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다들 몇 시쯤 저녁을 차려 먹을까? 우리 집은 아빠의 퇴근 시간에 따라 유동적이다. 각자 먹고 오는 날이라면 밤늦게까지 거실 불이 켜지지 않을 것이다. 아빠와 먹을 때를 생각해 보면 바깥 일과를 마친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 6시 정도이다. 사실 다섯 시부터 레시피를 복기하는 치밀한 나다. 어쨌든 이 식사는 아빠와 함께 할 때 의미가 있으므로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춰 준비하곤 한다.
6시 반쯤 저녁을 먹는다. 모든 메뉴는 나의 주관이다. 일종의 특권인 셈이다. 아빠에게 무얼 먹고 싶은지 물어본 적은 별로 없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대충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차릴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컬리나 쿠팡으로 시켜 놓은 일주일치 식재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우리는 주로 김치찌개나 청국장 같은 진한 찌개류를 선호하는 편이다. 구수하고 다분히 한국적인, 맛은 결코 소박하지 않은 음식들.
사실 그런 밥상을 차리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다른 집처럼 알차게 구성된 정식은 아닐 테지만 찌개 하나를 끓여내고 메인 반찬 하나를 완성하면, 냉장고에 있을 아무 반찬을 꺼내 먹으면 된다. 보통 내가 찌개를 다 끓일 때쯤 아빠가 집에 들어온다. 아빠는 들어오면서 향을 맡고, 부엌을 한번 쓱 살펴본 후에 씻으러 들어간다.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살짝 묻고는. 아빠가 씻고 나올 때까지 나는 세팅을 마무리한다.
그러니 아빠는 숟가락만 들면 되는 한상차림을 받는 셈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부러운 건 사실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숟가락 젓가락까지 세팅해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지. 아마 아빠도 알 거다. 그러니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이 괜찮다는 칭찬을 한 마디씩 건네곤 한다. 이전에는 맛 평가를 하면서 있지도 않은 사기까지 팍팍 꺾었지만, 밥 차리기 어렵다고 고백한 후로는 칭찬이 한 겹씩 더해지는 중이다.
둘이 같이 볼 만한 예능을 보면서 저녁을 다 먹고 나면 7시 언저리. 밥상을 선물 받은 아빠는 설거지를 맡는다. 나는 상을 물티슈로 정리한 뒤에 커피를 마신다. 달달한 게 땡기는 날에는 믹스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이후에 할 일이 많을 때는 아메리카노를 먹기도 한다. 웬만하면 저녁에 커피를 먹어도 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빠에게도 꼭 물어본다. “아빠도 커피 마실래?”. 아빠는 주로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먹는다. 나는 같은 걸 먹어도 티 전용 머그잔을 쓴다. 뭐든 구색을 갖추고 싶은 나다…
그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나면, 나는 비어 있는 동생의 방으로 들어간다. 저녁을 먹은 후에 사실상 내 하루가 시작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든지, 때에 따라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 공부라든지. 사실 둘 다 항상 해야 한다. 워낙 계획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인지라… 저녁을 먹고 나면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할 일들이 나를 재촉한다. 그러니 방에 처박혀있는 편이 좋다.
아빠는 주로 안방 안락의자에 앉고, 커피를 마시며 스포츠를 본다. 아빠가 즐겨 보는 스포츠는 대체로 골프, 연예인이 하는 골프, 축구, 정말 가끔은 야구다. 그걸 대충 8시부터 자기 전까지 본다. 최소 네 시간을 앉아 있는 셈이다. 그러다 한 번씩 여자친구랑 전화하는 소리도 들린다. 무슨 소리가 들리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 짱 박혀있는다. 이미 내 역할을 다 했으므로... 저녁 밥상에 대한 성취감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나와 달리, 남동생은 아빠 방에 곧잘 들어가는 편이다. 거리상 내 방이 아빠 방과 훨씬 가깝지만, 동생은 이유 없이 아빠 침대에 털썩 눕는다. 사실 걔는 내 방에도 막 들어와서 누워있는다. 별 것도 안 하지만 그냥 들어와서 핸드폰을 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는 식이다. 그게 동생의 유연함이자 능력이다. 그럴 때면 걔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없는 것들을 채워주는 사이니까. 그래서 걔가 빨리 전역을 했으면 싶다가도, 낮에 혼자 집에 있는 자유를 포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생이 휴가를 나온 지금, 그리고 내가 스타벅스에서 일하게 된 지금은 우리의 새 일상이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보통 마감 근무를 마치고 저녁 11시는 돼야 집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빠와 동생은 알아서 밥을 해결하고, 아빠 방에서 축구를 보거나 거실에서 티비를 본다. 그러면 퇴근한 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원래라면 퇴근하고 와서 아빠는 방에, 나는 거실에 널브러져 있겠지만 지금은 셋이 얘기도 하고 티비도 보고 야식도 먹는다. 그러고 방에 들어가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건 분명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가족끼리 여행하거나 카페를 가거나 놀러 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재밌을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아마 그건 재미의 영역이 아니라 혈연끼리 함께하는 데서 오는 안정감의 문제인 것 같다. 혼자 충만한 밤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실은 꼭 필요하지만 그 시간에 가족을 곁들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언제나 의무의 대상이었던 이 가족이 이제야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다가오나 보다.