디로션을 발랐다고 했고... 나는 냄새가 훅 들어온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랬더니 언니가 냄새가 코를 치냐고 물어서 네, 냄새가 코를 탁 때리네요! 하고 받아쳤다. 오자마자 커피를 내리는 언니 표정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오늘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웃음을 잃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은 금요일 점심이었다. 유난히 따뜻했던, 12월인데도 기온이 10도를 웃돌았던 날이다. 한창 뜨거운 음료가 많이 나가던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따뜻해져서 얼음을 엄청 쓰게 됐다. 커피도 커피지만 스무디와 에이드가 많이 나간다는 뜻이다... 상황은 낫굿이다.


역시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정신이 혼미하다. 가장 바빴을 때 언니의 손이 너무 느려서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 더 움직이면서 혼자 생각한다. 언니는 언니의 속도가 있는 것뿐이다. 너무 빠르게 하려다가 실수하는 것보다는 낫다! 나의 처음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모든 처음을 애도하면서...


언니는 입출력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미리 길을 안내해주는 편이 좋다. 커피는 제가 할 테니까 스무디 먼저 맡아주세요! 그거 다음으로는 사과유자차 좀 해주세요! 샷은 다 뽑아놨으니까 마무리해서 나가주세요~ 같은 말로 그의 길을 열어둔다. 그는 맡은 바를 착착 해낸다. 그리고 알아서 다음 차례를 이어간다. 그러면 나의 소임을 다 한 것이다.


약속대로 7시간 동안 웃는 얼굴로 일했다. 그러나 그 웃음이 꼭 남을 향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다정함은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것이구나. 웃을 수 없을 때 웃는 사람이 진짜 강자였구나. 가장 바쁜 중에도 조금은 여유로울 수 있었다. 상황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지키는 편이 스스로에게도 좋다. 오랜만에 미안하거나 찝찝하지 않은 마음으로 일을 마쳤다.


퇴근 후에는 유니폼을 벗은 채, 속에 입었던 반팔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왔다. 12월에 부릴 수 없는 사치였다. 반팔을 입고 자전거를 타다니... 어쩐지 웃음이 났다. 웃음에는 여운이 있었고, 그게 지속되면 진짜 태도가 될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바람마저 춥지 않은 날에 기분 좋은 여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

지난 금요일 알바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다음 알바는 내일인데요. 내일은 프로페셔널한 언니와 함께 일할 예정입니다. 금요일 언니와는 아주 결이 다른 화요일 언니와의 기록도 기대해주세요!



발송일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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