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당신이 보고 싶은 세상에 살아

by 최열음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책벌레였던 엄마 탓일까, 아님 내가 선물한 책의 포장지도 뜯지 않은 아빠 탓일까.


우리 집에서는 항상 맨소래담 냄새가 난다. 아빠를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아린 마음을 참아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그와의 복잡한 관계, 어려운 사랑, 불합리한 책임 등에 대해 논해왔다. 그럴 자격이 있긴 했나. 그가 무뚝뚝하고 표현에 미숙한 건 사실이지만, 내게 단단한 울타리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조롭지만 안정적이고, 빈틈이 있지만 튼튼한 것이다. 아무리 슬픈 와중에도 남의 집을 지어가며 우리 집을 들어 올린 걸 생각하면, 마지막 남은 계란말이를 내어주고 싶다.


나의 원가족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의 원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빠는 7살에 자기 아빠를 잃고, 스무 살에 자기 엄마를 잃었다. 그래서 내게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미지의 존재들이다… 그렇게 누나 둘, 여동생 하나와 남아버린 아빠는 동생이고 오빠이기 전에 남자여야 했다. 평범한 가족을 일궈보려고 마음을 다잡을 때쯤, 결혼 생활 10년 만에 엄마도 보내줘야 했고.


아물지 않은 마음을 대충 헝겊으로 돌려 막고 나와 동생을 재웠을 것이다. 무척이나 겁이 많고 틀에 박힌 나와 동생을 돌보느라 인이 박였을 거다. 돌봄이라는 건 대부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대충 짐작해서 비슷한 무언가를 우리에게 줘야 했을 거다. 그래도 아빠와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손도 안 대고 키운 것 같다고 했다. 뻣뻣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은 무지하게 강했나 보다.

가끔은 내가 누구를 그리워해야 할지 헷갈릴 때도 있다. 같이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아빠인지, 같이 살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엄마인지. 아빠는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일으킨 사람이다. 내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도, 질긴 다툼 끝에 과외비로 매월 40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주었다. 저축할 여유도 없이 한 달 벌어 한 달을 살던 때였기 때문에 나도 면목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문예창작과를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는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건축일보다 내 변덕이 더 고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와 동생, 아빠는 모두 엄마를 그리워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엄마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셋 다 각자의 슬픔만 겨우 소화할 수 있어서, 비슷한 말만 꺼내도 어색한 눈물 파티가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엄마의 납골당에 들르기는 했었는데, 우리가 하는 거라고는 걸려 있는 옛날 사진을 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기도를 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항상 엄마가 보고 싶은 세상에 산다. 지금까지 그걸 인정하지 못했지만. 엄마 없이 남들처럼 살아가려면 독한 마음이어야 할 것이므로… 최대한 멀리 했을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가혹한 세상 속에 남겨진 아빠는, 남은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다해야 했다.


그는 우리 중에 유일한 어른이자 최고 연장자라는 이유로 쉬지 않고 일했다. 설계를 하다 보면 어쩌다 일이 없을 때도 있는데, 차마 일을 멈출 수 없던 아빠는 고모의 소개로 단순 노동 작업장에 나가야 했다. 빳빳한 비닐 재질의 유니폼에, 하얀 페인트 같은 것들을 잔뜩 묻혀왔던 밤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 아마 나는 알았을 거다. 아빠를 걱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빠는 아빠의 세상에서 충분히 고군분투하고 있으므로 나는 나의 살 길을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의 흔적은 사진과 기억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건 유전자였다. 그것도 가슴이 두 개나 달린 내게 매우 취약한 유방암 유전자 말이다. 엄마가 서른 중후반 무렵에 판정을 받았으니 덩달아 나도 고위험군에 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에는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가슴에 젤을 발라 초음파를 보는 거였는데, 나는 엑스레이처럼 기계를 꼭 끌어안는 모양인 줄 알았다. 30초면 끝날 검사인 줄 알고는 남자친구에게 금방 나오겠다고 했는데... 낯선 의사 앞에서 가슴을 내놓고 차가운 젤이 덕지덕지 묻는 경험은 곤혹스러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의사가 문제없다는 소견을 가져다준다면 몇 번이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내 찌찌의 호르몬이 좀 날뛰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으니 주기적으로 검진만 받으면 된다는 소견을 받고 기뻐하는 동안, 어째서인지 나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던 남자친구는 사색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지만 안심했고 그는 내가 야속했지만 안심이 돼서, 우리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울어버렸다. 그렇게 엄마는 내 가슴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심어두었다. 엄마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조금은 원망스러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를 미워하는 구석 하나쯤은 남겨둬야 나도 그리움에만 파묻혀 살지 않을 거다. 사실 그날은 남자친구만이 아니라 아빠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마 엄마의 유전자보다 자기의 쪽이 더 강하게 역사하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던 책의 전집이, 1권은 내게 있지만 나머지는 아빠의 옷장 속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의 긴 글을 완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글을 짓고 아빠는 건물을 짓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내가 쓰는 글은 애정을 쏟는 대상을 향한다는 걸 안다. 엄마 얘기를 하려고 해도 결국은 아빠 얘기로 끝나는 걸 보면.


사실 아빠가 아니더라도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을 계속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애증과 회복에 대한 욕구가 나를 쓰게 한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생애의 첫 기억부터 오늘까지 내게는 늘 어른이었던, 아빠의 삶을 담아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평범한 가족이 되고 싶었던 작은 마음을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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