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과 여행
매일 아침 8시 15분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8시 40분에 집을 나선다. 버스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변이 없는 한 이 루틴을 지킨다. 25분 만에 샤워하고 화장하고 옷을 입고 집을 정리하고 나가는 일도 이제는 익숙하다.
출근하자마자 양옆 두사람의 눈치를 본다. 오직 한 가지 생각 때문이다. ‘커피 사러 언제 가지…’ 보통은 편집자님이 가장 먼저 오시고, 대표님은 아주 일찍 오거나 아주 늦게 오신다. 우리 사무실엔 수도가 없어서 매일 더벤티 커피를 마신다. 처음엔 메가커피가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일 년째 마시다 보니 너무 익숙해서 아무 생각도 없다. 1,800원에 매일 커피를 마신다는 게 감사할 뿐.
얼마 전 사무실을 옮겼다. 고작 13층에서 6층으로 옮긴 것이지만 아주 느낌이 다르다. 감사하게도 13층에 질려가던 차였다. 신기하게도 딱 1평이 작아졌을 뿐인데 눈에 띄게 다르다. 덕분에 나는 통로가 아닌 벽에서 통로쪽 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내 노트북 뒤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이게 이렇게 불편한 일이었구나, 덕분에 능률이 오른 것도 같다. 딴짓을 할 새가 없다.
요즘처럼 여행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나.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로, 플레이리스트에 put your records on을 추가한 후로, 마지막 여행이 작년 6월 오사카였다는 걸 깨달은 후로. 미친 폭주 기관차처럼 매일 족히 10번은 여행에 대해 생각한다. 지독한 짝사랑이다. 결국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해석하자면 이런 뜻인 것 같다.
대학 졸업하고 글 쓰다가, 출판사 다니다가, 이제는 HR 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사실 아닌 거 아냐? 너 여행하고 싶잖아. 여행하면서 글쓰고 싶잖아. 그게 최종 목표잖아. 잊었나 본데…
여행을 고민할 새도 없이 회사에서는 새로운 책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게 우리 출판사의 특징이다. 내가 뭔가를 기획하지 않아도 꾸준히 손에 쥐어지는 원고들, 사람들, 시간들. 직접 기획한 도서를 내자고 하시는데 그러면 원래 하던 일 외에 추가로 일하는 셈이다. 그래서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오늘은 스타벅스에서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갑자기 내 행방을 물으셨다. 상당히 집요하게 물으셔서 결국 무슨 일이 있냐고 여쭤 봐야 했다. 알고 보니 새로운 책이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은 내가 맡았으면 하신다는 건데, 당장 다음주 월요일 미팅 전에 아이디어가 있으면 달라는 말씀이셨다.
그 말을 듣는 내내 역시 ’재밌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까‘를 떠올린 것 같다. 최근 참여하고 있는 워십 리더 커뮤니티에서 무슨 일을 하든 what에서 how로, 결국은 why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누구도 대신 말해줄 수 없다. 그런 질문은 오로지 자문자답으로 해결되는데,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폭풍처럼 밀려든다.
벌써 스물 일곱이다. 부정할 수 없이 이십 대 후반이 된 것이다. 점점 어른이 된다는 걸 체감하는 건 다름 아닌 무언가를 포기할 때다. 단순히 타협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얻고자 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할 때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지금도 이직이 아니라 퇴사를 하고 싶지만 당장 벌어야 할 결혼 자금이 있고, 언젠가 두고두고 떠나야 할 여행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있는 나 같은 경우.
사실 나는 여행을 갈망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정한 루틴 속에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삶 전체를 두고 볼 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성실히 루틴을 쌓아 올렸다가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를 쓴다. 익숙해지기를, 하루빨리 내 것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얻는 순간 벗어나고자 한다. 일상에서는 여행을 원하고, 막상 여행을 가면 다시 일상을 그리워한다. 이토록 모순적인 인간이라니.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른다. 물리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그냥 지금을 여행하듯 살 수는 없을까. 내가 여행에서 원하는 건 흠뻑 웃는 것, 새 눈으로 보는 것, 독립적인 내가 되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나만의 작은 루틴들을 만들고 어느 순간 그것들을 부숴야 한다. 그렇게 깨어지고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하며 스물 일곱의 내가 되었다.
여전히 대중교통에서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꾸역꾸역 말씀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피로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여행을 사모하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내가 예견할 수 없는 어느 순간에 조금씩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또 완전히 전복될 것을 안다. 이토록 예측되지 않는 삶이 무섭고 또 기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는 동안엔 아주 늙지 않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