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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있어서

퇴사일기

by 최열음

퇴사 12일차 ㅎㅎ


교회 언니랑 브런치 먹는 날. 평일 점심에 브런치 먹는 삶 너무 좋다. 이제야 진짜 백수가 된 기분. 게다가 백조들끼리 모이자는, 웃기고 깊은 교회 언니랑 함께라서 그냥 너무~


지난주엔 아침 10시면 일을 시작했는데, 오늘은 11시가 되기까지 너무너무 졸려서 알람을 다섯번은 끈 것 같다. 어젯밤에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해서 그런가… 두시 반에 잠들어서 그런가 유난히 피곤하다. 점점 백수의 루틴으로 가게 될까 살짝 두렵기도 하다. 내 본성대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지 않으려고 최대한 버티는 중.


겨우겨우 일어나서 바로 씻고 업무하고 자소서도 좀 수정했다. 낼 만한 곳들을 일주일에 한번 정도 추려서 매일 하나씩 내려고 하는 편이다. 매일 성공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빨리빨리 내야 놓치지 않을 테니까. 그래놓고 넣은 것도 자꾸 까먹는다. 언니가 데리러 올 시간까지 부랴부랴 하느라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한 것 같다.


언니랑은 교회에서 마주치자마자 바로 날을 잡았다. 언니가 평소에도 나를 좋아해주고 아껴준다는 건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큰 마음에 놀랐다. 나랑 비슷한 게 너무 많은 언니라서 더 그런가. 둘 다 교회에 마음이 크고, 목소리도 크고, 좀 왈가닥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치이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까지 똑같아……


언제쯤 사진을 잘 찍을까?;;


친구가 추천했던 가까운 브런치 카페에서 언니랑 두 시간 동안 와다다다 이야기를 쏟아냈다. 스무 살때부터 나를 믿음으로 이끌어주고 세워주고 기도해준 언니가 아직도 나를 응원하고 믿어준다는 게 벅차게 고마웠다. 어제는 이런 꿈을 꿨단다.


[언니랑 나랑 목사님이랑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하는데, 내가 풀이 죽어서 ‘제 한계는 여기까진가 봐요…’라고 말을 했다고. 그래서 목사님이랑 언니가 나한테 한계를 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셋이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우리 경배하러 가자!’고 외쳤다고 한다.]


좀 웃기기도 했는데, 덤덤하게 ‘아주 의미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아서’라고 말하는 언니를 보면서 너무 힘이 됐다. 사역에서나 일에서나 나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찬양뿐이라는 걸. 언니를 만나기 전에 김창옥 교수의 강연을 짧게 들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나오지 않는단다.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나온다며 그건 정말 다른 일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지금까지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해야 하는 일이 맞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역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한다면, 내가 재고 따지고 고민하는 모든 문제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테니까.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달란트를 의심하고 의심했다. 그게 뭐든 내 힘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내게 주신 능력과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리더라는 자리에서 어떻게든 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내 삶의 근원이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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