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빠가 비비고 미역국을 열 개 정도 사가지고 왔다. 고모부가 도시락으로 비비고 미역국을 가져왔는데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다는 거다. 비비고의 명성은 익히 듣지 않았는가. 꺼내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즉석식품의 등장. 우리도 가끔 덕을 봤다. 아빠는 그것들을 냉장고 한 켠에 잘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한편 냉동실 가장 안쪽에는 비비고 부대찌개가 포장된 모양대로 얼려져 있다. 수년 전에 사 왔던 것 같은데 아마 수년 후에도 그대로 있지 않을까 싶다. 그걸 먹는 날은 아마 정말 먹을 게 없거나, 내가 냉동실을 정리하겠다는 악으로 깡으로 덤벼든 걸 테다. 아무튼 유통기한도 넉넉한 데다,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는 비비고 안전 기지가 생겼다는 사실에 은근히 기뻤다.
미역국을 먹는 날에는 감사하고 간편한 마음으로 비비고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생일까지 차마 비비고를 끓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나 동생의 생일이 오면 잡채나 불고기는 없어도 최소한 감자 미역국 정도는 끓이려고 노력했다. 물론 매 생일마다 부지런히 움직였던 건 아니다. 대체로 고모의 조력을 받기도 하고, 미역국 없이 케이크 불만 끄고 외식을 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동생이 군대로 떠난 이후, 집에 남은 우리는 생일 당일보다 전후로 밥을 먹게 됐다. 게다가 이번 생일엔 비비고 미역국을 꺼내 먹으라는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출근한 아빠에게 조금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삐죽대고 있는데 비비고나 꺼내먹으라니... 아빠는 영문도 모른 채 날 선 눈빛을 받겠지만.
사실 우리 집이 식단과 행사를 여러모로 간편화하고 있지만, 안 한다기보단 엄마 없인 제대로 못하는 거다. 우리 아빠는 어버이날이나, 생일, 명절이면 그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원하는 편이라… 명절마다 ‘이제는 명절이 명절 같지가 않다’고 말하곤 한다. 정확히 무얼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 번은 우리가 어버이날을 그냥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어쩐 일로 대놓고 서운함을 표한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솔직함이 더 자주 나타나길 바랐다. 조금은 개운했달까.
명절에도 명절 분위기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 그렇지만 별다른 노력은 없는 사람. 우리가 다 같이 전이라도 부쳐야 아빠는 만족할까? 아니면 엄마 없이는 낼 수 없는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걸까. 정확히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는 몰라도, 엄마랑 전을 부쳐본 적도 없는 내 영역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분위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아빠 당신일 텐데. 이제는 명절마다 막내고모네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간단한 식사를 한지 오래다. 그리고는 각자의 방에서 쉬는 편이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추석은 아빠의 생일이자, 외할머니네를 피하는 날이기도 하다. 엄마의 엄마를 만나는 일이 더는 쉽지 않을 테니까.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가족들과 데면데면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명절마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실망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건 정말 익숙해지지 못하겠다. 할머니는 점점 가족들이 찾지 않는 집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할머니야말로 내게 생일 미역국을 차려주고 싶어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생일 때마다 자기 집으로 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할머니의 미역국은 한 솥부터 시작한다. 미리 삶아둔 양지고기를 직접 손으로 찢어서 미역국에 왕창 넣어준다. 고기를 입에도 못 대는 할머니는 한 모금도 먹을 수 없는 미역국이지만, 오직 나와 동생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그 기름기가 가득한 미역국을 한참 끓여낸다.
비비고 미역국을 꺼내 먹으라는 아빠와, 소고기 미역국을 한 솥씩 끓여주는 할머니.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나. 이번 아빠 생일에는 나도 소고기 기름이 가득한 미역국을 한번 끓여볼까. 한 팩도 아니고, 한 솥도 아닌 우리 셋이 먹을 양으로. 그리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노력을 더 써보는 편이 어떨까. 내가 그런 미역국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그런 미역국을 끓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편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