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사랑하고는 싶은데

by 최열음

정말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 내가 가진 생각은 하나였다. 아빠에 관해 쓸 것. 그건 내 마음에 진 응어리를 풀어가는 과정이자, 엄마에 대한 애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 아빠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나의 무해한 욕망이기도 하고. 아내 없이 딸 하나, 아들 하나와 사는 남자의 삶이란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울까. 나는 줄곧 이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부딪혔다. 내가 아빠를 불쌍히 여기는 만큼, 아빠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지.


최근 넷플릭스에서 ‘네버 해브 아이 에버’를 정주행 했다. 미드와 하이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국에 사는 인도인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거부할 수 없었다. 미드를 보면 내 좁은 시야와 틀을 깰 수 있어서 좋다. 내가 사는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일어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주인공인 ‘데비’는 갑작스레 아빠를 잃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철저히 외면한 채 연애와 인기에 매달린다.

나의 경우는 천천히 엄마를 잃었고(사실 엄마를 잃는 일에 천천히란 없지만), 온전히 슬퍼하기도 전에 현실이 끼어들었다. 남은 셋이 살아갈 집과, 밥과, 공허가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후로 가만히 슬픔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그건 이상한 일이다. 당시에 대한 나의 기억은 열 살짜리 여자애가 아빠와 동생보다 먼저 일어나 보온 중인 밥을 꺼내고, 고모에게 받아온 국을 데우는 것이다. 어쩌면 아빠의 기억은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나라서 내게 유리하게 기억할 테니.


다시 미드로 돌아가면 ‘데비’는 아빠를 잊고 살다가 종종 아빠의 환영과 마주친다. 슬픔은 밀물과 썰물로 오기도 하지만 파도처럼 잔잔히 밀려올 수도 있어서, 우리는 슬픔이 다가오면 그걸 온전히 느끼는 수밖에 없다는 말도 듣는다. 나 역시 외면했던 슬픔과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걸까.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실은 엄마를 말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아빠를 이해하려고 하듯이. 이런 글을 쓰는 덕분인지, 최근에는 엄마만 생각하면서 펑펑 울어본 적도 있었다. 엄마를 잃은 지 14년 만에, 마침내.


그래서 내게는 아빠를 미워하는 편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글의 제목에 아빠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들어갈까. 그건 그만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빠를 이해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아빠가 힘들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아빠를 사랑하고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나 역시 눈물 나게 힘들었다고. 엄마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 것에 대해, 어째서 오랜 시간 나 혼자 부엌을 책임졌어야 하는지. 한 끼 식사에 묻혀버린 나의 버거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더는 조용히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평생의 용기를 다해 아빠에게 고백했다. 밥 하는 마음과 달갑지 않은 기대에 대해. 너무나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수년간에 걸쳐 벌어진 일이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엄마도 누나도 아닌 존재였다. 어느 쪽이든 가성비 좋은 여성이 되었다. 아빠는 우리 집에 설탕이 있는지 물어보고, 동생은 집에 식재료가 없어서 음식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치우고 그냥 밥을 했다.


사실 누군가를 평생 미워하고 배길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사랑하려고 애쓰다 평생을 보내버리는 편이 내 쪽에 가깝다. 그러니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집에서는 투덜대는 딸이니까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계속 그런 존재일 것이다. 애교 없이 무탈하고 무던한 딸로, 어쩌면 살아오던 대로 편하게 살고 싶기도 했는데… 이제 그게 편치만은 않아졌다.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열댓 명 정도 만났다. 오래 보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만날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수십 개는 되겠지만, 그렇다고 사랑하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약을 먹을 만큼 속이 상했지만, 그럼에도 그 관계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편협한 사랑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게 부당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도 정작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그리고 명백하게 나를 사랑하는 아빠를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스무 살이 된 후로 자취를 간절히 원하던 이유도, 스물세 살이 되어서야 사춘기가 왔다는 글을 쓰던 이유도 모두 하나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아빠를 사랑하고는 싶은데, 노력하기보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앞으로 열 걸음을 나가도 부족한 일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뒤로 한 발만 물러나면 되는 일이라. 사실 아빠가 내게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얄궂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건 환경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상대가 어떻든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냥 나니까 그냥 너에게 줄 수 있는 그런 사랑, 내게는 그런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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